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1번째) Relay Essay
보스톤 마라톤대회의 추억(상)
박 성 진
강남 차병원 교수
마라톤을 시작한지 4년만에 3월 동아 마라톤에서 써브3를 달성하고 한달 후 보스톤 마라톤에 참가했던 2007년 봄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하다.
보스톤 마라톤은 약 2만5000명이 참가하는 세계 최고의 대회로 1897년 제1회 대회를 시작으로 애국자의 날인 매년 4월 셋째 주 월요일에 공식 개최되는데 참가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국제 공인 마라톤 대회에서 참가자의 연령별 참가기준 시간대 내의 기록이 있어야 된다.
2007년 제111회 보스톤 마라톤 대회의 나의 배번은 3249번.
내가 너무 바랬던 게 많아서 그랬는지 대회 전날부터 강풍과 폭우가 시작되어 뉴스에서는 보스톤 마라톤 역사상 최악의 조건 속에서 달리게 될 것이며 저체온증이 우려된다는 메시지가 계속 나오고 있었고 대회 출발 후까지 정말 엄청나게 비가 내렸지만 일본도 아닌 머나먼 미국까지 와서 뛰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선택은 어렵지 않았다.
보스톤 마라톤은 직선 코스로 결승점은 도심 중앙부에 있고 이 부근에서 가족을 제외한 모든 선수들은 노란색 스쿨 버스를 타고 출발지인 시골 마을 합킨톤으로 이동하게 되는데(여행사를 통한 대부분의 한국선수들은 단체버스로 이동) 날씨로 인해 버스를 타는 것도, 타고 그 곳으로 가는 것도 너무 심난했다.
10시에 출발이지만 이 마을이 어느 정도 떨어져 있어 6시 30분부터 선수들을 출발지로 실어 나르고 나는 숙소로부터의 교통편이 좋지 않아 7시 30분경에 도착해서 아내와 눈물의 이별을 하고 이래저래 버스를 타고 합킨톤에 도착한 건 9시 50분경, 옷 갈아 입고 배번에 따라 지정된 스쿨버스에 짐을 맡기기도 빠듯한 시간이었고 비가 그칠 것 같지 않아 완주도 힘들겠다는 생각에 스트레칭 보다는 도중에 포기하게 되면 어떻게 아내를 만나야 할 지가 더 고민이 되었다.
대략 2만 여명을 총 20그룹(corral)으로 나누었는데 중앙일보 마라톤때 기록인 3시간 3분으로 신청했더니 3번째 corral에 속했고 이는 진행요원들에 의해 엄격히 구분되었다.
신발, 양말, 머리, 옷까지 흠뻑 젖은 상태로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왼편에 한인교회가 보이고 소속 교인들이 음료를 나누어 주고 있었는데 하도 처량하게 보였는지 대한민국 파이팅을 외치며 물병 하나 더 건네 주는 모습에 가슴이 찡했다.
드디어 출발 신호가 울리고 내리는 비에 움츠렸던 선수들이 예상 밖으로 미친듯이 뛰쳐나가기 시작했고 이런 분위기에 떠밀려 얼떨결에 달릴 수밖에 없었지만 다행히도 대략 5km 정도를 지나면서 빗줄기가 약해져 중간 중간 나타나는 물웅덩이를 빼면 달리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어제 밤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스파게티 조금 먹고 코스 분석도 하지 않은 채 일찍 이불 덮어 쓰고 잠을 설친 게 무척 후회가 되었고 그래서 인지 초반부터 무척 허기진 느낌이 들었지만 1마일(약 1.6km)마다 음료 보급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10km: 41분 24초)
코스를 전체적으로 보면 초반에 오버페이스 하기 쉬운 내리막 코스로 출발지인 합킨톤은 변두리의 고지대이고 결승점은 도심의 저지대면서 대략 하프지점까지는 완만한 언덕을 포함한 내리막 코스였기 때문에 중간 중간의 피로는 그때그때 어느 정도 회복될 수 있었다. (15km : 1시간 1분 55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