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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답사 기행(5)>
청평사, 상사뱀의 사랑이 잠긴 자리

“늦가을 젊은 날의 낭만 느끼자” 사랑이 남긴 상처는 깊고도 넓다.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의 상처가 어디까지 치닫게 될 지 알 수 없는 것은 좀처럼 좀 잡을 수 없다. 내 뱀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더라도 그대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그대가 가는 곳 어디라도 함께 할 수 있다면 미세한 먼지가 되어서라도 사랑할 수 있다면!
청년은 사랑의 한을 품은 채 그렇게 죽었다. 이승에서는 뛰어넘을 수 없는 신분. 청년은 광대였다. 당 태종은 매년 전국의 광대들을 모아 그들의 재주를 겨루는 대회를 열었다. 청년의 신기에 가까운 묘기에 모두들 넋을 놓고 감탄만 할 뿐이였다. 공주는 아버지 태종과 함께 그곳에 나왔다가 19살의 청년에게 마음을 뺐기고 말았다. 공주와 청년은 밀회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도 잠시. 청년의 목숨은 황제의 노여움 앞에서 늦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보다 연약한 것. 청년은 죽어 상사뱀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공주의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공주는 날로 쇠약해져 갔다. 유명복술가나 점성가를 불러다 공주의 몸에 붙은 뱀을 떨어뜨리려 했으나 혹 공주에게 해를 끼칠까 전전긍긍했다. 온 나라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부처님께 기도했으나 별 소용없었다. 그때 홀연히 신라에서 건너온 승려가 신라땅 경운산(고려 이후 청평산으로 불렀다) 청평사에서 기도할 것을 권했다. 서둘러 길을 떠나 아름다운 물줄기을 따라 가니 맑은 청정계류가 발길을 끌었다. 먼 길에 지친 공주는 공주굴이라 부르는 동굴에서 노숙하고 다음날 범종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절이 저만큼 보이자 공주는 상사뱀에게 “절에 가서 예불을 드리고 올 터이니 잠깐 내 몸에서 떨어져 주소서. 너무 의심마시고 잠깐 기다려 주세요.”간절히 말했다. 그 순간 뱀은 이제와는 다른 태도로 스르르 몸에서 떨어졌다. 공주는 법당에 들어서 간절히 기원했다. 저 청년의 영혼에게 안식을 주기를. 뱀은 공주가 궁금했다. 그래서 절 문을 들어섰다. 그순간 뇌성벽력과 함께 억수로 쏟아지는 소나기에 휩쓸려 여기저기 부딪치다 결국 죽고 말았다. 공주가 돌아와 보니 뱀은 폭포아래 죽어있었다. 가련한 마음에 정성껏 묻어주고 당나라에 이 사실을 알렸다. 당태종은 기쁨에 겨워 많은 재물을 보내 화려한 법당을 짓도록 했다. 공주는 구성폭포 위에 삼층탑을 세워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했다. 지금도 사람들은 공주탑이라 부른다. 청평사가 위치한 청평산(오봉산)은 자연경관이 빼어난데다가 산자락 한 끝을 소양호에 담그고 있어서 배로 접근하는 운치를 더한다. 소강강 댐에서 배를 타면 10분. 배에서 내려 1km 청평사로 가는 길은 연인들의 길이다.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면 초겨울을 맞이한 계곡에는 지난 가을 수북히 쌓인 낙엽이 늦가을의 정취를 돋운다. 그리고 그곳에는 구성폭포가 있다. 조용히 귀 기울여 들으면 아홉 가지 소리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오른쪽 산등성이에 전설의 공주탑이 있으니 꼭 한번 보고 돌아오길. 청평사는 고려 선종때의 문신인 진락공 이자현의 개인정원에 가까운 사찰이다. 그래서 이곳에는 진락공의 부도(승려들의 묘탑)가 있다. 부도 앞으로는 이자현이 조영한 영지(影池)가 있다. 별스럽지 않게 그냥 지나치기 쉽다. 흔히 어느 사찰에서나 볼 수 있는 것으로 취급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곳은 이자현이 청평사 주변을 방대한 개인 정원으로 가꾼 문수원의 일곽이다. 주변 경관을 최대한 살리면서 최소의 인공을 가해서 만든 지금까지 밝혀진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정원의 한 흔적이다. 이자현이 문수원에 머문 1089~1125년 사이에 만든 것이다. 그는 이곳에 머물면서 입적할 때까지 약37년 동안 불도를 닦는 틈틈이 절을 고치고 여러 전각과 정자를 새로 지었다. 그리고 청평사를 중심으로 곳곳에 눈을 돌렸는데 구성폭포에서 상류 3km에 이르기까지 계획된 정원을 만들었다. 지금은 세월에 묻혀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차분히 돌아본다면 그때의 모습을 적잖이 짐작할 수 있다. 연못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높직한 축대위에 청평사의 상징처럼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청평사는 6.25때 불탄 것을 최근에 조금이나마 절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소나무가 있는 층계를 오르면 회전문이 있다.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이름이다. 중생들에게 윤회 전생을 깨우치기 위한 ‘마음의 문’이다. 옛 주춧돌과 축대만이 고려시대 화려했던 모습을 전해주는데 대웅전과 범종각이 호젓하다. 새롭게 복원한 전각들엔 새 것의 냄새가 나지만 그것을 켜켜이 쌓인 전설과 역사가 있어 더 없이 반갑다. 젊음과 낭만의 도시 춘천. 누구나 젊은 날의 추억이 있는 곳. 그곳에 소양강 청평사가 있어 더 반갑다. 수많은 연인들이 <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