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치 원인설 중 화학세균설(Chemico-parasitic theory)은 불후의 학설이다. 충치설에 관련해서 기술하거나 말할 때에는 밀러, Willoughby Dayton Miller(1853.8.1.~1907.7.12)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에서는 편의상 ‘WD 밀러’라고 표기 하였다.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할아버지는 농사를 지었다. WD 밀러는 미국 오하이오 알렉산드리아 농촌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3살 때 뉴왁(Newark)으로 이사, 1871년에 중학을 마쳤다. 1875년까지 미시간대학교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여 BA학위를 받았다.
향학열에 불탄 WD 밀러는 영국 에딘버러대학에 유학하였다. 학자금을 예금했던 은행이 도산하여 1년간 무진한 고생 끝에 독일 베를린대학으로 전학했으나 건강까지 잃고 학업마저 중단했다. WD 밀러는 우연히 미국인 치과의사 트루먼(James Truman)을 알게 되고, 트루먼은 베를린의 미국인 치과개원의 애봇(Frank Abbot)을 소개, 애봇 집에서 일하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번역하면서 애봇을 돕고, 집에서는 가정교사로 애봇 부인과 딸에게 영어와 자연과학을 가르쳤다. 드디어 딸과 결혼하면서 치과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하였다.
1877년 봄. 장인 애봇의 지원을 받아 미국 펜실베이니아치과대학에 입학하였다.
1879년 DDS학위를 받고, 논문·치수의 보존치료 / The Conservative Treatment of the Dental Pulp을 발표하여 상을 받고 베를린으로 돌아왔다. 그는 즉시 당대의 저명한 세균학자 코호(Robert Koch)에게 사사하여 미생물 연구에 골몰하였다.
결과는 ‘Dental Cosmos’(1881년 9월)에, 38쪽에 이르는 논문 ‘사람 입은 바로 감염중심이다 / The Human Mouth as a Focus of Infection’을 포함, 164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WD 밀러는 《구강미생물/Die Microorganism der Mundhole/The Microorganisms of the Human Mouth(1888년)과 《보존치과치료 교과서/Lehrbuch der konservieranden Zahnheilkunde》(1896년), 이 두 저술은 전체유럽과 미국, 그 치의학계의 큰 별로 뜨게 했다.
독일 황제는 WD 밀러에게 추밀의관을 수여, 모교 미시간대학은 명예학위, 펜실베이니아대학은 명예이학박사 학위를 보내왔다. 베를린대학은 치과대학교수에, 1884년에는 제실(帝室)교수에 임명하였다. 독일인에게만 수여하는 특명교수(Extraordinary Professor)에 임명하겠다며 귀화할 것을 권유했다.
WD 밀러는 지상의 혜택과 편의 제공도 뿌리치고 독일을 떠나 미시간치과대학 학장을 택했다. 프러시아황제는 WD 밀러를 추밀고문관의 영예를 수여하고 독일치과의사회는 WD 밀러 재단헌장을 증정하면서 미국으로 가는 그를 환송하였다. 1907년 6월 1일 독일을 떠났다.
미국에 도착한 WD 밀러는 미국 치의학계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치대학장 취임 길에, 어린 소년의 꿈을 키웠던, 아직도 알렉산드리아에 살고 있는 누이를 만나러 옛날 농장으로 갔다.
누가 인간지사(人間之事)는 호사다마(好事多魔)라거나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하였던가.
WD 밀러는 맹장 파열로 뉴왁 병원에서 수술을 받던 중, 심장발작을 일으켜 급서하였다. 향년 54세.
1908년 FDI는 국제 밀러 상(International Miller Prize)을 제정하여 5년마다 상을 주어 WD 밀러의 공적을 기려왔다.
1912년 베를린대학교 치과대학은 건물을 개축하면서 WD 밀러 초상이 들어있는 창문을 달았으나 1945년에 파괴되었다.
1915년 WD 밀러의 위대함을 기리기 위해 출생지 오하이오주에서는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치과대학 앞마당에 기념상을 세웠다.
치의학 발전에 무한한 잠재력, 미지의 창의력, 불굴의 탐구의지를 소유했던 WD 밀러의 요절은 아쉽고 비통하다.
10년 전(2004.11.20.), 맹장이 터져 합병증(복막염+폐수종+기흉 등)으로 사경을 헤매다가 천우신조(天佑神助)로 기사회생(起死回生)한 필자 자신을 생각하면, WD 밀러 생애는 짧고 치의학의 횃불은 너무나 일찍 꺼졌다. 억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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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태 영한한 이치의학 사전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