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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보의 ‘晝診夜讀’ 2년 ‘치의 출신 1호 법관’ 타이틀

치과 밖으로 행군하라 ❻법조계

치과 밖으로 행군하라 ❻법조계

하태헌 수원지방법원 판사


“법조인 삶은 학창시절의 꿈
 균형감각 갖춘 소신있는 판사될 것”

“어느 직역이든 힘들고 경쟁 치열
 법조인 꿈꾼다면 도전해보라”


사람들의 관심은 늘 ‘최초’와 ‘최고’의 대상을 향한다. 치과계에도 이름 앞에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어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들이 있다. 그 가운데 치과의사 출신으로는 처음 법복을 입은 이가 있다. 바로 그 주인공은 하태헌(서울치대 95졸·사시 43회) 판사다.


“법관 생활이란 홀로 사막길을 쓸쓸히 걷는 것과 같다.” 명법관으로 존경받는 미국의 올리버 웬델 홈스(Oliver W. Holmes) 전 연방대법원 판사는 만년의 수필에서 이같이 썼다. ‘홀로 사막길을 걷는 것과 같다’고 표현될 만큼 법관의 길은 고독하다. 하태헌 판사는 왜 전도유망한 치과의사의 삶을 포기하고 고독한 법관의 길을 선택한 것일까.

하 판사를 수원지방법원에서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야기는 그가 경기도 평택에서 공보의로 근무하던 지난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낮엔 진료 밤엔 사시 공부
그는 “많은 분이 왜 치과의사에서 법조인으로 진로를 바꾸게 된 것인지 궁금해한다(웃음). 그런데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그 당시 여러 가지 상황이 나를 자연스레 법조인의 길로 이끈 것 같다”며 “보건소에서 공보의 생활을 1년 남짓 마쳤을 때 문득 내가 지금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은 2년여의 시간은 좀 의미 있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 판사는 학창시절 잠깐 법조인을 꿈꾼 적이 있다. 뒤늦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낮에는 진료를 보고 밤에는 시험공부에 매달렸다. 그렇게 시험 준비를 시작한 지 2년여 만인 2001년, 그는 마침내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성적은 최상위권이었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수년간 고시공부에만 매달려온 수험생들이 들으면 무척 배 아플만한 대목이다.

그는 “주진야독(晝診夜讀)으로 공부했다(웃음). 절대적인 공부 시간이 부족한 데다가 수험정보가 부족해 어려움이 많았다”며 “하지만 법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적성에 맞았었던 것 같다. 사법시험도 암기가 아닌 논리 싸움이다. 비록 치대를 나오긴 했지만, 이과생들이 논리로는 어디 가서 안 진다(웃음)”고 말했다.

갑자기 그가 지난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진 않는지 궁금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지난 선택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 판사는 “개업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때로 ‘내가 치과의사로 계속 살았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하게 된다(웃음)”며 “하지만 지난 결정에 대한 후회는 전혀 없다. 가족들도 내가 판사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모두 만족해한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는 초임판사 시절 자신이 내린 판결로 인해 한 회사의 상품 포장지가 바뀌게 되는 경험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판결 하나가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과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이후 그는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정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 

하 판사는 “판사에게는 ‘균형감각’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판사는 어느 한쪽 가치관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양쪽 입장을 다 들어봐야만 균형 있게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다. 앞으로도 항상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소신 있게 판결을 내리겠다”고 강조했다.

# 법조계 대한 막연한 환상은 금물
그는 자신처럼 법조인을 꿈꾸는 치대 후배들에 대한 진심 어린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하 판사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법조계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그런 이유를 통해 직업을 바꾸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 분명히 후회할 일이다”라며 “어느 직역으로 가든 힘들고 경쟁이 치열하긴 마찬가지다. 법조계라고 해서 티브이 드라마에 나오는 것과 같진 않다. 여기도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고 말했다. 

치과의사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 때문에 하 판사는 법원 내에서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만큼 부담도 컸다. 그는 비법대 출신으로서 학맥과 인맥으로 얽혀있는 법조계에서 인정받기 위해 남들보다 몇 배로 더 노력했다. 그 결과 서울서부지법과 서울중앙지법 등을 거쳐 현재 수원지법에서 공보담당 및 기획법관 업무를 맡고 있다.

하 판사는 인터뷰 내내 공직에 몸담고 있는 점을 상기시키며 말을 삼갔다. 노래를 좋아해서 중창단 활동을 하고 있다는 그는, ‘판사’ 하면 흔히 떠오르는 딱딱한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누구보다 화려한 스펙으로 자칫 엘리트의식에 젖어들 수 있는 그지만, 인터뷰 내내 겸손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정연태 기자 destiny3206@dailydental.co.kr

법조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물


전현희 전 국회의원
서울치대를 1990년 졸업했다. 치과의사로 활동하다가 1996년 치과의사 출신 최초로 제3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008년부터 2011까지 제18대 국회의원(민주당)으로 활동했으며, 당 원내부대표를 맡은 바 있다.

양승욱 변호사
서울치대를 1995년 졸업했다. 2001년 제43회 사법시험 합격해 현재 양승욱 법률사무소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장연화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연세치대를 1993년 졸업했다. 1998년 제40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2001년 치의출신 첫 여성검사로 치과계 및 세간의 관심을 모으며 법조계에 입문했다. 이후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현재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김연경 판사
서울치대를 2000년 졸업했다. 2003년 제45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현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판사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