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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3)나의 친구, 나무들/이문한

 

빼곡하게 들어선 나무를 보면
인구 밀도가 매우 높은
한국의 민중을 보는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파트 전면에 펼쳐진 숲의 호수 엄광산을 바라본다.
오! 엽록소의 축복을 받은 초록의 지구, 그리고 겨울나무.
초등학교 시절 나무를 타고 올라가 바라다보는 세상은 참으로 색달랐다.
나무 타기는 좋은 운동이다.
예과시절, 서울 문리대의 마로니에는 한국의 몇 그루 안 되는 유럽의 순례자였다.
요즘은 서초구에서 활기찬 가로수 군락을 이루고 있다.


처녀시절의 아내에게 마로니에 꽃을 편지지에 그려 보낸 적이 있다. 35년 전 이야기이다.
이양화 연세대교수의 수필 ‘신록예찬’을 모두 기억하리라. 젊은 날 성균관대학교 언덕에서 바라 본 비원 숲의 찬란한 신록은 최고의 파스텔톤 색조로 지금도 천국처럼 떠오른다.
대학 시절 만나면 반가웠던 성균관대학교 문묘의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를 장성한 딸들과 함께 찾아본다. 기품이 높은 30여년 지기. 모두 변해갔으나, 그는 여전히 젊다.
서울 서초동 법조청사 10차선 대로변 중앙에 서 있는 나무. 단종의 매형이 그 나무를 지나며 단종 걱정을 했다는 나이 많은 향나무. 한적한 한양 변두리가 강남대로 중심으로 바뀌어도 독야청청이다. 달리는 자동차 사이를 가로질러 나무에게 다가가 둥치를 쓰다듬어 준 적이 있다. 700살 된 선배여!


박정희가 살아있던 시절, 공중보건의 1기로 거제도 생활을 시작할 무렵, 저녁 식사 후 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를 펼치니 거제도 하청면에 90m 높이의 거대한 느티나무가 있다는 구절에 쥐라기의 공룡 소식을 접한 듯 기뻐 날뛰었다. 바로 다음 날 하청면으로 향했다. 우리나라에는 30m를 넘는 나무가 많지 않다. 열대 우림지역은 50년 세월에도 가뿐하게 40m 높이를 돌파하지만….
아내와 어린 딸과 함께 펼쳐질 장관에 가슴 설레었다.


아…, 그런데 불타 죽은 거대한 직경의 고사목 등걸만 남아있었다.
우리나라 산의 빼곡하게 들어선 나무들을 보면 인구 밀도가 높은 한국의 민중들을 보는 심정이다. 그러나 부산 UN묘지에는 주위에 그늘을 만드는 나무가 전혀 없이 완벽하게 태양의 은총을 받는 수형 좋고 최고 상태의 팔자 좋은 목백일홍이 있다.
이 시간에도 그 친구는 잘 지내리라.
나보다 훨씬 일찍 태어나 나보다 훨씬 더 오래 살리라.
브라보! 지상의 모든 나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