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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삶- 허엽엽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실자]어떤 경우도 자살은 안된다

부산 태종대에 가면 풍경이 수려한 좋은 장소에 ‘자살 바위’라 불리는 곳이 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죽을 각오를 하면 못 살 이유도 없다. 죽을 생각을 하면 과연 두려운 것이 과연 무엇일까.
고등학교 1학년때의 일 이었다. 내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한강에서 투신 자살을 했다. 그때 나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아이는 죽기 전날도 친구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장례식 날 그 친구의 어머니가 관을 붙들고 통곡을 하셨다. 내 귀에는 마치 동물이 울부짖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여태까지 그 어머니처럼 슬프게 우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나는 지금도 사랑하는 자식의 자살만큼 어머니의 가슴에 큰 상처가 되는 일은 없다고 확신한다.
실제로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요즘에는 생활고와 카드빚 때문에 소중한 목숨을 끊은 이도 늘어나고 있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못해 일가족이 자살을 시도하고 심지어 학생들은 자신의 성적을 비관해서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유명 인사들의 자살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면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일반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일이 풀리지 않으면 자살을 택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죽음으로써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사고방식은 잘못된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자살이 정서적으로 미화되거나 용인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자살로 인한 주위 사람들의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한국 자살 증가율은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최고’라고 한다. 자살 증가율 1위는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매년 급증하면서 최근 10년간 연 평균 자살 증가율에선 우리나라가 단연 최고 선두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급증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사회의 생존 조건이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 사회는 급진적인 산업화 과정에서 물질 만능주의의 팽배로 인해 생명 경시 풍조가 판을 치고 있다. 전통질서의 붕괴는 쾌락적 현세주의의 팽배로 연결되고 퇴폐적이고 충동적 소비 문화가 통제불능으로 범람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중심적인 사고는 더욱 확산되고 책임 의식은 결여되고 있다. 이런 모든 상황은 생명의 존귀함에 대한 가치 상실과 자살의 증가로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생명은 근본적으로 나의 것이 아니다. 나의 생명을 하느님이 지으셨든, 부모가 낳아 주셨든지 결코 나만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의 생명은 다른 사람과 깊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생명이라 해서 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또한 함부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침해할 수도 없다. 자기의 생명이든 남의 생명이든 생명을 보존하고 존중해야 함은 인간 생활의 가장 큰 의무이다. 한 사람의 죽음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평생 잊지 못할 슬픔을 주기 때문이다.


생명 존중의 의식을 높이는 방법으로는 우선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을 일깨우는 것이다. 사람의 죽음은 단순히 한 생명의 끝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맺었던 모든 관계를 단절시킨다.
생명의 문제는 어떤 특수한 현상이나 영역의 문제가 아니다. 생명의 문제는 전체적인 문제이다. 생명은 사고나 관념이 아니다. 생명은 존재이며 현실이다.
우리 사회의 자살 급증은 사회의 부정적 측면이 강화되면서 생명 경시 풍조가 확산된 데도 원인이 있다. 따라서 이제는 국가적 차원뿐 아니라 사회와 종교도 자살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전문적으로 대처해야 할 때가 왔다.
자살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살은 사회 전체의 구성원이 함께 책임감을 느껴야하는 절실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