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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제 몸을 당신에게 맡겨도 되겠습니까?

■신년기획/ 이 시대 다시 묻는 'Dental Professionalism'

치대 의료윤리교육 고작 1~8시간 턱없이 부족
대학·중앙회·치평원 3박자 맞아야 윤리 완성
협회도 JDA처럼 사회중심가치 비전 제시해야

우리 사회는 치과의사를 포함한 의료인들에게 다시 준엄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선생님, 제 몸을 당신에게 맡겨도 되겠습니까?’라고. 이 질문은 비단 몸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존경, 신뢰, 책임 등 그동안 의사라는 전문직을 지탱하고 있던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다. 그리하여 다시 ‘윤리의 시대’다. 치의신보는 2016년 새해를 맞아 ‘Dental Professionalism’, 즉 치과의사의 전문직 윤리에 대해 다시 한 번 고찰해보고, 새로운 정립의 가능성에 대해 모색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지난해 한 포털사이트가 대학생들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했다. “당신은 어떤 직종의 종사자를 가장 존경합니까?” 1위로 꼽힌 직종은 의외였다. 소방관 및 구급대원(17.7%). 존경을 받기 위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는 ‘도덕성(13.9%)’를 꼽았다. 직업별 종사자 중 소방·구급대원을 가장 도덕적인 직업인으로 본 것이다. 치과의사는 순위권 안에 없었다.

캐나다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캐나다는 의료인들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높은 나라로 꼽힌다. 지난해 여론조사 기관 Angus Reid가 발표한 직업 존경도에 따르면 치과의사는 의사·간호사, 농부, 과학자, 수의사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배경에 캐나다의 사회보장시스템과 의료인 단체들의 뼈를 깎는 ‘자율규제(Self regulation)’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 먹고사니즘 앞에 매몰되는 가치들

대한민국 의사들은 전례 없던 위기에 빠져 있다. 그것은 경제적 위기, 의술의 위기가 아니다. 도덕의 위기다. 동네 의원에서는 자신의 몸을 가누기도 힘든 의사가 주사기를 재사용해 감염 환자를 양산해 내고, 의대생은 여자친구를 감금, 폭행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중동에서 건너 온 호흡기 질환은 의사들의 감염병 대처 능력에 물음표를 달아줬다.

치의학계로 눈을 돌려보자. 네트워크 형태의 신종 사무장병원들은 계속 세를 확장하고 있고, 치열한 송사가 이어진다. 동네 치과에서는 위임진료, 나아가 무자격자의 불법진료가 여전하고, 명의대여의 유혹은 독버섯처럼 씨를 퍼뜨린다. 수가 덤핑과 각종 할인 이벤트로 도심에서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들은 더 이상 치과의사에게 신뢰감을 보내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가.

“제가 회무를 시작하고, 1인1개소법 위반·환자유인알선 하고 있는 선후배들과 싸운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이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가 급한데, 이미 자리 잡은 선배들 사이에서 수익을 내려면 어쩔 수 없다. 다 양심적으로 사는 건 아니지 않느냐. 나는 먹고 사는 문제가 급하다’라고 해서 아무 말도 못한 기억이 납니다.”

수도권의 한 지부 A이사는 회무 임기 초반을 떠올렸다. 그는 주위에 있는 선후배들부터 설득을 해나갔으나 곧 암초에 부딪혔다. 암초의 이름은 ‘먹고사니즘’. 먹고 사는 문제는 절박하고도 신성하다.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전면적 경쟁이 심화된 후기 자본주의에서 젊은 치과의사들의 먹고사니즘은 한층 더 당당하다. 30대 초반의 B원장은 “먹고 사는 문제를 앞에 두고 불법 네트워크 치과에 취직하면 안 된다, 라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나쁘다고 탓할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사정을 봐야한다”고 강변했다.

