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으뜸을 달리는 통계수치들이 여러 가지 있다. 반도체 생산량, 철강 산업, 초고속 통신망과 컴퓨터, 스마트폰 보급률, LCD TV 생산, 조선 산업 ….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지만 빛이 밝으면 어둠이 짙듯이 선진국들의 경제협력기구인 OECD 회원국 중에서 자살률은 가장 높고 출산율은 가장 낮으며, 단위 인구 당 성형수술 비율에선 압도적으로 1위를 달린다. 살다가 힘들고 지쳐서 목숨을 끊는 이가 가장 많은 나라.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아 키우기가 가장 힘든 나라. 태어난 자기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서구인의 외모를 표준으로 삼아 이목구비를 뜯어 고치는 이들이 가장 많은 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2만7000달러에 육박하기에 대부분 먹고 살만할 텐데도 하루하루가 힘든 곳이 지금의 이곳 대한민국이란 말이다. 영국의 옥스퍼드 인구문제연구소에서는 대한민국의 출산율 저하가 이대로 지속되다가는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사라질 나라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부에서는 결혼을 아예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초혼 시기가 점차 늦어지는 것이 저출산 문제의 원인이라고 분석하면서 청년 세대의 결혼과 출산을 지원하는 다양한 정책을 내놓는다. 또 자살자를 줄이기
7월의 지중해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으며 태양빛은 강렬했으나 습기가 없어 무덥지 않았고 그늘에서 태양빛만 피하면 선선하였다. 로마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해 한참을 달려 2천년 전 베수비오 산의 화산 폭발로 땅 밑으로 사라진 비운의 도시 폼페이를 관람 후, 버스는 어느덧 쏘렌토에 다다르고 있었다. 쏘렌토는 고대 그리스 신화 속 매혹적인 노래로 뱃사람들을 홀려 바다에 빠져 죽게 했다는 인어 아가씨 세이렌의 유혹으로 유명한 바다 도시이다. 멀리서 보는 쏘렌토는 생각보다 훨씬 아담한 마을이었다. 에메랄드 빛의 지중해 바다와 절벽 위에 펼쳐진 평지에 파스텔 톤의 낮은 건물들이 아기자기하게 몰려있는 마을을 보니, 세이렌이 아니더라도 배를 타고 바다를 나가고 싶은 충동이 생길 것 같았다. 쏘렌토에서 포지타노로 가는 도로는 가파른 산등성이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해안도로로 모퉁이마다 마주 오는 차가 어느 한쪽이 서거나 속도를 줄여야 할 만큼 매우 좁다. 게다가 길 아래로는 바다로 솟구친 까마득한 절벽으로 버스가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버스 안에서는 연신 두 가지 소리가 뒤섞여 나왔는데 곡예운전에 따른 긴장 어린 신음소리와 순간 순간 펼쳐지는 해안
8년쯤 전인것 같은데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약속을 한적이 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 강아지를 키우게 해주겠단 약속. 강아지를 결정하고 멀리서부터 가정견을 입양을 했다. 그의 이름은 토리이며 남아였다. 처음엔 그냥 강아지라고만 생각하며 키우기 시작했고 그냥 집을 지키는 강아지였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는 어느새 우리의 가족이 되어 우리집의 막내가 되어가고 있었다. 토리는 그렇게 우리집의 지키미 강아지이고, 낯선이로부터 가족을 지켜주는 작지만 강한 아이였고, 우리를 웃게하는 애교쟁이였다. 그렇게 가엽게 집만 지키던 토리에게 항상 미안해 하면서 시간이 흘러갔다. 그 아이가 외로울까봐 파양도 생각했었지만 그래도 함께 지나온 시절이 8년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토리가 병이 났다. 입원을 반복하면서도 그 아이는 잘 버텨 주었다. 딸 아이가 대학을 가면서 집을 비우게 되어 토리와 함께 할머니댁에서 토리와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받고 토리는 잘지내고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말벗이 되어주고 일거리를 주는 그런 토리였다. 그는 애완견이 아닌 반려견이 되어있던것 이다. 그런 그에게 다시 병이 생겼다. 가끔씩 발작을 하는 병이 생겨 1년반
한살 한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일들은 횟수가 거듭될수록 아주 특별한 이벤트 등 기억할 만한 일이 있지 않고서는 그저 일상과 특별히 다르지 않은 그런 날이 되어가고 있다. 결혼기념일, 생일, 명절 등등…. 일상에 유독 올해는 모든 것들이 특별해지고 있다. 아마 처음이 아니라 한사람을 보내는 마지막이라는 의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미고 엄마가 되면서 아주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내게 선물해 주셨던 집처럼 최선을 다하고, 가족들이 울타리 안에서 서로가 이해하고 편안한 가정을 꾸려보고자 노력하였다. 아이들은 돌이 되기 전부터 우리 집 여행 역사의 구성원으로 편성되어 험난한 시절을 보냈다. 그 험난한 첫 나들이는 1월에 태어난 딸아이가 맞이했던 첫 번째 어린이 날이었다. 갓 백일을 지낸 딸에게 어린이날을 기념해 주고 싶은 아주 아주 초짜 부모는 사람은 많고, 볼거리는 별로 없는 복잡했던, 놀이동산 그것도 어린이날의 놀이동산을 찾아 갔다. 아마도 그날 딸은 먼지와 소음을 선물로 받았고 기억도 하지 못하겠지만 우리 부부는 너무 너무 뿌듯했다. “아! 우린 좋은 부모야. 어린이날 아이들이 좋아하
