세상의 유혹에 타협않고
언제나 원칙을 고수하며
장인의 모습으로 진료하다
초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방망이 깎는 노인’이라는 수필이 있었다. 교과서는 읽고 싶지 않아도 때가 되면 읽어야만 했기 때문에 좋은 글들이 실림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게 큰 관심을 갖고 읽기는 어려웠다. 그런 교과서의 글이 지금까지도 잊혀지질 않는 것을 보니 정말 좋은 글이었나보다. 아마도 치과의사로 사는 평생 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한 남자가 퇴근 길에 시장을 지나오는데 시장터에서 나무를 깎아서 다듬이질할때 쓰는 방망이를 만드는 노인을 보았다. 마침 아내가 낡은 방망이로 다듬이질하던 모습이 생각나서 노인에게 하나 깎아보시라고 했다. 익숙한 노인의 솜씨에 네모난 나무토막이 금새 방망이 모양을 갖추었다. 이제 다 되었으려니 생각하고 값을 치르려는데 노인이 다 된 것 같은 방망이를 이리 저리 살펴보며 좀처럼 내 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한참을 살펴 보더니만 손잡이 부분을 이리 조금 저리 조금 또 다시 한참을 깎는 것이었다. 그까짓 방망이 하나 만드는데 무슨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나 싶어 이제 그만 되었으니 그 정도로 하고 돈을 받으시라는데도 무뚝뚝한 노인은 말대꾸도 없이 미끈하게만 보이는 방망이를 연신 깎아내고 있었다. 짜증을 넘어 화까지 내던 남자도 제 풀에 지쳐 그래 어디 얼마나 깎는지 한 번 보자는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렇게 성화를 해도 방망이 깎기를 멈추지 않던 노인이 옷에 널린 나무조각들을 툭툭 털며 “옛소"하고 방망이를 내어주는 것이었다.
참 별 노인 다 보겠다며 방망이를 받아 들고 집으로 와 아내에게 주었더니 아내가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방망이 머리에 비해 손잡이가 너무 두꺼우면 쉽게 팔이 지치고 힘주기가 어렵고 너무 얇아도 손이 금방 해지는데 이 방망이는 손잡이가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것이 다듬이질하기가 한결 수월하다며 도대체 어디서 이런 방망이를 구해왔냐는 것이다. 아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방금까지도 노인에 대해서 화를 내고 있던 자신이 너무 민망해서 다음 날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려고 시장엘 가보니 노인은 이미 자리를 떠난 뒤였다.
치과의사가 하는 일도 세심한 관찰과 판단에 이어 손 끝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보니 장인들이 하는 일과 유사한 점이 많다. 치료를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까짓 이 하나 하는데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들며,뭐 그리 많이도 오라 가라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한낱 방망이 하나에도 장인 정신을 발휘하자면 한도 끝도 없는데 사람의 몸을 대신할 것을 맞춤형으로 만드는 일이 어찌 수월하게 될 수가 있을까.
흔히 말하는 ‘그까짓 금니" 하나만 하려고 해도 교합면이냐 인접면이냐에 따라 깎아야하는 양이 다르고, 행여 인접치를 건드릴까 싶어 얇은 다이아몬드 버로 회를 뜨듯 치아를 깎기도 하며, 마진부위를 깎을 때는 수 번씩 버가 왔다 갔다 하더라도 기공사가 분간할 수 있도록 마진이 한 선으로 분명하게 보이도록 해야 한다. 또 인상을 채득하는 일에도 손 갈 일이 어찌나 많은지 그리고 기공물이 나오고 나면 오차를 수정하느라 정말 다 된 것처럼 보이는 치아를, 의아해하는 환자의 표정을 뒤로한채 이리 저리 깎아야 하고, 거기다 지금까지도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교합"이라는 거대한 산까지 넘어야 한다. 그 와중에 환우분의 불편함까지 고려하느라 밝은 표정으로 다정한 말 한마디라도 건내고, 진료실의 그림, 음악 선택까지 일일이 챙기는 걸 보면 치과의사야말로 종합 예술인이다.
지금은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이 꽃동네라는 사회복지시설이어서 치료가 좀 오래 걸리더라도 때로는 자주 내원해야 하더라도 치료해주는 것만으로 만족해하기 때문에 내 양심이 시키는대로 치료할 수 있지만, 이 곳을 벗어나서 치과 치료를 받는 것 외에도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아 늘 바쁘며, 자기의 느낌을 치과의사의 지식과 경험보다도 더 신뢰하는 사람들을 대하게 되면 과연 어디까지 나의 양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