이런 사정은 우리나라만의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영국 킹스칼리지의 J.E 갤러허 박사가 쓴 ‘Dental Professionalism’이라는 칼럼에 따르면, 영국의 치과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성향조사를 한 결과 치과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의과 학생들에 비해 ‘status and security(지위와 안정성)’, ‘high income(높은 수입)’에 대한 희구심이 월등히 높았다. 갤러허 박사는 “치의학은 성형외과의 비즈니스 모델을 뒤따르고 있다”고도 말했다.

# 덴탈 프로페셔널리즘이란 무엇인가?

그러나 고도로 훈련 받은, 그리고 인간의 신체를 다루는 전문직 종사자가 단지 ‘먹고 사는 문제’만 천착하기에는 의료인 전문직종이 사회와 맺은 계약의 무게감이 남다르다. 사회는 치과의사에게 면허라는 독점적 지위를 부여했고, 높은 수준의 ‘자율 규제’ 의무를 부과했다.

이명진 의료윤리연구회 초대회장(이비인후과 전문의)은 “전통적으로 사회가 우리 의사들에게 요구하는 덕목들은 이타심, 책임감, 우월성, 의무, 봉사정신, 명예, 청렴성, 타인에 대한 존중 등으로 축약된다”며 “이런 덕목들은 교육과 강력한 자율징계로 달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 유수의 학자들이 정의하는 치과의사의 직업윤리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위에서 언급한 갤러허 박사가 정의하는 ‘Dental Professionalism’은 크게 ▲Integrity(진실성) ▲Compassion(공감) ▲Altruism(이타심) ▲Continuous improvement(끊임없는 자기계발) ▲Excellence(탁월한 전문성) ▲Working in partnership with members of the wider healthcare team(타인과의 협동)으로 구성된다.

대한민국 치과의사들은 이런 덕목을 교육받은 적이 있는가. 한국교육심리학회가 서울시와 전라도 소재의 4개 치과대학 재학생 691명을 대상으로 ‘치과대학생의 전문직업의식 발달 경향’을 조사한 결과, 치과대학생들의 전문직업의식의 발달경향성 지수 중 책임감, 통제감, 자율성 지수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 우리 윤리교육의 현 주소는?

결국 치과의사 직업 윤리의 출발과 끝은 ‘교육’이다. 치의학계 최초로 윤리 전임교수로 발탁된 강명신 교수(강릉원주치대 · 대통령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는 “윤리교육으로 도덕군자를 만들자는 게 아니”라며 “천성을 바꿀 수는 없지만, 치의학 커뮤니티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시스템에 대한 생각은 충분히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우리 치과 윤리학 교육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현재 일부 치과대학에서 윤리 전문과정을 개설하고 전임 교원을 채용하는 등의 움직임이 있지만, 크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2011년 한국의료윤리학회지에 실린 ‘치의학교육기관의 연구윤리교육 현황’에 따르면, 관련 수업은 총 대학 중 63% 정도가 운영하고 있지만,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대학은 학부를 통틀어 16시간 정도였다. 보통 1시간에서 8시간 정도의 분포였다.

서울의 한 치대 본과 4학년에 재학 중인 C학생은 “윤리학이라고 할 수 있는 수업은 1년에 몇 시간 정도로 진행된다”며 “시험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이 거의 신경을 안 쓰고, 담당 교수님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국은 직무윤리 교육과 병행해 아예 학생들을 대상으로 직무 적합성을 평가하는 시험인 ‘UKCAT’을 시행하는데, ▲언어추론 ▲수량추론 ▲관념추론 ▲상황분석 ▲상황판단 등 약 160여 개 문항을 통해 입체적으로 치과의사 직업 인적성을 평가한다. 사회가 원하는, 환자를 위하는 치과의사를 배출하겠다는 게 목표다.


# “구강건강은 인간의 기본권”

치과의사 전문직 윤리의 완성을 위해서는 대학(교육기관), 중앙회(치과의사회), 치의학교육평가원(평가 · 인증기관)의 3박자가 맞아야 한다는 게 강명신 교수의 지적이다.

