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시리즈 5
치과의사를 위한 주식 투자 전략
기신정기(092440) -경쟁사 몰락형 기업
이제 저만 남았습니다
예전 살던 집 근처에 불친절하기 그지없는 슈퍼마켓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친절모드로 돌변했다. 생전 안 하던 할인까지 하기 시작했다. 그 원인은 옆에 더 큰 슈퍼마켓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경쟁은 소비자에게 유익한 것이다. 하지만 기업에게는 썩 반길만한 일이 아니다. 한정된 시장을 놓고 격돌하면 가격을 깎아줘야 할 뿐 아니라 마케팅 등 제반 비용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치열한 경쟁을 하다가 한쪽이 철수하면 남아있는 기업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환경이 제공된다. 나눠먹던 파이를 혼자 먹을 수 있는 데다가 마케팅 비용도 절감되어 결과적으로 큰 노력없이 이익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 그래서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절대적으로 우수한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경쟁자보다 조금 더 나은 제품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이런 행복한 상황에 놓인 생존자를 일컬어 ‘경쟁사 몰락형 기업"이라고 하는데 자동차나 반도체 분야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영역에서도 이런 기업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회사가 우리나라 중소형 몰드베이스 1위 회사 기신정기다. 몰드베이스는 휴대폰 케이스, 자동차 부품, TV케이스 등 플라스틱 사출물을 만드는 금형의 기초 재료라고 보면 된다. 즉 기신정기가 몰드베이스를 만들면 금형업체에서 거기다 원하는 모양을 파서 사출업체에 넘겨 우리가 생활 속에서 쓰는 플라스틱 물건으로 생산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범용 산업재 같아 보이나 기신정기는 이 제품으로 영업이익률 15~20%를 꾸준히 낸다. 심지어 전방산업이 최악이었던 작년 1분기에도 영업이익률이 10%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시가총액이 1,350억원인데 부채 없이 보유현금만 560억원에 달하고 매년 배당을 실시할 정도로 현금흐름도 좋다. 제품의 매력도에 상관없이 이런 수치를 보일 수 있는 건 순전히 무(無)경쟁의 산물이다.
금형시장이 형성되던 초기인 70년대에 많은 경쟁사들이 난립했지만 모태인 기신산기가 75년부터 꾸준히 신제품을 수입, 출시하며 표준화를 주도했고 89년 일본 후타바(현재 기신정기의 대주주. 일본 몰드베이스 시장 1위)와 합작해 생산까지 담당하는 기신정기를 만들면서 경쟁자들은 서서히 쇠퇴해갔다. 여기에는 일본 합작선에서 공급받는 고급 강재와 기술이 뒷받침 되었을 뿐 아니라 경쟁사가 몰드베이스 이외의 분야로 확장해 집중력을 잃은 부분도 한몫 했다. 그 결과 기신정기는 95년부터 독점 체제를 구축했는데 이후 핸드폰 시장 등이 확대되며 생존자로서의 이익을 고스란히 향유할 수 있었다.
소비는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 하고, 투자는 경쟁이 없는 기업을 골라 한다면 생각보다 부자의 길은 가깝지 않을까?
최준철 대표이사
·서울대 경영학과 졸
·VIP투자자문창업(2003년)
·VIP투자자문공동대표이사(현)
·저서 : ‘한국형가치투자전략’,‘가치투자가쉬워지는V차트’(공저),‘워렌버핏의실전주식투자(번역)’, ‘Buffet’(감수)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