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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의 지구촌 기행>
터어키(上)

인천 김동주치과의원 원장 인천광역시치과의사신협 부이사장 www.drkimsworld.com 동로마에서 오스만터어키까지 제국 숨결 넘치는 매혹의 땅 터어키(上) 한국동란 전장에 함께 피흘린 혈맹의 나라 미화 1백 달러에 1억 6천만 ‘리라’ 통화인플레 심각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국민들한테 잠시 잊혀진 과거사를 새삼 일깨워 준 것은 터어키팀의 활약이었다. 터어키팀은 반세기 전 한국동란 때에 참전한 기억을 되살려 가면서 우리나라를 짝사랑하여 왔었는데 막상 도움을 받았던 우리나라는 이를 아득히 잊어버리고, 큰 기대를 하고 한국을 찾아 온 터어키 축구대표팀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었다. 이런 마당에 터어키의 예선 첫 경기가 주심의 판정시비에 휩쓸리면서 한국인 주심 탓에 터어키에서는 한국에 대한 감정이 급격히 악화되었다고 하지만, 많은 한국인들은 그들이 그렇게 한국에 대하여 섭섭해하는 이유를 대다수 국민들은 물론 축구에 관하여 달인인 ‘붉은 악마’들 조차 잘 몰랐을 것이다. 때마침 방송에서 한국동란 때에 참전한 터어키 노병들을 월드컵경기에 초청하여 그들이 피를 흘린 옛 전적지를 방문하고, 함께 참전하여 전사한 사촌형제의 묘를 부산의 유엔군묘지에서 발견하고 감격한 노병들의 모습을 그린 코끝이 찡한 장면을 방영하고, 터어키와 한국이 동반 3-4위전에 오르자 급기야는 천년지기 친구와 같은 우정을 연출하는 드라마를 펼친 것이었다. 터어키는 그 위치가 참 애매한 나라이다. 아시아라고 하면서도 유럽에 속한 독특한 위치에 있다. 한때는 훈족, 흉노족, 돌궐족 등의 이름으로 중국고대사에 나오기도 한 그들은 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역사를 지니면서도 서양역사의 큰 흐름을 이끌어 온 기독교가 로마로 전해지게 된 길목에 있었고 그 후 동로마제국의 중심지로서, 이어서 오스만터어키제국의 등장으로 유럽역사의 한 축을 이루기도 한 나라이다. 터어키의 수도 이스탄불도 시내 한 복판을 가로지르는 보스포러스해협을 중심으로 동쪽은 아시아, 서쪽은 유럽땅이 되는 것이다. 터어키 전체 국토를 따지고 보면 아시아쪽 영토가 유럽쪽 영토보다는 월등히 넓다. 한때는 유럽역사의 중심에 서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다른 유럽의 국가들에 비해 한참 뒤쳐지는 국가 경제력 때문에 유럽인들은 터어키를 아시아국가로 분류되었으면 하는 눈치인 반면 터어키는 기를 쓰고 유럽으로 남고 싶어하는 것 같다. 정말로 그 동안 터어키를 여행하면서 (1993년,1996년,2000년) 가장 곤혹스런 점은 어지러울 정도로 심한 통화인플레였다. 2000년 당시 공정환율이 무려 1 USD = 1,600,000 터어키리라, 즉 USD.100 지폐 한 장만 환전하여도 무려 1억6천만 리라가 호주머니에 들어오게 되어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지만 금새 택시요금으로 2천만리라를 지불하고, 콜라 한 병에 백만리라를 내고,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 숙박비로 3천만리라를 지불하고 나면 화폐규모에 적응하지 못하여 돈을 주고받는데 화폐의 동그라미숫자의 개수를 세는 것이 여간 신경이 쓰이질 않게 된다. 터어키의 고궁이나 박물관등의 입장료도 인플레속도를 따라가지 못하여 아예 새 입장권의 인쇄를 포기한 것인지 이미 인쇄된 여러 종류의 입장권을 그때그때 변동된 입장료의 총액수만 맞추어 여러 장 건네고 있는 실정이다. 터어키의 수도 이스탄불은 매우 매혹적인 도시이다. 동로마제국시절 콘스탄티노플로 불렸던 시절의 비잔틴문화로부터 오스만터어키의 화려했던 시절을 거치면서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혼재된 독특한 문화를 지니고 있으며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도시로서 스파이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유럽과 아시아를 구분 짓는 경계선도 바로 이스탄불 시내를 반으로 가르는 보스포러스해협인 것이다. 이스탄불의 오랜 역사와 그 변천과정은 구도시에 있는 성소피아사원에서 잘 나타난다. 6세기에 유스티니안황제에 의해 교회로 세워진 소피아사원은 그 후 오스만터어키시절에는 이슬람사원으로 바뀌게 되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지만 내부의 천장에는 아직도 아랍어로 문구와 함께 벽에는 지운 흔적이 남은 기독교교회로 사용될 당시의 성화가 모자이크벽화로 흐릿하게 남아 있어서 그 변천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하늘 찌른 자존심, 헬레니즘으로 승화 터어키 모스크는 이스탄불 상징 이방인도 매료 톱카푸궁전 ‘하렘’ 금도금 수도꼭지는 호화로움의 상징 물담배 피우며 터키탕서 사교 즐겨 성소피아사원과 마주보고 있는 술탄아흐멧 모스크(SULTAN AHMET MOSQUE)는 성소피아사원과 함께 이스탄불을 상징하는 건물로서 블루모스크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성소피아사원보다 약 1000년 후에 세워졌지만 블루모스크는 교회로 세워진 성소피아사원을 의식한 듯 규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