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24 (목)

  • 맑음동두천 19.9℃
  • 구름많음강릉 23.5℃
  • 맑음서울 19.1℃
  • 구름조금대전 21.4℃
  • 구름조금대구 22.2℃
  • 구름많음울산 21.5℃
  • 구름많음광주 20.8℃
  • 구름조금부산 17.6℃
  • 구름조금고창 19.4℃
  • 구름조금제주 19.0℃
  • 맑음강화 14.4℃
  • 구름조금보은 19.3℃
  • 구름조금금산 21.4℃
  • 구름조금강진군 21.5℃
  • 구름조금경주시 24.5℃
  • 구름조금거제 18.3℃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제1684번

고창 미당 생가와 내소사

  

산울림 문인모임이 전남 영광에서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와 ‘불갑사’를 구경하고 고창 선운사 입구 숙박지에 도착한 것이 저녁 7시경. 숙소를 정하고 이곳에서 먹을거리로 유명한 풍천 장어 집을 찾았다. 먹을거리도 관광인데 이곳도 영광 굴비 백반 집처럼 천지가 풍천 장어 음식점 뿐이다.


서울에도 장어 집하면 풍천 장어집이 즐비하고 웬만한 장어 식도락가들은 장어하면 풍천 것을 으뜸으로 친다.


이곳이 본고장이고 보면 당연히 풍천장어라고 생각 하나 안내인이 귀띔으로 눈 딱 감고 풍천장어로 알고 먹으세요. 이 좁은 바닥에 풍천장어가 얼마나 나오기에 전부 풍천장어라 하니 풍천장어가 웃겠다고 하며 99%가 중국산이라고 하니 어쩐지 입맛이 떫다.


그렇다고 주인에게 ‘이것 진짜 풍천장어요’라고 묻는다면 묻는 사람만 바보라 기분 좋게 먹어주며 맛이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주인의 서빙도 지극했다.


아침 식사를 숙소에서 간단이 하고 오전 일찍 미당(未堂) 서정주 생가와 미당 시문학관을 찾았다. 미당 생가는 초라한 빈농의 전형적인 촌가이며 마당에는 국화꽃을 많이 심어놓아 지금 한참 푸른 잎이 땅에서 솟아오르고 있다. 그에 대표작 시 한 구절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가 생각나게 한다.


미당 시문학관은 생가에서 한 200여m 떨어진 초등학교 폐교를 수리하여 문학관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에 명성에 비하여 초라했다. 미당은 (1915~2000년)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창작 활동기간만 60여년, 천여 편의 주옥같은 시를 남긴 시인이였고 우리 시단에 가장 대표작을 많이 남긴 시인이였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멱’으로 당선, 시인으로 활동하고 일본이 패전한 1945년이니 일제하에서 10여년을 시인으로 생활을 했다는 것인데 한때는 친일파로 매도 되어 그를 규탄하고 폄하하는 졸렬한 제자도 있었다.


내 나이 1934년생인데 1945년 일본이 패망할 당시 국민하교 5학년생 이었다. 아직도 어제와 같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한국에 살면서 일본 신사 참배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던가, 살기위해 댄노 해이카 반자이(천황 폐하 만세)하고 두 손을 세 번 번쩍 올리지 않았던 사람이 몇이나 있었던가.


한일 합방당시 조국을 팔아먹은 매국노를 제외하고는 생존을 위한 적당한 처신은 친일파가 아니라고 본다.


일제하에 그래도 형편 좋고 공부 잘하고 똑똑한 사람은 대계 상업학교나 사범학교에 가는 것이 정 코스이며 대학으로 가는 사람은 거의 없고 있다면 특수한 친일 집안으로 재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개중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대학을 나온 특출한 사람도 있었다.


그들도 대부분 증병으로 끌려가고 한국으로 나와 생존을 위해 직장도 가져 일제하에 협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생활을 하였다고 다 친일파로 매도한다는 것은 국민을 질곡으로 몰아 혼란만 더 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6·25 동족 살상의 전쟁도 61년 전의 일이 되었다. 6·25때 남하하지 못한 사람들을 한때는 친공으로 매도한 때도 있다가 후에 다 이해하고 무마 되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제는 미당에 대한 친일 문제는 더 이상 왈가불가해서는 안되며 고인이 된 한국이 낳은 위대한 시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당 시문학관을 나와 변산반도에 있는 내소사를 향해 갔다.


변산반도와 내소사는 처음이 아니며 젊을 때 이곳 변산반도에 변종난(춘란의 일종)을 찾아 수 십 번을 왔었던 추억이 있는 곳이다. 내소사는 전나무 숲길이 일품이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천왕문에 이르기까지 무성한 전나무 숲길과 침엽수 특유의 맑은 향내음(피톤치드)이 속세에 찌든 가슴속을 시원하게 씻어준다.


이 내변산의 수려한 산세 속에 자리한 내소사는 오랜 세월을 통하여 우리 역사만큼 손실과 폐허 속에 수많은 중수와 중건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백제 고찰로서 자연과 조화로움을 간직한 서해의 관음기도 도량이다.


특히 대웅보전(보물 제 291호)의 꽃살문은 오랜 세월이 찌들어 있어 창살의 꽃무늬가 고태로움에 참으로 아름답다. 대웅전 앞에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지방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으며 오랜 세월이 녹아 숨 쉬고 있다.


내소사는 나에게는 올 때 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반기는 듯 보면 볼수록 정감이 가는 사찰이다.


이곳을 나와 새만금 방조제로 차를 몰았다. 오랜 세월 변산 반도에서 군산까지 세계 최대의 서해안 방조제를 만들어 방조제 길이만도 33.9km이라니 중국의 만리장성에 비견되는 해상 만리장성이라 자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2030년까지 계속 계발된다고 하며 여의도 140배의 면적이라니 한국의 지도가 바뀌는 대역사이며 상상이 가지 않는 곳이다.


몇 번 이 근처에 와서도 방조제의 미완성으로 되돌아갔지만 이번에는 방조제 완성으로 방조제 위를 달려 군산까지 가보는 것이다.


전시장에 들려 간략한 설명과 영상을 구경하고 완성된 방조제로 차를 몰았다. 달려도 달려도 한이 없고 방조제 안의 면적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은 대평원을 보니 마음속으로 ‘대한민국 만세’라고 외쳐 불러보며 감격했다.


새만금의 미래를 영상으로 보니 우리의 국토 확장은 물론이거니와 막대한 농지확보에 항만 구축과 복합 해양 레저에 과학 연구단지 비즈니스 센터와 신재생 에너지 허부구축과 관광단지 조성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대역사임을 느꼈다.


이곳을 나와 방조제 끝에 자리한 수산물 시장에서 점심으로 큰 광어회로 배를 채우고 상경 길에 올랐다.

  

최단
서울 최단치과의원 원장

관련기사 PDF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