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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삶- 허영엽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실장)]성경에서 불쌍한 사람의 대명사 ‘과부와 고아’

성서에서 ‘고아와 과부"란 가장 불쌍한 사람을 지칭하는 대명사였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고아와 과부"들은 가난이나 질병이나 신체장애, 사회 환경적 이유 등으로 인해 생활 능력이 없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남자에 비해 여자의 신분이 절대적으로 불평등했는데 남편이 없는 과부의 경우에 생활의 어려움이 더 컸을 것이다.


성서에서 ‘과부’는 대부분의 경우에 단순히 남편이 죽어서 혼자 사는 여자라는 신분만을 뜻하지 않는다. 성서에서 가르치는 과부는 우선 경제적으로 빈곤한 사람, 남편이나 아들 등의 경제적인 뒷받침이 전혀 없는 여자를 가리킨다. 또는 법적 보호자나 후원자가 없는 여자를 일컫기도 했다. 과부는 이스라엘 성서시대의 현실에서 고아와 함께 최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약자로 규정돼 있다. 그 과부가 억울한 일을 겪었을 때, 어디에도 호소할 데가 없는 현실이 유지된다면 그 현실은 이 과부에게 이중의 고난을 지우는 셈이다.


남편이 먼저 죽으면 미망인은 과부의 옷차림을 해야 했다. 과부가 된 여자는 아들이 없으면 고인의 형제와 살 수 있었다. 또는 자신의 친정으로 돌아가거나 나이가 젊고 지참금이 충분하면 재혼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들이 있거나 남편이 남긴 재산이 있으면 아들과 함께 살다가 아들이 장성하면 재산권을 물려주고 어머니를 돌보았다.


일반적으로 성서에서 말하는 ‘과부’는 대부분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보호자 없이 가난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젊은 여인을 지칭했다.(1열왕 17,8-16 참조). 이러한 과부들은 특히 고아와 이방인과 함께 사회의 가장 밑바닥의 빈곤층을 이루었다. 그래서 과부는 공동체가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사람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과부들에게 쏟아야 하는 특별한 관심과 사랑은 고아들의 경우와 근본적으로 같았다.


이스라엘의 율법에는 약자보호법이 있었다. ‘과부들과 고아들을 괴롭히지 말아라.’(출애굽 22,20참조) 과부들에게 반드시 친절하게 말해야 하고 예의를 지켜,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시킨다거나 감정을 해치는 말을 해서도 안됐다. 그리고 그들의 재산을 자기의 재산보다 더 잘 돌보아야 했다. 과부들을 불쾌하게 만들거나 화나게 한다든지, 그들을 괴롭히거나 학대한다든지, 금전적인 손해를 입힐 경우에는 죄를 범하는 것이 됐다. 과부들을 억눌러 그들이 하느님에게 부르짖으면, 하느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줄 것이라고 믿었다.(출애굽 22,22참조).이처럼 이스라엘 공동체는 과부들을 보호하는 전통이 있었다.


과부들을 보호하는 구약의 전통은 신약시대에도 이어졌다. 예수님께서는 겉으로는 열심한 신심을 가진척하면서 뒤로는 힘없는 과부들을 약탈하는 지도자들을 단죄하셨다(마르 12,40; 루가 20,45). 그리고 외아들을 잃은 과부를 위로하시고 그 아들을 다시 살려주셨다(루가 7,11-17). 예수님께서는 과부를 비롯해 억압받는 이들과 착취당하는 이들을 보호하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초대 교회 공동체에서도 과부들을 특별히 돌보았다.(사도 6,1; 1디모 5,16 참조), 또한 고통중에 과부들과 고아들을 돌보는 일은 하느님을 진정으로 섬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야고보서 1,27참조).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과부들이 하나의 단체를 이뤄 일정한 직무를 수행했다.(1디모 5,3-16). 이들의 활동은 구체적으로 확실하지 않지만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도와 교회 공동체를 위한 기도가 주된 업무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초기 공동체에서는 과부들도 수혜자의 처지에만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교회와 함께 복음을 선포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했다.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에 불쌍한 이들은 너무 많다. 우리의 시선을 그들에게 돌려 도움을 베푼다면 더 큰 사랑의 실천은 없을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