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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삶- 허엽엽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실자]한 독일 소년의 마음


몇 년전 한 신부님의 강론집에서 보았던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필 박사는 몇 명의 외국인과 함께 독일을 여행하던 중 공원에서 한 무리의 소년들을 만나 사인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사인이 끝나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자동차가 오는 바람에 그는 급히 자동차를 타려다가 그만 만년필을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잠시 뒤에 창밖을 보던 필 박사는 자신의 만년필을 든 채 달려오는 소년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만년필 하나쯤이야’하는 생각에 차를 멈추지 않고 창밖으로 소년에게 만년필을 가지라는 뜻으로 팔을 흔들어 보였습니다.


곧 자동차를 필사적으로 뒤쫓아오던 소년의 모습도 희미하게 작아졌습니다.
그리고 육 개월이 지난 어느 날 필 박사는 다 찌그러진 그의 만년필과 한 통의 편지가 들어있는 소포를 받았습니다.
“필 박사님께, 그날 선생님의 만년필을 우연히 가지게 된 소년은 제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은 만년필을 들고 온 다음 날부터 선생님의 주소를 알아내려 애썼지요.
그것은 겨우 열 세살 어린아이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아들은 꼭 주인에게 물건을 돌려주어야 한다며 포기하지 않았답니다.


박사님의 주소를 찾으려고 노력한지 오 개월이 지났습니다. 드디어 어느 날 아들은 우연히 선생님의 글이 실린 신문을 보고는 그 신문사를 직접 찾아가서 주소를 알아왔습니다.
그때 기뻐하던 아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런데 한달 전 ‘어머니, 우체국에 가서 그 박사님께 만년필을 부쳐드리고 오겠습니다"는 말을 남긴 채 훌쩍 집을 나선 아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아들은 너무 기뻐서 무작정 우체국으로 뛰어가다가 달려오는 자동차를 미쳐 못 본 것입니다.
다만 그 애가 끝까지 가슴에 꼭 안고 있었던 만년필만이 나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록 찌그러졌지만 이 만년필을 박사님께 돌려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애도 그걸 원할테니까요. 한 독일소년의 정직한 마음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소년의 착한 마음, 어떻게 보면 한자루의 만년필, 대수롭지 않은 물건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년필 한자루를 잃어버린 주인에게 돌려주고자 했던 한 독일 소년의 한 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씨는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마음을 생각한다는 건 바로 순수한 사랑입니다.
오늘날의 세상이 거칠어지고 삭막한 이유는 바로 다른 이에대한 사소한 배려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요. 자꾸 우리 사회에서 퇴색되어가는 순수한 마음, 정직한 마음은 우리의 삶을 더욱 각박하게 만듭니다. 아무리 사소하고 보잘 것 없어보이더라도 결코 세상에는 보잘 것 없고 사소한건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마음이 그것을 사소하게 잘못느낄 뿐입니다. 인생은 하나의 긴 여행에 비유됩니다. 그 여행길은 때로는 절망과 실패속에서, 때로는 희망과 기쁨속에서 걷게됩니다. 우리가 삶의 기쁨을 위해서 주변의 모든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