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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삶- 황재국목사(안산호수중앙교회)]상처입은 치유자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미국출신으로 영국에 귀화한 시인 ‘토머tmS.엘리엇’의 ‘황무지’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시인은 왜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을까요?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 때문도 아닐 것이며 새역사를 탄생시키기 위한 시대의 진통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하게 생각나는 것은 4월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이 항상 끼어있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유대교를 ‘율법의 종교’, 이슬람은 ‘코란의 종교’라고 한다면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인 동시에 교회의 표지 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신 길을 비아돌로로사(Via Dolorosa:슬픔의 길, 수난의 길이란 뜻의 라틴어)라고 부릅니다. 십자가는 원래 죄수를 고통스럽고 잔인하게 죽이는 사형틀로 페르샤 지방에서 고안 된 것을 로마정권이 도입하여 노예들, 식민지 백성, 그리고 반역자들을 처형하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만나는 교차로 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십자가를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의 계시로 보았습니다.
갈3;13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니라” 오랫동안 참아 온 하나님의 진노가 십자가 위에 떨어짐으로 우리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예수님이 형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십자가에는 더블 이미지(Double Image)가 있다고 역설하였습니다.
하나는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것과,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시기에 독생자를 희생시키면서까지 나를 구원하시려 하였는가라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심각한 죄인이라하는 것과 십자가의 댓가를 지불해서라도 구원해 내야만 하는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년전에 상영된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는 ‘브레이브 하트’로 아카데미 제작상과 감독상을 받은 헐리우드 배우 ‘멜깁슨’이 약물중독으로 방황하다가 성경을 읽고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의 이유를 깨달으면서 받은 은혜를 증거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의 꿈은 주님을 증거하기 위한 순도 100% 복음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제작 스폰서를 구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벤허’ 같은 간접적인 종교영화도 아닌 직접적인 예수영화가 성공한 사례가 없기에 주변 사람들이 그를 만류한 것입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의 사재를 투자해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고 그 결과 개봉 첫날에 2천3백60만달러의 흥행실적을 올렸습니다. 투자한 제작비를 환수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극장마다 부흥회가 시작되었고, 강도와 살인범들이 이 영화를 보고 회개하여 자수했으며 낙심자들이 다시 각성하게 되고, 믿지 않던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영화의 첫 화면은 구약성경 이사야 53장5절로 시작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가르켜 ‘상처입은 치유자’로 부른 미국의 영성신학자 ‘헨리 나우웬’은 예수님이 입은 상처로 인하여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 주실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달려야할 십자가에 주님이 대신 달리심으로 나를 구원하신 그 사랑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비단 구원의 문제뿐만 아니라 내 일상생활 속에서도,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고 크고 작은 수많은 상처들을 주님이 대신 짊어져 주시는 것입니다.


상처입은 치유자는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모습인 동시에 우리 크리스챤들이 이 시대에 추구해야할 진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