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대학교 치과병원 예방치과를 개소한 지 세 달이 흘렀습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진료 시스템을 하나씩 정비해 가다 보니, 어느덧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진료실 개설과 대학의 학사 일정이 동시에 시작되면서 요즘의 하루하루는 숨 돌릴 틈 없이 지나갑니다. 밤이나 주말에라도 미뤄둔 일들을 해보려 하지만, 이제 백 일을 갓 넘긴 둘째 아이와 가족을 돌보다 보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습니다. 네 살 구간을 돌파하고 있는 첫째 아이 체력을 채 감당하지 못하고 그로기에 빠지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간 일정 중 드물게 생기는 짧은 빈틈에는 신임교원 의무교육을 듣고, 다시 강의 준비에 매달려야 합니다. 그럼에도 매주 완벽히 준비되지 못한 강의 자료를 들고 강의실에 들어갈 때면,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다음 주엔 꼭 더 일찍 준비해야겠다며 다짐하지만, 여지없이 강의 전날 새벽이 되어서야 준비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학생들이 보내주는 관심 어린 질문과 반짝이는 눈빛에 어떻게든 보답하고자 바둥대고 있습니다. 수련을 받고 전임의사로 지내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의 역할은 확실히 다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다가오는 변화는 ‘진료과 과장’이라
2025년 9월 1일자로 조선대학교 치과대학 예방치학교실 및 치과병원 예방치과에 새로이 발령을 받았습니다. 선진적인 예방진료를 수행하였던 예방치과 진료실이 7년 만에 재개소함에 따라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이때, 중압감이 자칫 스트레스로 이어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잡는 출사표를 적어봅니다. 전임의사로서 3년차에 접어들었지만 불확실한 장래로 인한 불안이 그림자처럼 뒤따르곤 했습니다. 이직을 결심하고, 채용 절차를 진행하며 거주지를 결정하기 위해 강릉과 광주를 왕복하는 여러 번의 과정은 몹시도 피로하였지만, 만삭의 아내가 네 살배기 첫째를 돌보아야 하는 어려움에 비할 것은 아니었습니다. 장거리 이사 당일에는 말 그대로 이를 악물고 버텼는데,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잘하려고 하지 않고 버티고자 했던 것이 많은 결과를 무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전, 저희 가정에 둘째가 태어났습니다. 아내와 아기가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을 거쳐 집으로 오기까지, 제가 열흘 정도 첫째 아이를 돌보게 되었습니다. 고작 열흘 동안 백 번도 넘게 첫째와 옥신각신하다 보니, ‘우리네 부모님은 나를 어떻게 키웠을까?’ 하는 진심 어린 궁금증과 존경심이 우러나곤 했습니다. 육아 정책이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