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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삶/황재국 목사]공동체의 회복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홀로 살아가도록 창조하시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 지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지난 8월은 잔인한 달 이었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열대야와 잦은 비, 그 보다 더 우리 마음을 무겁게 했던 것은 아프카니스탄에 억류된 스무 명 가까운 인질들의 안위였습니다. 과연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까? 가슴 조이며 기다리는 가운데 마지막까지 남은 피랍인질 19명의 석방소식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과 함께 우리들에게 많은 숙제를 안겨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한국교회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진심으로 하나 돼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 땀흘리며 기도하신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는 “하나 되게 해 주소서”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기도는 하나 됨을 추구하는 공동체의 탄생입니다.


과거 산업사회를 수직사회라고 합니다. 의미론적으로 ‘사다리 사회’라고 표현합니다. 산업사회는 사다리처럼 높낮이가 분명한 신분사회였습니다. 그러나 21세기는 정보사회입니다. 정보사회는 수평사회라고 합니다. 의미론적으로는 ‘거미줄 사회’라고 표현합니다. 정보사회는 거미가 거미줄을 타고 있는 것처럼 정보망을 타고 있으며, 거미가 중앙에 자리하고 있듯이 모든 사람 각자가 중심인 사회입니다. 소위 Web구조로 된 수평사회입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이 노출되는 투명사회의 성역이란 존재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는 물론 종교까지도 신성불가침의 성역으로 존재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오늘 날 한국교회는 안팎으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오늘 날 우리가 평양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은 회개를 통한 공동체의 회복인 것입니다. 죄가 죄인 이유는 즉, 죄가 올바른 목표를 빗나간 이유는 목적이 ‘공동체’에 있지 않고 ‘자아’에게로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성공이나 승리는 공동체를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은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관계로 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기독교의 윤리는 자아(self)를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 약자를 위한 것이고 그러기에 자신보다 공동체를 우선시 할 수 있는 것이 목표입니다. 죄는 자기희생을 거부하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 나머지 공동체를 지탱하는 사랑의 연결 끈을 자르는 것입니다.


결국 죄란 ‘공동체’라는 과녁 대신 ‘자신’이라는 빗나간 과녁을 향해 시위를 당기는 것입니다.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이 혼자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아니야, 함께 공동체의 길을 걸어야 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결코 혼자 힘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방법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함께 하면 더 풍성해 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태어났을 때 나는 울었고 주변 사람들은 기뻐했습니다. 이제 내가 세상을 떠날 때에는 나는 기뻐하고 주변 사람들은 나를 위해 울어주는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사십시오. 공동체의 소중함을 회복하십시오. ‘함께’할 때 지금 보다 훨씬 더 값진 따사로움과 풍요로운 관계의 축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