곤도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1년 일본 쯔루미 대학에 유학을 한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쯔루미 대학의 교정과 외래교수이셔서 장기 안정을 보이는 증례에 대해서 강의를 해주셨으니까요. 교정치료한 환자를 30년, 40년씩이나 오랫동안 관찰을 하고 그렇게 긴 세월에도 좋은 교합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놀라웠습니다. 2005년 한국에 귀국을 하고 2007년에 선생님께서 장기 안정을 보이는 증례와 그 비결을 책으로 내셨다고 하셨습니다. 너무 감동적인 책이어서 한국에도 많은 선생님들이 같이 알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여 한국어로 2008년에 번역을 하여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Muscle wins!의 교정치과임상, 2008년, 대한나래출판) 곤도선생님께서는 한국임상교정치과의사회의 초청으로 2007년에 한국에서 강의를 해주셨고, 외국의 연자를 두 번이나 초청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데 한국임상교정치과의사회에서 이례적으로 2009년에 한차례 더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강의를 할 때 제가 통역을 맡게 되면서 선생님과는 좀더 돈독한 사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2011년에는 곤도선생님의 초청으로 선생님 댁에서, 한국인으로 저와, 중국교정의사
나이들 수록 세월에 가속도가 붙는다고들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이 많은 사람의 시계가 정말로 빨리 돌아가지는 않겠지요.^^ 세월이 빨리 지나가는 이유는 추억이 없거나 적기 때문이지요. 지난 1년을 뒤돌아 보세요. ‘내가 지난 1년 동안 무얼 했던가?’ 치과에서 열심히 진료하고, 가족과의 여행 한 두 번 말고는 딱히 기억나는 게 없는 분들은 지난 1년이라는 시간을 채우고 있는 추억이 얼마 안됩니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1년이라는 시간이 열흘 정도의 느낌일 것입니다. 반면에 즐거운 일, 슬픈 일, 가족과 함께한 캠핑에 폭풍우가 몰아쳐 밤새도록 텐트 붙잡고 있느라 고생했던 일, 재미난 도전, 가슴이 벅차고 등골이 쏴~~~ 했던 영화, 책, 음악 등, 수많은 추억을 가진 분들에겐 지난 1년을 채우고 있는 내용물이 많지요. 그래서 지난 1년을 회상하려면 한~~~~~참 걸리기 때문에 세월이 빠르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특별했던 순간, 처음 그 일을 했을 때의 기분을 기억하기는 쉽지만, 일상을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처음 수평매복치를 발치하느라 고생했던 손목의 뻐근함, 처음 임플란트를 식립하는 날의 긴장감은 기억을 하지만, 열 번째, 100 번째의 시술
분노의 종류를 생각해 보자. 먼저 외부로부터 오는 분노가 있다. 즉 다른 사람이나 외부 상황, 형태에 따라 발생하는 분노다. 예를 들면 주차관계로 차창 앞에 전화번호를 놓았더니, 갑자기 “야!! 새끼야 차 빼!!”라는 문자가 왔다. 상대방은 당황하고 기분이 상해 받은 전화번호로 전화를 한다. 그러면 소액결제라 해서 25만원이 통장에서 빠져 나가는 신종 보이시피싱이 있단다. | 이는 상대방에게 욕을 해 흥분시키고 화를 내게 해 돈을 편취하는 나쁜 방법이나 이는 외부로부터 오는 분노의 일종이다. 날씨도 외부요인의 분노이다. 끈적끈적한 장마철의 불쾌지수, 잔치 날, 소풍 가는 날에 비,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가뭄, 지나친 폭설로 교통 두절, 심한 폭풍우로 해안가 도시 침수, 가옥 파괴 등등 날씨로 오는 분노도 적지 않다. 환자도 외부분노다. 환자가 외부분노가 되어서는 안된다. 의사는 모든 지식과 친절로 아픈 환자를 돌보고 치료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진상 환자는 외부분노다. 외부분노 중 사람으로부터 오는 예가 제일 많다. 이유 없이 나보다 먼저 승진하는 친구, 같이 낚시를 하는데 나만 못 잡고 옆에 사람만 많이 잡을 때. 응원하는 축구팀이 지고 있을 때-전쟁이
