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8 (토)

  • 구름많음동두천 22.4℃
  • 구름많음강릉 23.7℃
  • 맑음서울 24.0℃
  • 구름많음대전 24.7℃
  • 구름많음대구 23.5℃
  • 구름조금울산 24.7℃
  • 구름많음광주 25.8℃
  • 구름조금부산 27.9℃
  • 구름조금고창 26.8℃
  • 구름조금제주 27.7℃
  • 구름조금강화 23.1℃
  • 구름많음보은 23.4℃
  • 구름많음금산 24.8℃
  • 구름많음강진군 25.9℃
  • 구름많음경주시 24.7℃
  • 맑음거제 25.1℃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문화답사기행(8)
아름다움과 외로움이 담긴 별천지

입춘(立春)이 지나자 봄같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방송에서는 의류매장의 진열된 봄옷을 통해 성급하게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긴 겨울 동안 움추렸던 몸에 활기를 불어넣어줄 봄을 빨리 맞고싶은 심정일 것이다. 얼마전 소설가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다시 꺼내 읽었다. 10여 년 전 무심코 읽었던 이 소설에 푹 빠져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리고 곧 바로 찾아들었던 소록도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소록도에 대한 나의 기억은 상록수 가득했던 이른 봄날 아침으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이맘때가 되면 절로 남쪽 고흥 땅 소록도를 생각게 된다. 소록도에 새로 부임하게 된 주정수 원장. 그러나 그가 부임한 것을 기념이라도 하듯 환자 둘이 섬을 탈출한다. 필시 거친 물살에 휩쓸려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원장은 환자들이 이 섬을 탈출하는 이유와 원장에 대한 알 수 없는 반항에 대해 하나하나 들춰나간다. 환자들의 가슴에 푸른 바다보다 더 깊이 각인된 슬픔의 멍 자국을 들여다보았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룸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문둥이 시인 한하운이 걸었던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전라도 길의 마지막 종점이자, 국도 27호선의 남쪽 끝자락 고흥군 도양읍 녹동항에 섰다. 부지런한 어부들의 오가는 활기찬 항구에 갈매기는 쉼없이 날아다니고, 먼 섬들을 오가는 여객선은 손님을 부르고 있다. 나는 처음 소록도를 찾은 후 매년 봄이 오기 전 이곳을 찾았다. 녹동항에서 건너뛰어도 될 거리에 거친 물살이 오가는 해협을 사이에 두고 소록도는 있다. 먼 바다 가운데 있을 것 같은 소록도가 눈앞에 있다니, 적잖이 놀랐다. 철부선 수시로 오간다. 배는 돌아서자 곧 섬에 닿는다. 섬에 내리자 ‘한센병은 낫는다’라고 쓴 돌기둥이 보인다. 나병,문둥병으로 불리는 이 병의 명칭은 ‘한센병’이다. 길을 따라 걷는다. 새들의 천국이다. 온갖 새소리가 숲에서 들려온다. 동백, 해송, 오래된 벚꽃나무가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고, 그 사이사이로 붉은 벽돌집,성당,우체국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오른쪽으로 바다가 열리면서 소록도병원에 닿는다. 병원 뒤에는 이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앙공원이 있다. 100년은 넘었을 황금편백, 실편백, 히말라야 삼나무가 조각품처럼 다듬어져 있고, 동백, 매화, 진달래, 영산홍 등 꽃나무들이 적당한 자리에 조화롭게 가꾸어져 있다. 그 아름다움을 표현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러나 더 안타까운 것은 소록도의 아름다움만큼이나 깊이 스며 있는 아픔을 그려내지 못하는 것이다. 소록도의 아름다움 뒤에는 환자들의 눈물과 피땀의 사연이 있다. 1916년 자혜의원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개원을 한 뒤, 일본인 원장들은 6,000여 명의 환자들을 동원하여 섬 가꾸기에 열을 올렸다. 직접 벽돌공장을 운영하며 거기서 만든 벽돌로 예배당, 회관, 치료실등 각종 건물을 세웠다. 진도,완도,대만 등지에서 보기 좋은 관상수와 바위들을 옮겨 왔고, 섬 일주도로까지 닦았다. 6,000평에 이르는 중앙공원은 대부분 4대 원장 슈호가 재임하던 기간(1933~1942)에 이루어졌다. 공원 가운데 커다란 바위는 ‘메도 죽고 놓아도 죽는 바위’라는 별명이 있다. 바위를 옮기느라 목도를 매면 허리가 부러져서 죽고, 놓으면 맞아서 죽는다는 말이었다. 이 바위에는 한하운의 보리피리가새겨져 있다. 보리피리 불며/봄 언덕/고향 그리워/필 늴리리/보리피리 불며/꽃 청산/어린 때 그리워/필 늴리리/보리피리 불며/인환의 거리/인간사 그리워/필 늴리리/보리피리 불며/방랑의 기산하/눈물의 언덕을/필 늴리리 슈호원장은 중앙공원 가운데 자신의 동상을 세웠다. 낙성식이 있던 날 동상 앞에서 사열을 받다가 한 환자의 손에 죽임을 당하였다. 손가락이 없는 손으로 쇠조각을 갈아 만든 칼을 손목에 칭칭 동여매고 슈호를 찔렀던 것이다. 이청준의 소설『당신들의 천국』에는 이 사건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으며, 주정수 원장이 이 섬에 부임한 후 벌였던 간척사업이 그려져 있다. 환자들을 구금해던 감금실, 강제로 정관수술했던 검시실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그때의 아픔을 되새기게 한다. 또 기념관에는 소록도의 역사와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기록해 두고 있어 찬찬히 둘러보면 좋다. 환자지대인 소록도 마을은 일반인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천천히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은 직원지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