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삶 김수영 요한나 수녀<마리아의 전교 프란치스코회> 모두가 함께가자 저는 고향이 부산이지만 아버지의 직장 관계로 중학교 1, 2학년은 울산에 있는 학교를 다녔습니다. 전국체전 무렵이었던 것 같은데 우리 학교에서 학생들이 나가서 매스 게임이라고 부르는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1학년이면 1학년 전 학생 집단이 운동장에서 어떤 체조를 하는 것이었는데 체조 그 자체보다도 집단이라는 점에 더 큰 의미가 있는 운동이었습니다. 집단이 갖는 표현력을 목적으로 이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일체가 되기도 하고 그룹으로 나뉘기도 하면서 경쾌한 동작을 보이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국민체육대회의 식전(式典)의 일부로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이지요. 한 학년 15개 반에서 60명이 넘는 학생들이 하다 보니 어마어마한 집단 체조였습니다. 현재는 올림픽 등의 큰 스포츠 제전에서는 매스게임은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 되었고 사회주의 국가의 매스게임은 특히 유명한데 지금 우리가 북한이 카드 섹션이나 집단 매스게임을 하는 것을 보고서 정말 놀라는 것이 그 많은 사람들의 일사 불란함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학생들이 매스 게임을 하면서
종|교|칼|럼|삶 홍현정 사비나 수녀<마리아의 전교 프란치스코회>떠나서, 낯선 곳으로 나아가기 제가 사는 공동체에는 신학공부를 하는 수녀님들이 머물고 있습니다.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에 있는데, 교통이 편리하고 신학교가 가까워 찾은 곳이지요. 옛날엔 부자 동네로 알려졌다고 합니다만 지금은 조용하고 안정된 서울 뒷골목 동네 중 하나입니다. 기도하기도 좋고 가끔 식구 중 누가 늦게 돌아와도 그다지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안정되고 편안한 세상 이면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분들을 잊기 쉽다는 것입니다. 신학공부가 주된 소임이다 보니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고, 사는 곳이 말하자면 ‘사대문 안’이다보니 힘든 분들을 만날 기회가 많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번 방학에는 그분들을 찾아 나서기로 했습니다. 다섯 명이 가톨릭 주소록도 뒤지고 인터넷도 뒤지고 전화에 매달린 지 며칠, 드디어 모두가 취직이 되었습니다. 간단한 옷을 만드는 장애인 자활 공동체, 쪽방촌에 사시는 어려운 분들 방문, 새터민(북한 이탈 주민) 방문, 이주여성돕기센터, 쉼터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언니의 공부 돕기 등 임시직이고 서툰 초보들이라도 오라는 곳들을 잘
새로운 마음 이연희 플로렌스 수녀<마리아의 전교 프란치스코회> 새로운 해 2011년 1월을 맞은 지 꽤 지났지만 아직 지난 해 달력을 버리지 못하고 한국 수녀원에서 해년마다 보내주는 새 달력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억하고 픈 날들을 헌 달력에서 새 달력에 옮기고 예쁜 그림들은 잘 오려내고 나서야 버리는 저의 습관 때문이지요. 유치원협회에서 지난 해 12월에 받아 놓은 작은 새해 수첩은 필요로 하는 87세의 수녀님께 깜짝 성탄 선물로 자정미사에 가기전에 머리 맡의 이불 밑에 숨겨둔 기억이 지금 나는군요. 이 연세에도 적어 기억해야 할 것이 아주 많다니 놀랍지요? 이곳 페로에 제도의 풍경이 담긴 벽걸이 달력을 운이 좋게 유치원 원장님으로부터 받아 최근에 인연이 닿아 알게 된 한국인 한 분에게 보내드렸고, 중순이 되어도 기다리던 한국 달력을 받지 못하여 올해는 없나보다 생각하며 다른 궁리를 해야했지요. 한국산 달력이 없으면 저의 가족의 음력 생일이나 한국의 축제일들이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무거운 봉투가 드디어 한국에서 날아왔습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요. 제일 먼저 언제가 우리 설날인지
종|교|칼|럼|삶 노석순 데레사 수녀<마리아의 전교 프란치스코회> 참된 부유함 저는 화초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의 작은 방에 하나 둘 화분을 모여왔습니다. 어느 것은 병이 들었거나 수명을 다한 것도 있습니다. 화초를 키우는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만큼 성실하게 가꾸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가까이에서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생명이 있다는 것이 좋기에 욕심과 사치를 누리고 있지요. 화초를 바라보며 가꿀 때 제게 주는 묵상도 제 삶을 풍요롭게 해 줍니다. 화초마다 저에게 원하는 것이 다르고 시기마다 요구하는 것도 다릅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민감한 눈길과 손길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의 햇빛과 물만 주면 별 탈 없이 잘 자라주는 화초가 있는가 하면 저의 세심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 화초도 있습니다. 