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익은 핸드피스를 내려놓고 마음 편하게 자판을 두드리니 막상 글발이 더디다. 글발의 발이 디디는 그 발이 아니요, 글발의 본뜻은 ‘글월 또는 문맥’임을 익히 알지만, 말끝에 달린 ‘발’을 꼬투리 삼아 글짓기의 완급에 비유함도 이 또한 글쟁이의 특권이요, 무료함을 달래주는 심심파적(破寂)이다. 마감에 쫓겨 가며 회무(會務)와 진료 틈틈이 원고를 쓸 적에는 조금만 더 여유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했는데, 정작 멍석을 깔아 놓으니 해찰을 부린다던가?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더니, 머릿속이 멍하고 생각이 멈추면 제 몸을 괴롭힌다. 궁지에 몰리면 머리를 쥐어뜯는 기사 조치훈의 심정을 짐작한다. 자해는 자위와도 통한다던가? 젊은이처럼 샌드백을 두들길 수도 없으니 일단 갑갑한 방을 탈출한다. 마련해둔 사랑방이 마침 엑스포 공원 부근의 오피스텔인 덕분에 산책 코스는 차고 넘친다. ‘선택 1호’는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한밭수목원이다. 엑스포 시민광장을 가운데 두고 동서로 나뉘는 한밭수목원은 갑천을 경계로 하여 북쪽은 무지개다리로 이어지는 엑스포 과학 공원과 남으로는 예술의 전당ㆍ시립미술관ㆍ고암미술관ㆍ연정국악원ㆍ평송 청소년문화센터 등 문화예술-콤플렉스의 허파 노릇을
인간은 직립보행 덕분에 지구의 패자(霸者)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 눈에 익은 인류의 진화과정은 똑바로 설 때까지, 허리 펴기 운동의 매우 느린 슬로우 비디오였다. 먼저 땅바닥에서 해방된 앞발이 손으로 진화하자 엄지를 접어 연장을 쥐고 양손이 협력하여 정교한 물건을 만들어냈다. 둘째 인지능력 향상이다. 두 눈이 감시탑처럼 높아지니까 외적이나 먹이의 포착 능력이 향상된다. 셋째 운반 능력이 늘었다. 들고 메고 등에 지며 머리에 인다. 보자기와 괴나리 봇짐이 채반과 고리짝으로 바뀌는 동안, 서양에서 들여온 형형색색의 가방 이 수하물계를 평정하였다. 그중에 등에 메는 배낭은 등산처럼 험한 기후나 지형에서 요긴하게 쓰인다. 넷째 글 쓰고 악기를 다루며 각종 스포츠 등 문화의 발달도 손의 사용 덕분이다. 그러나 한편 인간의 욕망은 귀하게 얻은 두 손을 더 큰 이익을 위하여 악용한다. 무기를 들어 침략과 억압의 군대를 양성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려고 상대방도 무장을 하여 인명살상 무기의 가공할 확장 경쟁이 시작되면 결국 전쟁으로 이어진다. 여성은 왜 명품 백에 열광하는가? 옷맵시에 둔감한 실전용의 남자 평상복에는 주머니가 주렁주렁하다. 오히려 신변잡화가 많고 다
트럼프 대통령을 초청한 청와대 만찬에서 박효신은 자작곡 <야생화>를 불렀는데(2017. 11. 07.), 이것을 라이브로 보여주지 않은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부안 해변을 배경으로 가슴 치는 감성을 ‘소울’로 풀어낸, 반 흑백 뮤직비디오의 감흥이 여지없이 깨어졌을 테니까. 그러나 필자가 울적할 때면 몇 번이고 다시 듣는 야생화는 복면가왕에서 팝콘 소녀 알리가 부른 노래다(2016. 11. 06.). 왜냐고 묻기 전에 한 번 들어보시라. 한밭수목원을 산책할 때도 야생화원(花園)에 한참씩 쪼그리고 앉아 머물다 온다. 그저 지나칠 때는 볼품없는 꽃이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기화요초다. <꽃의 예찬>이라는 글에서 한남대 최영근 교수의 옻과 자개와 난각(卵殼) 공예품 넉 점을 소개한 바 있다(2013. 03. 20.). 8호가 채 안 되는 봉선화ㆍ민들레ㆍ맨드라미ㆍ할미꽃의 정밀화 소품임에도 불구하고 그날 시립미술관에 전시되었던 어떤 대작보다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고, 보릿고개를 막 넘어선 70년대 후반, 먹고살 만해진 중상위층에 사치 바람이 불었다. 마님 방 문턱 너머 힐끗 보이던 화려한 자개장…… 그 DNA를 대물림했는지
조토가 그린 <유다의 입밪춤>(1305)이 최초의 르네상스 회화라고 한다. 제 사장에게 넌지시 예수를 알린 그 신호로 유다는 밀고자(密告者)의 대명사가 되었다. 소설 《밀고자》(The Informer, Liam O’Flaherty 1925)에서 지포는 현상금 20파운드에 친구 프랭키를 밀고하여 동료에게 처형 당한다. 아일랜드는 말(게일 語)과 땅을 영국에게 빼앗긴 채 700여 년을 살아왔다. 19세기 들어 다시 불 붙은 독립운동에 밀고는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영국 정부는 밀고자 신원을 극비로 보호하고 반대로 아일랜드 민중은 밀고자라면 그 후손들까지 응징하였다. 그런 정서를 모르면 이 소설, 나아가 IRA(Irish Republican Army)를 이해하지 못한다. 조선조 5백 년간 소수 양반만을 위해 살았고, 일제 36년 동안을 3등 국민이었던 한(恨)이 맺혀 문득문득 드러나는 우리의 반관(反官) 정서와 밀고자에 대한 혐오를 많이 닮았다. 내부고발자를 ‘whistle blower’라 한다. 도둑이나 간첩이 순경처럼 호루라기를 불을 리 없으니 밀고에 대한 적대감은 잠시 접어두자.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청와대의 KT&G 사장 인사 개입
일본에 유학하여 한창 물이 오른 기사 조훈현이 병역문제로 귀국하자, 마지막 애제자를 잃은 83세의 스승 세고에 9단이 자살한다. 기성(棋聖) 우칭웬을 키워낸 노스승에게는 제2의 우칭웬을 기대한 제자를 잃고 상실감이 너무 컸을까. 기력이 쭉쭉 뻗어가는 십 대에 3년의 경력 단절은 ‘절대’ 만회할 수 없고, 성인 성(聖)자는 만인이 승복해야만 붙이는 것 아닌가? 그 후 조훈현은 근 20년간 한국바둑계에 전신(戰神)으로 군림하고, 십여 년간 세계를 제패한 신산(神算) 이창호를 길렀으며 현역 국회의원이다. 만약 조훈현이 병역특례를 인정받아 계속 정진했다면, 대한민국의 위상과 세계 바둑의 역사가 달라졌으리라. 몇 년 전까지도 공한증(恐韓症)에 떨던 중국 바둑이, 정부의 대대적인 후원으로 고속 성장하여, 한국의 천만 바둑 팬들은 박정환ㆍ최정의 고군분투에 조마조마ㆍ일희일비하고 있다. 남자들이 모이면 화제 1호가 군대 시절 얘기요, 2호가 축구이니, 군대에서 축구하던 얘기를 하면 날 새는 줄을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손흥민이 멋진 골을 넣으면 며칠 동안 온 동네 사람 얼굴에 화색이 돈다. 마주치는 얼굴마다 밝으니 작업 능률이 올라가고, 국민화합에 이르기까지 돈으로 따질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