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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건의 여행스케치>
신의 뜰에서 노닐다

장정숙 (트랙코리아 회원) 홍천군 내면 방내리 오지발굴여행 그 곳은 누군가 정갈하게 다듬어놓은 정원이었습니다. 잡목 하나 없이 신전의 줄지어 늘어선 기둥들처럼 커다란 나무들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바람속에, 그렇게, 하늘을 이고 구름을 보내며 서있었습니다. 계절내내 떨어진 낙엽들은 호수처럼 나무둥치밑에서 잔잔했습니다. 바람이라도 없었더라면 그저 모든 것이 사진 속 풍경처럼 너무나 반듯반듯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발걸음을 뒤쫓아 낙엽들이 바람에 폴폴 날려갔습니다. 편안한 곡선을 그리며 능선들은 이어져 있었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능선위를 올라서면 언제나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뜰처럼 넓고 평평한 낙엽밭에 그저 그 나무 몇 그루가 전부였으니까요. 봉우리들이 모두 그랬답니다. 바윗돌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산은 온통 일렁이는 커다란 물결이었습니다. 그 밑에 누워 하늘을 보니, 눈부시게 파란 하늘에 발 빠른 구름이 지나고 있었지요. 생각이라는 것을 도무지 할 수 없게 하는 풍경이었습니다. 그냥 가늘게 눈 뜨고 쳐다보기만 해도, 그래, 다 네 것이다, 네 것이다 하는 거였습니다. 보면 볼수록 점점 더 깊게만 보이는 저 하늘, 그 너머 우주가 말이지요. 그렇게 넋놓고 한참을 누워있었습니다. 편안했습니다. 어떤 존재의 품속에 안긴듯이 말입니다. 어쩌면, 신(神)이 꾸며놓기라도 한 것일까. 산이 저 혼자 그러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숲은 아름답고 편안했습니다. 능선은 험하지도, 빼어나지도 않았지만 사람의 흔적이란 그저 근처 탄약부대에서 쳐놓은 철조망 울타리 밖엔 없었습니다. 산짐승의 시시때때로 쏟아논 배설물과, 그네들의 발자국이 선명한 비탈길과, 어설프게 뜯어먹은 싱싱한 풀무더기와, 화풀이라도 하듯 하얗게 벗겨논 나뭇기둥이 전부였습니다. 산행 초입에서 시골아낙이 한번 찾아봐달라고 당부했던, 집 나간 어미소와 송아지의 흔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끝내 보이진 않았지만 집짐승이 산 속에서 겨우살이를 잘 할 수 있을런지요... 어차피 길 없는 곳을 찾아나섰으니, 우리들의 산행도 산짐승들이 대대로 지나다녔을 그 좁고 희미한 산길을 따라 걷는 거였습니다. 그네들은 좁은 나무둥치 사이를 비집고, 가파른 바위밑을 지나다녔습니다. 가다가 낌새가 있으면 흙을 파헤쳐 무언가를 캐먹은 듯도 합니다. 워낙 두껍게 낙엽이 깔렸으니 아무리 비탈길이라해도 미끄럽지 않아 걷기에는 참 좋았습니다. 짧은 겨울해를 시계삼아 정말 산짐승처럼 능선을 누볐습니다. 산행 들머리와 끝나는 곳엔 소롯한 산길에 연이어 빈 집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얼마전까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는 곳도 있었지만, 우리가 인기척을 느낄 수 있기위해선 포장도로가 깔린 곳까지 나와서였습니다. 신(神)께서 마을 사람들 모두를 데리고 마실이라도 나간 모양입니다. 그 잠깐동안 우린 맘껏 신의 뜰에서 놀다 왔습니다. 우린, 신의 정원 안에 몰래 들어온 호기심꾼들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