닦아주고 흔들어 주고 만져주면 자라는 것도 있고, 아무리 정성을 기울이고 기다려도 성장을 포기한 듯 변화를 보이지 않는 고집스런 화초도 있습니다. 아마도 제가 필요한 것을 잘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이겠죠. 언젠가, 제게 밀려드는 시급한 일과 제 자신의 문제로 마음의 여유를 찾지 못 할 때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종|교|칼|럼|삶 김수영 수녀<마리아의 전교 프란치스코회> 어떤 질서에 관한 소고 아주 오래 전에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중간부터 본 것이라 내용은 잘 기억이 안나는데 주인공이 많은 일을 겪은 뒤 맨 나중에 하늘을 가리키며 ‘저기 위의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나봐’라고 말을 하는데 그 대사는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 많은 힘든 일을 겪고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는데도 깨달은 바가 있어서 하는 말이었으니까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 그 중 가장 중요한 것들이 무상으로 주어졌다는 것에 대해서입니다. 나는 내 생명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무에서 내가 창조되어 생명을 받았다는 것과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있는 많은 것들이 예를 들어, 공기, 물 같은 것들이 잘 구축되어 있다는 것도 놀랍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온 우주가 질서 정연하게 돌아간다는 것두요. 자연 질서는 물론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는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자연 질서를 존중하면 그대로 자연은 그 안에 속해 있는 우리를 돌보아 줍니다. 어기면 어기는 대로 되갚아 주기도 하구요. 자연 질서뿐 아니라 인간 마음에 새겨진
종|교|칼|럼|삶 겨울 산에서 홍현정 사비나 수녀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한 달간 홍천 산중에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게으른 탓에 자주는 못 했지만 산책도 거기선 빠트릴 수 없는 기쁨입니다. 풀도 보고, 돌도 보고, 산등성 뒤로 노을빛을 남기며 넘어가는 해님의 신비스런 뒷모습도 가만히 지켜봅니다. 이 겨울의 한 중간엔 모든 것이 추위에 적응하여, ‘최소한’으로 견디고 있었습니다. 가지만 앙상한 나무에다 얼어붙은 흙도 속살을 드러내고 푸른 하늘조차 쨍- 소리가 날듯 명징하기조차 합니다. 봄에 이곳에 들꽃이 얼마나 흐드러지는지, 여름에 풀들이 얼마나 무성한지, 가을에 오디며 밤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고 있기에 이 겨울 풍경은 더더욱 삭막합니다. 한참을 찬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다가 내려다 본 발 밑, 땅에 바싹 붙어서 말라버린 풀 하나가 말을 건네더군요. 이 겨울엔, 살아남기에도 벅찬 이 시간에는 꼭 필요한 것 그 이상은 사치라고 말입니다. 남아있는 두어 개 누런 잎조차 다 헤어진 채 납작 엎드려서 그냥 ‘존재’하는 겨울풀은 그렇게 가난해서 더더욱 큰 소리로 ‘생명의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제 삶에
종|교|칼|럼|삶 이 연희 플로렌스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하얀 눈과의 모험이야기 올해는 무척이나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특히나 유럽의 여러 공항들은 이로인해 문을 닫았지요. 이곳 양들의 섬의 12월의 풍경도 오랫동안 하얗게 바뀌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유치원에서 39년을 일한 후 정년퇴임을 하는 67세의 한 여 직원, ‘오드뵈르’를 위해 마지막 날 모든 직원이 다 함께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면서 선물과 송별사 등으로 공식 예식을 마친 셈이었지요. 그러나 그녀가 모르는 깜짝 선물이 그녀와 같은 반에서 일하는 토브의 집에서 일주일 후에 기다리고 있음을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드디어 17일 금요일 저녁, 그녀를 제외한 모든 직원들이 7시까지 토브 집에 모여와서 다락방에 숨어 있어야 했고, 7시 반에 오로지 같은 반의 여직원 셋만이 모이는 걸로 알고 있는 오드뵈르는 토브의 남편이 자가용으로 모셔왔습니다. 그녀가 다락방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면서 토브와 주고 받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린 나오려는 웃음을 참아야만 했고, 숨막히는 순간을 견뎌야만 했지요. 그녀의 발이 다락방에
