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흑인 아주머니 집에 영어 회화를 배우러 다니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미군의 아내였습니다. 영어 공부 시간이라기보다는 식탁에 둘러 앉아 아주머니께서 주시는 코코아와 쿠키를 먹으면서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미국 치과대학의 펠로우쉽 프로그램에 입학하기 위한 면접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화제도 될 겸, 미국인 교수님들 앞에서 내가 어떻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냐고 아주머니께 여쭈었습니다. 아주머니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Just be yourself.” 직역하면, 그냥 자기 자신이 되어라… 있는 그대로 하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예상 외의 짧은 답변이었지만 옳은 말이었고 진리였다고 생각합니다. 면접 후를 생각해서라도 그들에게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이 짧은 조언은 지금까지도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으로서 사는 것이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일 정도로 말입니다. 사실,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이익을 좇아 분에 넘치는 관계를 형성하려다가, 자신의 상처와 약점을 숨기
몇 년 전에 치과계 무가지 지면에서 본 세미나의 제목이 ‘불친절 마케팅’이었습니다. 불친절할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답게 연자들의 표정이 무표정 내지는 뚱한 표정이었습니다. 그 때는 그냥 웃어넘겼습니다. 친절해도 모자랄 판에 불친절하라니요...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세미나를 한 번 들어볼 것을 그랬습니다. 개원 13년차에 접어든 지금, 과연 마냥 친절한 것이 답이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치과에서 불친절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나름의 이유를 한 번 정리해 봅니다. 우선, 치과의사는 치료를 끌고 나가야 하는 입장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친절한 태도로 일관해서는 죽도 밥도 안 될 케이스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선생님 된 마음으로 환자에게 다소 강한 어조로 말해야 하는 상황도 있습니다. 충치가 많은 소아 환자가 오면 일단 엄마를 혼내고 시작한다는 어떤 선생님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환자가 뇌피셜을 무한 반복한 나머지, 없던 불편감, 통증을 만들어서 오면 학자이자 임상가인 입장에서 확실한 태도로 일갈해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컴퓨터만 켜면 인터넷에, 찌라시부터 학술지까지 무한대의 치의학 정보가 널려있는 지금이야말로 학식과 경험을 두루 갖춘 치과의
어느덧 개원 12년차… 치과를 오래했다는 생각이 조금씩 든다. 요즘은 우리 치과의 전 구성원들이 업무를 수행하고 환자분들을 대함에 있어 일정한 경지에 이른 것인지 치과에서 큰 소리가 나는 일이 거의 없지만, 개원부터 만 10년까지는 매년 적어도 한 두 번씩은 치과에서 환자분의 고성을 들었던 것 같다. 주로 데스크 쪽에서 뜬금없이 고성이 들려오기 시작하는데, 고성이 시작되면 반사적으로 고민이 함께 시작된다. 웬 고함소리일까? 잘못 들은 건가? 내가 나가봐야 하나? 내가 나가면 환자를 더 자극하는 건 아닐까? 직원은 안전한 건가…? 고민도 잠시, 고성이 한 두 번으로 진정되지 않으면 후다닥~ 그야말로 번개같이 달려 나가게 된다. 작년 매우 더웠던 어느 날, 직원들이 모처럼 수술실 기구대 위에 소독포를 펼치고 각종 멸균된 기구들을 나열하며 임플란트 수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환자 분께서도 도착하셨고, 그 동안 좀처럼 뵙기 어렵던 보험 임플란트 환자를 기분 좋게 보게 되는가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데스크 쪽에서 난데없이 고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학습된 대로 번개같이 달려나간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데스크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한 실장과 환자분이었다. 당시 우리 실장
할리웃 남자 배우 중에 믿고 보는 배우가 있다. 성 정체성에 혼란이 있지 않는 한 남자가 남자에게 호감을 느끼기는 쉽지 않은데, 확실한 성 정체성 하에 철저하게 여배우만 따라다니며 영화를 골라보다가 브래들리 쿠퍼라는 남자배우가 눈에 익어버렸다. 눈, 코, 입, 키 어느 한 군데 매력적이지 않은 곳이 없는데, 이 배우가 출연한 영화이고, 앞으로 대세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여배우 다니엘 로즈 러셀의 러블리한 청소년기 외모를 볼 수 있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흥행성적은 비교적 좋지 않았던 영화가 있다. 알로하… 제목부터가 흥행 키워드는 아니고 내용에도 그다지 임팩트는 없다. 그러나, 단 한 군데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었다. 브래들리 쿠퍼와 한 남자 군인이 눈으로 대화를 주고 받는 장면… 남자 대 남자로 주고 받은 눈빛 대화 몇 마디로 한 가정이 파멸을 면하고, 시대의 러블리, 다니엘 로즈 러셀이 연기한 복잡한 가정사의 어느 소녀도 제 갈 길을 잘 가게 된다. 영화는 영화일 뿐, 눈으로 어떻게 말을 한단 말인가… 예쁘고 잘 생긴 배우들 보는 맛에 소파와 일체가 되기에는 족함이 없는 영화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브래들리 쿠퍼와 점 하나 닮은 곳이 없는 내가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먹고 사는 문제가 만만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서울 8학군의 학교였는데도 학급에 육성회비를 못 내는 아이들이 있었고 학교에서 봄이나 여름에는 쌀, 겨울에는 성금을 모아 전달하던 풍습같은 것이 있었으니까요.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먹고 사는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는 먹고 사는 문제를 뛰어 넘으려고 전 국민이 부단히도 애를 썼습니다. 수위권 학생들은 수능시험에서 전국 1등을 하면 의대가 아니라 자연대 물리학과에 가서 나라에 공헌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나라가 갑자기 부도를 맞자 전 국민이 결혼반지, 돌반지 등 추억이 깃든 금을 꺼내 모아 나라 빚을 갚았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 때보다 조금 부유해진 우리, 이제는 먹고 사는 문제를 뛰어 넘었는지요. 제가 보기에 우리는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에 갇혀 있습니다. 조금 부유해졌을 뿐, 이제는 잘 먹고 잘 사는 문제를 고민할 뿐,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에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차를 타고 큰 집을 가질까, 어떻게 하면 수익형 부동산을 가질까… 어떻게 보면 저차원적이라 할 수 있는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