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흑인 아주머니 집에 영어 회화를 배우러 다니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미군의 아내였습니다. 영어 공부 시간이라기보다는 식탁에 둘러 앉아 아주머니께서 주시는 코코아와 쿠키를 먹으면서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미국 치과대학의 펠로우쉽 프로그램에 입학하기 위한 면접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화제도 될 겸, 미국인 교수님들 앞에서 내가 어떻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냐고 아주머니께 여쭈었습니다. 아주머니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Just be yourself.”
직역하면, 그냥 자기 자신이 되어라… 있는 그대로 하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예상 외의 짧은 답변이었지만 옳은 말이었고 진리였다고 생각합니다. 면접 후를 생각해서라도 그들에게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이 짧은 조언은 지금까지도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으로서 사는 것이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일 정도로 말입니다.
사실,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이익을 좇아 분에 넘치는 관계를 형성하려다가, 자신의 상처와 약점을 숨기기 위해, 그밖에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은 자기 자신이 아닌 모습으로 적지 않은 시간을 살아갑니다. 문제는 그 시간이 길면 길수록 인생이 괴로워진다는 것입니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은 불편함. 그 불편함의 시간이 길어져서 곧 그 모습을 벗어버릴 수가 없는 순간이 오기도 합니다.
바뀌어야 하는 것은 옷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보여주는 훈련이 충분히 이루어지는 가운데 나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가식 없이 건강한 내 모습을 가꿔가는 방법일 것입니다. 나 자신을 버리고 위장하게 되는 순간은 순식간에 찾아옵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말입니다. 문득 문득 찾아오는 거짓과 가식의 순간을 인지하지 못 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본 모습을 버리고 본의 아니게 상대방을 속이는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상대방을 속인 대가는 어떻게든지 나를 찾아옵니다. 자기 모습을 부풀리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은 자기 자신을 부풀린 만큼 타인과 멀어지게 될 수 있습니다. 거리를 유지하지 않으면 내 진짜 모습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 대체로 가족과 직원입니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랍니다. 주위의 평판이 좋은 사람이 가족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다면 그 사람은 자기 자신으로서 살고 있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직원들은 원장의 반사적인 행동을 보고 원장을 판단합니다. 환자들 사이에서는 평판이 좋지만 직원들 사이에서는 그렇지 않다면 원장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상한 마음을 위한 처방이라는 글을 시작으로 치과의사의 정신건강을 위한 나름의 생각들을 정리하고 표현해 보았습니다. 환경의 문제, 내 안의 문제, 경계선에 있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치과의사 개인으로서, 해결을 위해 주안점을 두어야 하는 문제는 역시 내 안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내 안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주변 환경도 조금씩 변화시켜 나갈 수 있도록 문제 해결력을 갖는 것이 관건인 시절인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으로서 살고자 하는 노력은 그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무엇이건 간에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원장이 되는 것. 그것이 난국의 치과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은 할 수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다고, 모르는 건 모르겠다고 말할 수 있는 원장이라면 적어도 내 진료실만큼은 지금의 치과계가 겪고 있는 풍파로부터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임상을 공부하고 경영을 연구하고 직원들을 대하기 전에 나 자신을 들여다 보려고 노력합니다. 자기 계발에 대해서, 인간 관계에 대해서, 성공에 대해서 많은 책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나 자신으로서 사는 것과 관계 없는 이야기라면 나에게는 유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이나 재물 같은, 세상이 말하는 성공에 대해서도 잠시 내려놓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기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해답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Just be yourself.”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