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반. 강남구에 위치한 A치과는 여느 때 같으면 한참 진료준비에 바쁠 시간이지만, 이날은 전 직원이 로비에 모여 특정 안건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평소대로 하시면 되지만, 상대적으로 환자의 인지, 습득 능력이 떨어진다고 판단 될 경우에는 기록이나 차팅 같은 부분에 더 많이 신경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이 치과의 원장은 “우리 치과의 경우 기존에 수술동의서나 차팅, 상담의 방식에 신경을 많이 써왔기 때문에 큰 변동은 없지만 혹여 모를 미스커뮤니케이션에 대비해 기록과 환자 동의에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 중대한 위해는 과연 어디까지?
지난 21일 전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설명의무법’이 본격 시행됐다. 관련법(의료법 제24조의2)에 따르면, 의사·치과의사 ·한의사는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 등을 하는 경우 중요사항을 설명하고,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의료기관의 의사는 ▲발생하거나 발생가능한 증상의 진단 ▲수술 등의 필요성과 방법·내용 ▲설명한 의사와 수술에 참여한 의사의 성명 ▲발생가능한 후유증과 부작용 ▲환자가 준수해야 할 사항 등에 대해 환자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이를 위반한 경우에는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받고, 민사상 손해배상의 영역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법의 시행 첫날과 둘째 날 서울 소재의 치과를 중심으로 분위기를 살펴봤다. 개중에는 법의 시행 자체를 모르고 있는 치과도 있었으나, 대개 시행을 인지하고 사전에 이에 대해서 교육을 진행한 치과도 다수 있었다.
강남구에 위치한 B치과의 경우, 구강악안면외과 영역의 수술(양악수술, 안면윤곽 등)을 전문적으로 하는 치과다. 치과의 원장은 설명의무법이 시행되기 이전부터 ‘설명의 의무’를 최대한 준수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주로 양악수술 같은 전신마취가 필요한 수술을 전문적으로 하다 보니 수술동의서나 수술에 따르는 주의사항, 후처치에 대한 부분은 환자들에게 꼼꼼하게 교육시키고 그에 대한 동의나 기록도 챙기고 있었죠. 법이 시행됐다고 의사가 직접 설명해야 하는 부분이 크게 달라지거나 문서의 형태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이 설명의 의무가 어떤 시술영역에까지 해당하는지는 애매한 지점이 있습니다.”
영등포구에서 개원하는 C원장의 말도 다르지 않다. C원장의 대비책은 좀 더 ‘급진적’이기까지 하다. 결국 분쟁의 국면에서 책임소재를 재보자는 게 법의 취지이니 분쟁이 생길 만한 요소를 없애겠다는 것.
“그냥 수술이라고 불릴만한 진료는 한동안 하지 않으려고요. 치근만 남은 경우 CLP를 한다거나, 고령환자가 아파서 왔는데 엔도를 한다거나 발치한다거나 하는 건 환자가 불편해도 하지 않는 게 (치과를 위해) 안전한 거 아닌가요? 치은판막소파술 같은 것도 피하고…”
푸념이 다소 섞여 있지만,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가중되고 있는 각종 규제책에 대한 일종의 저항인 셈이다.
실제로 어디까지가 환자 동의의 영역인지에 대한 설왕설래가 일선 현장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덴탈과 메디컬을 가리지 않는 공통의 화두다. 백내장 수술을 주로 하는 강남의 D원장은 “1만 건의 백내장 수술을 했는데, 동의서가 없어도 분쟁 한 건 없었다”면서 “학회에서 나온 동의서 양식이 10페이지가 넘는데 이걸 언제 다 받고, 진료는 또 언제 다 보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치과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침습수술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어디까지가 법이 규정한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인지에 대해 전혀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조성욱 치협 법제이사는 “현재의 의료 현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우려감이 있다”면서 “동의서를 받지 않고 이뤄지는 치과 수술이 다양한데 이에 대해 하위법령에서조차 세부사항이 규정돼 있지 않아 혼선이 예상된다. 향후 복지부에 치과계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전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