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풀이한 주역
조선시대에는 사서(四書)를 다 배우고 난 뒤에 ‘주역’을 읽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퇴계 이황 선생도 20세(1520년)읽기 시작하여 34세에 회시(會試)에 응시해 모든 과목에서 최고점인 ‘통(通)’을 받았지만 ‘주역’만은 요즘으로 치면 C학점을 받았다고 합니다. ‘계사전’은 주역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해석서로서 공자의 저작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주역 자체를 해석하려고 하다가는 사이비종교가 되기 쉬워서 성인이 풀이한 해설서를 중국의 대학자인 남회근 선생님의 재해설서인 ‘주역계사’를 근본으로 하고 다른 종교와 비교해서 몇 가지만 소개하고자 합니다.
‘역경’을 배우는 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상으로써 살펴 효사로서 가지고 놀기 위해서지 점을 치거나 명을 알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처한 상황을 보면 운세를 알 수 있다. 이것을 ‘관기상(觀基象)’이라 일컫고 그 상을 잘 살피면 그것이 사물이든 상황이든 헤아릴 수 있다는 것이죠.
“궁즉변 변즉통(窮則變 變則通)”이라 우주의 만물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고 주역 계사전에서 이릅니다. 천지간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기에 개인이든 사회든 국가든 어떤 단계에 이르면 변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진리를 역설하고 있습니다. 주역의 어떠한 괘도 어느 단계에 이르면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고 가르칩니다. 역사적 위인들은 이 변화를 미리 읽어서 변화를 이끌어 갔습니다
서양에도 상통하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다윗 왕이 어느 날 궁중의 세공인에게 명했습니다. “나를 위한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어라. 거기에는 내가 전장에서 크게 승리하여 환호하더라도 교만하지 않게하고,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 결코 좌절하지 않게 하고, 나 스스로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줄 단어를 새겨넣어라.” 명을 받은 세공인은 새겨넣을 글귀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던 중 현명하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때 알려준 글귀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will pass away)고 하였습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영원하지 않고 주역의 가르침처럼 변화하므로 너무 좋아 하거나 슬퍼하지 말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불교의 반야심경의 구절 중에도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이라 하여 우주의 만물은 다 변하지만 물리학의 질량 보존의 법칙이나 에너지 보존의 법칙처럼 생겨나지도 없어지지도 않고 그래서 더럽다고 깨끗하다고 할 수 없고 그 합은 증가하지도 감소하지도 않기 때문에 이런 변화의 속에서 집착을 버리면 지극한 즐거움(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 하는 것 같습니다. 유교, 기독교, 불교의 가르침이 서로 통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위에 언급한 내용들은 세상의 현상에 대한 해설이었고 삶의 생사를 초월하여 우주는 끊임없이 변하는데 이 지구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에 대한 주역계사의 가르침을 감명 받았던 일부만 살펴보겠습니다. “자천우지, 길무불리(自天祐之, 吉无不利)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기 때문에 자립자강하는 사람만이 크게 길하고 이롭다 즉 인생의 운명은 자기 손에 달려있고 어떤 외부의 힘도 의지할 만한 것이 못된다고 ‘역경’에서 역설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일을 하느님이나 부처님에게 맡긴다고 해서 그 분들이 알아서 해주지 않고 스스로 일어설 때만이 천인합일(天人合一)하여 일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역을 잘 아는 사람은 점을 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길흉을 올바름으로 극복할 수 있다(길흉자 정승자야; 吉凶者 貞勝者也)고 하고 이는 ‘역경’의 기본 원칙 중 하나라고 합니다.
공자가 춘추를 쓴 이유는 역사의 인과관계를 설명하고자 한 것이라고 합니다. 춘추시대 270년 동안 수십 명의 왕이 죽고 수십 개의 나라가 망했습니다. 공자는 곤괘의 문언(文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신하가 임금을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것은 일조일석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유래는 점차적으로 쌓여 온 것이라 그 원인을 알려면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피력하였습니다. 성경에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성언의 의미와 일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세상사가 우리가 알 수 없는 오랜 세월(전생)동안 쌓인 인과의 법칙으로 이루지므로 헤아리기가 어렵다. 하지만 인과를 믿는다면 수연소구업, 갱불조신앙(隨緣消久業, 更不造新殃)하라. 어떠한 일이 벌어지던지 그 인연에 따르고 다시 새로운 원한(業)을 만들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유교, 기독교, 불교에서 공통으로 인과에 대해서 유사하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자아를 잘 살펴서 안분지족하고 남이나 하늘에 기대지 말고 스스로에게 의지하고 인과를 헤아려 현실에 주어진 일에 충실하다 보면 더 많은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성인의 지혜를 훔쳐봅니다.
유동기
유동기치과의원 원장
대한치과보철학회 공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