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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5)기다임에 대한 소고/최준혁


어린 시절 퇴근하는 엄마를 기다렸던 나
일주일에 한 번 손주를 기다리는 어머니
"사랑"이 있기에 소중한 기다림

 


퇴근길, 아파트 단지 내 벤치에 앉아 있는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자매가 눈에 들어왔다. 단지 입구 쪽을 쳐다보고 있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인다.
언니와 동생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엄마(기다리는 사람이 왠지 엄마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를 기다리는 모습이 예뻐 보이면서도 왠지 모를 애잔한 느낌이 든다.
벤치에 앉아있는 자매를 뒤로한 채 걸어가면서 문득 30년 가까운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른다.
어머니가 초등학교 교사셨기 때문에 나와 동생들은 낮 시간을 항상 또래랑 어울리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엄마가 퇴근해서 돌아오는 저녁시간, 해가 질 무렵이 되면 나와 동생들은 항상 동네 입구가 잘 보이는 집 앞 공터로 나가 동네 입구로 들어서는 엄마를 기다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 기다림은 매일 반복되는 10분 남짓한 시간이었을 텐데 당시는 매일매일이 무척이나 간절했었던 기억으로 떠오른다. 간혹 평소와 다르게 오실 시간이 지났는데도 엄마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에는 마치 큰일이라도 생긴 듯이 가슴은 방망이질치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기다림의 간절함은 더욱 커졌던 것 같다. 그러다가 기다리던 엄마가 길 모퉁이에서 모습을 드러낼 때에는 순간적인 안도감과 기쁨에 정신 없이 엄마에게로 달려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제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고 분가해 사는 나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주 토요일 부모님이 계시는 집에 간다. 거리가 가까워 오가는데 부담이 없을뿐더러 무엇보다도 손주를 반기시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도 즐거워지기 때문이다.


벌써 수년째 반복돼온 이 생활패턴에서 난 또 다른 기다림을 보곤 한다. 매주 토요일 저녁이 되면 어머니는 손주들이 좋아할 만한 반찬을 만들어 놓고 만면에 웃음 가득한 얼굴로 손주들을 맞곤 하신다. 그 반기는 모습 속에서 어머니의 손주에 대한 기다림과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 느끼는 건 어렵지 않다.


세월의 흐름은 어머니와 나를 기다림의 주체와 기다림의 대상으로 그 위치를 바꾸어 버렸다. 이제 주말 저녁 시간이 되면 어머니가 손주들과 함께 오는 나를 기다리는 것이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어머니가 느끼는 감정은 30여 년 전 나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으로 알 수 는 없다. 하지만 웃음 가득 환한 그 얼굴에서 손주에 대한 간절함과 사랑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고, 이는 그 옛날 동네 어귀에 나타날 엄마를 기다렸던 내 기다림의 근원과도 같다.
문득 사랑을 담고 기다리는 대상이있다는 것, 대상이 된다는 것이 무척이나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월이 흘러 연세가 드시고 이제는 기다리는 입장이 된 어머니지만, 앞으로도 오랫동안 당신의 자식과 손주를 기다려 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