서울대 '치의학 도서관’은 일제시대 4년제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로 승격(1928. 04) 되면서 소공동 건물 4층에 도서실을 마련한 것이 효시라고 합니다. 해방 다음해인 1946년 8월에는 2,300 여권의 장서로 소규모로 시작하여 1963년 소공동 치대 내부시설을 수리하여 건평 52.4평의 열람실을 갖추었습니다. 1969. 12. 28일 연건동 치대 1층으로 이전한 이후부터 대폭적인 도서시설 확충이 이루어져, 1975년 4월에는 27종의 학술지와 5,539권의 도서를 보유하게 되었고, 건평 390평에 열람석 90석의 시설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75. 10. 4일 서울대학교 종합화 계획에 따라 연건동 캠퍼스의 치대, 의대 및 보건대 등의 도서실(관) 등은 서울대 도서관에 합병되고 장서 및 부대 기류 등이 편입되었는데, 치의학 도서관은 1976. 2. 18일 서울대 규정 780호에 의하여 도서관 분관규정 개정과 아울러 서울대학교 도서관 의학계 분관 (의학도서관)에 병합 되었습니다. 그 후 20년 후 서울대 학칙 개정(1995. 2. 15.)과 교육부의 인가로 치의학 도서관은 치대 본관 1, 2층 동쪽에 ‘치의학 분관’으로 재개관(1995. 5. 3.)되
시험기간마다 한번 보면 모든 걸 기억하는 능력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든다. 그럼 시험지를 받아도 백지상태로 머리가 멍해지는 일은 없을 텐데. 너무나 바쁜 아침 차열쇠를 어디다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온 집안을 무한궤도를 그리며 어지럽히지 않아도 되며 머리를 쥐어뜯지 않아도 될 텐데, 남자친구나 여자 친구와의 기념일을 깜빡해서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로 삐진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느라 전전긍긍하는 일은 없을 텐데 말이다. 과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모두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증상을 과잉기억증후군(Hyperthymesia)이라 한다. 이 증후군은 작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며 종종 드라마, 문학 속에 다양하게 변주되어 등장해 왔다. 인생의 매순간을 기억하며 눈앞에 플레이 버튼을 누른 것처럼, 지금 순간의 일처럼 펼쳐지는 것이다. 물건을 다른 곳에 두었다 잊어버리는 일도 없고 중요한 할 일을 놓치는 경우도 없다. 그러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을까? 4년전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순간에 숨은 멎으셨지만 바로 사라지지는 않았던 온기와 시간이 지나면서 차가워지던 몸의 촉감이 기억나지만 견딜 수 있는 건 매년 새해가 찾아오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영화로도 만들어 졌던 동화책, 마당을 나온 암탉. 양계장 암탉 잎싹은 매일 알을 낳고 품어보지도 못한 채 알을 잃는다. 1년 넘게 이런 생활에 지친 잎싹은 자유로운 세상과 알을 품어보는 소망을 가지게 되고 다 죽어가는 폐계가 되어 드디어 자유를 얻게 된다. 매일 족제비의 먹이가 되는 위협 속에서도 강인한 모성애로 족제비에게 엄마를 잃은 청둥오리 알을 품어 훌륭하게 키워낸다. 청둥오리 초록머리는 멋지게 성장하여 무리들과 함께 따뜻한 곳으로 먼 비행을 시작한다. 이제 늙은 잎싹은 족제비의 어린아이들을 위해 한끼 식사가 되어준다. 잎싹의 일생이 대견하고 슬프지만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이 시대 어머니들의 모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현실 속의 닭은 어떤지…. 한국의 닭은 대부분 A4 용지보다 작은 공간에서 햇볕도 보지 못한 채 사육되어 퍼붓는 항생제에도 30일 이상 생존하기가 어렵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 환풍기 미작동으로 토종닭 842마리가 질식사 했다는 기사는 밀집사육의 단면을 보여준다. 매년 반복되는 AI와 구제역 그리고 매몰처분. 생매장 당하는 동물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고 계란 품귀현상, 고기 값 폭등만 연일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1헥타르(30
“선생님, 이 자리에서 오랫동안 치과 하셨지요?” “예, 한 40년 했습니다.” “맞아요. 제가 내일이면 고희 칠십이니까요.” “그러면 이곳에서 한 35년 동안 계속 사신 거네요?” “네, 맞아요. 전에 선생님 집 옆에 살았잖아요. 지금도 생각이 나는데 선생님 어머님이 키가 작고 노인인데도 머리가 까맣던 거 같아요. 그리고 홀로 5남매를 기르시느라고 고생 많이 하셨다고 자주 말씀 하신 것 같아요.” “네, 기억을 잘 하시네요.” “사실 그때 내가 이혼을 하려고 했어요. 남편이 집안은 통 돌보지 않고 백수건달로 지내며 술만 먹고 빚만 지니 살아가기가 힘들고 괴로웠어요.” “그 때는 그런 일이 많았지요.” “그때 선생님 어머니 말씀이 ‘내가 30년 넘게 홀로 살면서 5남매를 기르다 보니 아무리 남편이 보잘 데 없고 무지랭이 같아도 남편이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게 나은 것 갔다’라고 하면서 가능하면 이혼을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마음을 가다듬고 이혼을 하지 않았지 뭐예요. 그 말씀 덕분에 지금은 3남매를 잘 키워 시집 장가 다 보내고 잘 살고 있어요. 남편도 이제는 건강도 좋아지고 생활력도 강해져 잘 살고 있지요.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이 모두가 선생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