대학은 체계적인 윤리교육 과정을 구비하고, 평가원은 그것을 평가하고 인증한다. 나아가 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은 윤리학 관련 문제를 대폭 늘려 윤리학, 인문사회학에 대한 관심을 유도한다. 그렇다면 중앙회의 역할은 뭘까.

박영국 교수(경희대 치의학대학원장)는 ‘사회중심가치’ 모델을 제시한다. 치협은 치의학이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명확하고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원장은 “치과의사 전문직 윤리의 출발점은 ‘우리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치과의사회(JDA)의 사례가 참고할 만하다. 

JDA는 지난해 3월 WHO와 함께 ‘도쿄선언’을 발표했다. 여기서 JDA는 “구강건강 관리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라 선언하고, “치과의사는 치과치료를 통해 증가한 비전염성 질환(NCD)에 대처해야 하며, 간호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지원을 확대하고 (구강병으로 인한)조기사망을 예방해야 한다”고 외쳤다.

박영국 원장은 “우리가 그려야 할 사회중심가치는 구강건강이 전신건강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으며, 이것이 삶의 질을 높인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리는 것”이라며 “이는 국가자원이 치의학 의료에 투입돼야 한다는 자연스러운 명제를 만들어 주며, 예방치의학으로의 관점 이동으로 궁극적으로 현재 치과계가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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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스스로 자율정화 하자”
  연구회 등 직무윤리 실현 움직임 싹터

위기는 가능성이라는 씨앗을 배태한 기회다. 우리는 늘 위기를 언급하지만, 그래도 묵묵하게 그 다음을 준비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현재 한국 치의학계에서 대표적인 단체는 ‘자연치아아끼기운동본부’다. 이승종 연세치대 보존과 교수가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이 단체의 모토는 ‘한국식 2080운동’이다. 자연치아로 평생 구강건강을 영위할 수 있게 대한민국 치의학계의 관점을 바꾸는 게 이들의 목표다.

이승종 대표는 “처음 활동을 시작할 당시 공교롭게도 언론보도에서 무분별한 임플란트 시술 등을 다뤄 우리의 활동이 오해받은 측면이 있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대한민국 치과계의 인식도 많이 바뀌어 자연치아를 오래 사용하는 것이 환자에게도 치과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노력들은 결국 치과의사에 대한 대국민 이미지를 제고하고, 우리의 직업적 행복감, 직업윤리의식을 높이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2월 초 ‘발치의 기준’이라는 주제로 열린 운동본부의 학술대회에는 이례적으로 300여 명의 등록자가 몰려 자연치아 보존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방증했다.

또 하나의 흐름은 (가칭)치과의료윤리연구회를 조직하려는 시도다. 의학계는 이미 지난 2010년 이비인후과 개원의인 이명진 회장의 주도로 ‘의료윤리연구회’를 조직, 매달 의협 회관에서 다양한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며 학술적 논의를 이어 가고 있다.

여기에는 양정강 전 보험학회 회장 박영채 치협 홍보이사, 조영탁 서울지부 법제이사 등이 참석해 ‘청강’을 하고 있는데, 치과 임상에서 통용될 수 있는 치과의료윤리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우리의 연구회를 조직해 보자는 움직임도 움트고 있다.

치협과 서울지부의 역대 최연소 이사로 꼽히는 정국환 국제이사와 조영탁 법제이사는 올해 3~4월 출범을 목표로 현재 정지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정국환 이사는 “회무에 참여하는 이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개원의로서 우리 개원현실과 치과의사의 직무 윤리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는 장이 없다는 것이 늘 아쉬웠다”고 말했다.

또, 조영탁 이사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 강력하게 자율정화하지 못한다면 외부의 힘에 의해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윤리연구회를 통해 성찰하고 반성하는 분위기를 확산시키고자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