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목고 유죄?
요즘 외고 입시가 도마에 올랐다. 특목고에 아이를 보내려면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동생의 희생"이 따라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진지하게 들리는 현실이라, 어떤 형태로든 손을 보기는 봐야 할 것이다. 중학교 1학년 아들을 키우다 보니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다. 내가 환자를 보고 있을 시간에 다른 엄마들은 입시 설명회를 순례하고 서로 간에 수집한 정보를 주고 받는다. 바쁜 아이를 대치동으로 실어 나르는 그녀들은 총알 택시 기사를 능가하는 운전실력을 뽐낸다. ‘수행평가"도 결국은 엄마 점수다. 또래의 여자 아이들에 비해 여러 모로 덜 떨어진 ‘아들"은 종종 자식으로서의 인권을 포기하고 부모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주위에는 미국의 보딩스쿨에 자녀를 보내는 분들이 많다. 대개 치과의사들이다. 학교 수업시간에 밀린 잠을 자고 학원에서 학교시험 대비를 하는 기이한 상황, 시험에서 한 개만 실수해도 과목석차가 두 자리로 떨어지는 현실, 실력보다는 ‘태도점수" 라는 것으로 아이들을 다스리려는 선생님. 이런 현실에서 정보력 조차 없는 이 엄마는 하루에도 여러 번 마음속에서 아이를 비행기에 태웠다 내려 놓는다. 애 잡아가며 우물 안 개구리 만드느니 ‘글로벌 리더"로 키워 봐? 해피한 청소년기와 유창한 영어실력은 평생의 자산이 될 거야. 그런데 기숙사에서 마약 한 번 안 해 보면 Nerd라는데? 미국사람 다 되어서 나중에 부모 앞에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 아냐? 안보면 그렇게 딴짓을 하는데, 그래도 옆에 끼고 감시하는 게 낫지. 결론이 나지 않는다.
먹고 살기에 급급했던 시절부터 한국인의 교육열은 못 말릴 정도였다. 21세기 ‘동생의 희생"이 엄마가 대치동 학원가에서 대기하는 동안 피자로 저녁을 때우는 것이라면, 70년대 판 ‘동생의 희생"은 공장에 다니며 오빠의 학비를 버는 것이었다. 삼성전자 수준의 기업체가 즐비하고 자원이 풍부하며 외우기도 어려울 정도로 긴 명문대학의 랭킹을 자랑하는 나라들과는 비교할 필요가 없다.
핀란드 학생들이 지천에 널린 음식으로 식욕 떨어진 놀부네 자식이라면 우리네 현실은 밥 한 수저에 쟁탈전을 벌이는 흥부네 자식에 가깝다. 대기업에 취업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이고 돈 받고 나갈 것인지 버티다 잘릴 것인지를 고민하는 수많은 대한민국의 가장들을 보면, 명문 대학, 특정학과에 대한 집착, 이로 인한 사교육 열풍이 우리 사회의 숙명처럼 느껴진다.
교육을 신분상승의 유일한 출구로 여기는 많은 이들에게 용이 날 수 있는 ‘개천"은 반드시 필요하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구르고 구른 아이들만이 통과할 수 있는 시험은 공정하지 않다. 따라서 입학 시험은 기계적인 문제풀이 능력과 잠재된 학습 능력을 분별할 수 있도록 출제되어야 한다. 물론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반면, 더 많은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고도 질 높은 교육을 원하는 이들의 수요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특목고에 자녀를 보내려는 이유가 대학입시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은 단편적이다. 많은 부모들은 내신이 불리해도, peer pressure가 긍정적인 자극이 되고 상대적으로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때문에 특목고를 선호한다. 사교육을 부채질한다는 이유로 외고를 폐지하거나 규제를 강화해 더 좁은 문으로 만든다면 미국의 사립학교를 찾아 비행기를 타는 아이들은 더 늘어날 것이다. 사교육이 잡힐 지도 미지수다.
출발선에서 부터 교육 앞에 만민은 평등하지 않다. 우수한 머리와 인성을 타고 나는 아이가 있고, 각기 다른 양육환경은 지능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학습 의욕과 직결되는 ‘motivation" 조차 환경과 무관하게 내면에서 샘솟는 것이 아니다. 평등하다는 혹은 평등해져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입시 폐지와 대학 평준화는 우리 사회의 교육 수준을 다같이 낮추자는 이야기일 뿐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학교와 학교 선생님들도 경쟁하고 교육시장에서 평가 받아야 한다. 이른바 ‘귀족학교"를 많이 만들고 높은 교육세를 거두어 저소득층 자녀의 교육을 제대로 지원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지 않을까?
맞벌이 부부에게 양질의 daycare를 제공하는 것, 방과후 공부방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 학교 교사가 ‘A급 수학"을 잘 가르쳐서 학원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도 수학을 잘하게 만드는 것이 “기회의 평등"에 다가가는 길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김 금 령
일리노이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