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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강 박사의 보험이야기]이순(耳順)에 내디딘 초행길

치과의사가 되고나서 45년이 지나갔다. 돌아보니 짧지 않은 그 세월을 개원의의 한 사람으로서 나름 열정적으로 살았지 싶다. 어느 해 방학에는 하루 62명의 환자를 진료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5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남성에게도 갱년기가 있는지 환자를 보고 진료하는 것이 조금씩 힘겨워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십이지장궤양까지 생기고 왕성하던 진료 활동과 삶에 대한 열정과 의욕도 줄어들어갔다.


한때 치과의사협회 일을 하면서 혼자서 진료하는데 어려움을 느껴 몇 년 간 소위 페이닥터의 도움을 받았는데, 진료가 힘겨워진 뒤 동업자 형태로 도움을 받았다. 젊은 동업자에게 대부분의 진료를 맡기고 건성으로 출퇴근하던 어느 날 저녁, 치협에서 전화가 왔다. 이사회를 하는 중이라면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일할 상근심사위원을 추천해야 되는데, 응할 생각이 있는가 하는 내용이었다. 전혀 생각지 않았던 일이라 선뜻 답을 못하고 통화를 마쳤다.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들은 아내가 이 기회에 진료를 그만 접고 그 제안을 수락하는게 어떻겠느냐며 자신의 의중을 조심스레 전해왔다.
생각 끝에 폐업계를 내고 보니 하루도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고 정확히 개원 25주년 되는 날이었다. 치과의사로서의 길을 천직으로 알고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던 진료를 그만두고, 심평원에서 생소한 업무를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이때 내 나이 환갑을 두어 달 남겨놓고 있었다. 나이 60세가 되어서야 남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 공자의 말 때문이었을까, 새로운 길을 향해 조심스레 첫 걸음을 내딛던 그 당시의 마음이 지금 이 순간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올해가 한국에서 의료보험을 시작한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같은 시기에 개원을 해서 동네 치과의사로 25년을 보험제도와 함께 지내는 동안, 솔직히 보험에 대해서는 어떤 관심이나 애정보다는 불만이나 무관심한 태도로 지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갑자기 동료 치과의사들의 진료내역을 심사하는 일을 맡고 보니 간간이 당혹스러운 일들이 여기저기서 생겨나기도 했다. 게다가 동료 치과의사들은 정부의 대변자로 몰아치고, 심평원에서는 치과의사협회 편을 든다고 했으니, 사면초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면초가(?)는 되는 곤경에 처하고 만 것이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가면서 맡은 업무에도 익숙해지고 진료할 때와는 또다른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친구들은 양쪽에서 싫은 소리 듣는 일이 무슨 재미가 있냐고 했지만, 나름대로 심평원에서의 6년을 즐겁게 보냈다. 요즘도 같이 일하던 치과위생사, 간호사, 의사들과 때때로 만나고 있으며, 후임을 맡은 송세진 위원과도 가깝게 지내고 있다.
2년 임기의 상근심사위원직을 연이어 3번 지냈으며, 지난 해 정년으로 퇴직을 한 후 백수로서 생활한지도 어느 새 1년이 또 훌쩍 흘렀다.


오래 전 치의신보 편집국으로부터 심평원에서 겪었던 일들을 글로 옮겨보라는 권유를 받아왔는데, 차일피일 미루고 또 미루다가 어느 날인가 덜커덕 원고 청탁을 수락하고 말았다.
앞으로 6년간 몸소 겪었던 심평원에서의 일들을 몇 차례에 걸쳐 글로 전하려고 한다. 이순(耳順) 즈음에 시작했던 새로운 길을 다시한번 돌아보려는 것이다.
이후 필자의 글이 다소 읽기에 불편하거나 공감하기 힘든 부분이 있더라도 또다시 초행길을 내딛는 용기와 기백만을 높이 사 너그러이 보아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