종|교|칼|럼|삶 노석순 데레사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거룩함이 있는 곳에 최선을 다해 주어진 일상을 충실히 살아갈 때에도 가끔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잊어버리고 싶은 것, 그리고 내치고 싶은 것들이 마음에 있습니다. 마음이 작아져 제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 제안에 있는 무엇인가에 짓눌려 숨 쉬기조차 힘들 때 비로소 제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제 안에 이미 오래 전부터 있으면서도 없는 듯 무시당하고 감추었던 것, 이미 없어진 것처럼 잊혀지고 버림받은 것들 안에서 거룩함을 봅니다. 어두운 구석에 내쳐진 저의 약함, 부족함, 죄스러움 안에서 거룩함을 바라봅니다. 그 안에 자리한 진실을 받아들이는 겸허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골집 마굿간이 생각납니다. 화장실 모퉁이를 돌아 어둡고 구석에 서 있는 마굿간은 가족들의 발길도 뜸합니다. 버리기도 가지고 있기도 싫은 것들이 잔득 쌓여 있는 마굿간의 모습에서 제 자신을 살펴보게 됩니다. 깨진 화병과 옹기 조각들, 보다 만 책들, 낡고 이 빠진 농기구, 누군가 가져다 놓았을 짐 꾸러미들, 수명을 다한 몽당 빗자루와 구멍 난 자루, 쥐
종|교|칼|럼|삶 김수영 요한나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어떤 질서에 관한 소고 아주 오래 전에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중간부터 본 것이라 내용은 잘 기억이 안나는데 주인공이 많은 일을 겪은 뒤 맨 나중에 하늘을 가리키며 ‘저기 위의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나봐’ 라고 말을 하는데 그 대사는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 많은 힘든 일을 겪고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는데도 깨달은 바가 있어서 하는 말이었으니까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 그 중 가장 중요한 것들이 무상으로 주어졌다는 것에 대해서입니다. 나는 내 생명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무에서 내가 창조되어 생명을 받았다는 것과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있는 많은 것들이 예를 들어, 공기, 물 같은 것들이 잘 구축되어 있다는 것도 놀랍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온 우주가 질서 정연하게 돌아간다는 것두요. 자연 질서는 물론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는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자연 질서를 존중하면 그대로 자연은 그 안에 속해 있는 우리를 돌보아 줍니다. 어기면 어기는 대로 되갚
종|교|칼|럼|삶 홍현정 사비나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한적한 데 머물면서 홍천, 기도의 집에서 한달을 생활하고 있습니다. 일 때문에 머물고 있기는 하지만 무척이나 조용하고 한적해서 마음을 두어야할 그곳에 두기가 훨씬 쉽습니다. 하긴 인터넷이나 휴대폰 때문에 요즘 ‘한적하다’는 말은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다는 의미이기 보다는 통신에서 단절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는 하지만요. 기도의 집에는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무언가 없어져 보면 평소 그것에 얼마나 의지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휴대폰도 없고, 인터넷도 되도록 정해진 시간만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제게도 이 시간이 무척 여유로운 것이, 평소 제 생활을 다시 돌아보게 해줍니다. 그렇다고 시간이 그리 남아도는 것도 아닙니다. 산골 생활은 뭘 하나 하는 데에 시간이나 공이 더 듭니다. 읍내에 나가려면 버스를 타야 하는데, 한 시간에 한 번 있는 버스 시간에 맞추어야 하니, 일찌감치 나가 서 있어야 합니다. 그나마 눈이 오면 발이 묶입니다. 날이 너무 추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절로 하늘의 눈치를 살피게 됩니다. 하던 일이나 계획이 제 아무리 중요해도 중단하고, 저를 거기에 맞춰야 하는
종|교|칼|럼|삶 이연희 플로렌스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긴 겨울의 짧은 모둠 이야기 양들의 섬의 겨울은 10월 말경부터 어둠의 그림자가 길어지기 시작하면서 찾아오는 듯 합니다. 보통 10월 4일 이면 첫 눈이 내린다고 이곳에서 50여년을 넘도록 사신 큰 언니 수녀님은 말씀하십니다. 올해는 10월 18일에 갑자기 첫눈이 말 그대로 펑!펑!펑! 내리더니 3일을 연속 내렸지만 쌓이지는 않고 금방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아침 7시 30분에 문을 여는 유치원의 밖은 여전히 캄캄하여 어린 아이들은 밤인지 아침인지 분간을 못하기도 하지요. 오후 2시 반이 넘어가면서 어느 새 밖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곳의 사람들은 겨울이면 무척이나 빛을 그리워합니다. 11월말로 접어들면서 작은 전구들로 집주위를 온통 휘감아 온 밤을 밝히는 한 집이 수녀원에서 아주 눈에 띄게 잘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집안에 밝은 전구보다 은은한 빛의 전등을 사용하고 곳곳에 촛불을 밝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 나누며 시간 보내기를 무지 좋아합니다. 그래서 11월 말과 12월은 ‘성탄’이라는 이름 아래 이런 만남의 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