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글재주가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치의신보의 시론이란 지면에 글을 실을 수 있게 되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며, 치의신보 관계자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몇 일전 초등학교 때부터의 절친과 갑자기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친구나 저나 애들 키우고 본인의 일을 하다 보면 여유롭게 만나 이야기할 시간이 그다지 없는 게 현실입니다. 40대 중반이 되어가니 친구의 주변에 하나 둘 어딘가 아픈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며, 마음이 참 무겁다고 합니다. 저 스스로도 어려서부터 개원 초반까지는 뭔가 열심히 하면서 시간을 보내느라 아플 시간도 없이 지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습니다. 바쁜 일상생활에서 삶이란 무엇인가 어떤 목적으로 살아가는 것일까라는 조금은 철학적인 질문도 스스로 해보며, 감동적인 책을 접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97세 연세로 철학과 교수님이신 김형석 선생님의 “백 년을 살아보니”란 책과,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15년간 파킨슨병을 앓고 계신 김혜남 선생님의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를 읽으며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참 잘했다 싶은 일들을 정리해보고 싶습니다. 일본에 유학
#1. 치아교정 66만원… 8억 챙겨 야반도주한 강남 치과 ‘치아 교정을 저렴한 가격에 해준다’며 환자들로부터 8억 4000만원의 진료비를 미리 받은 뒤 병원을 폐업하고 잠적한 치과 실소유자 2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의사가 아닌데도 월급쟁이 의사를 고용해 속칭 ‘사무장 병원’을 운영했다(2017.3.22. 조선일보). #2. 이벤트 치과 먹튀 사태,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 지난 7월 18일 서울 강남 신사동의 화이트치과에 환자 100여명이 항의 차 방문했다. 조세인 원장이 3주간 갑자기 휴원을 한 것도 모자라 7월 17일부터 병원에서 환자들과 의사소통하겠다는 약속을 깨고 모습을 감췄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치과 교정시술의 경우 장기간에 걸쳐 치료이기 때문에 재개원 할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2017.8.6.경향신문). 이런 기사를 접하면서 그 병원에 관여했던 원장이나, 고용의사들의 비윤리적인 행태에 대해 비난과 질책을 하게 된다. 그럼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며 윤리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윤리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
새 집행부가 들어 선 치과의사협회는 치과계의 현안들을 해결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고, 치과계 내 각계각층에서는 현시점에 맞추어 앞다투어 여러가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최근 대한민국의 새정부는 스스로 재정립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이 시점에서 우리는 치과의료 서비스의 개선을 강조하면서 지금까지 치과계에 부과된 불합리한 제도 및 규제에 대해 각계각층에 이런 의사를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근래 치과계 신문을 통해서나 매스미디어와 SNS 상에서 제기되고 있는 치과계의 많은 문제들은 끊임없는 해결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답보상태이며, 오히려 더 어려워지고, 커지고, 늘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근본적인 해결책은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필자는 이것이 치과계 내에서 규제의 효과 및 시행의 관리라는 핵심 쟁점이 무시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치과계는 여전히 까다롭고, 불합리하고, 불필요하게 적대적이며, 관료적이며, 재량권을 적절히 적용 할 수 없는 규제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규제를 논의해야 할 이유는 많다. 우선 전반적인 규제 관행에 대한 논의는 가히 국제적이다. 예를 들어 OECD는 29개 회원국들에게 도움이 되는
먼저 지방의 작은 치과원장에게 시론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치의신보 관계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마지막 시론에는 제가 썼던 글에 대해서 잠시나마 평을 해봅니다. 처음으로 썼던 ‘조삼모사’는 과거에 옳다라고 생각된 내용이지만 현재에는 다르게 적용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 썼습니다. 미래를 대비해서 현재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자라는 의미로 제멋대로 고사를 빌렸습니다. 다음으로 ‘클래식기타 40주년 연주회’를 기념하는 글은 오래지속되고 있는 동아리의 예를 들어서 치과의사의 미래가 좋아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저수가치과’에 대한 글은 치과의사가 많고 환자가 적어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가장 해서는 안 될 것이 덤핑이라는 생각으로 글을 썼습니다. 이후 보험에 대한 글을 썼어야 했는데 연계를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응답하라 1988’은 과거를 회상해보는 소회를 가진 글이었습니다. 원장이 바라는 직원은 구인난을 슬기롭게 극복하라는 의미의 글이었습니다. 어떤 치과든 사람구하기가 제일 힘든 것 같습니다. 운 좋게도 저희 직원이 제 글을 읽고 나서 퇴사를 포기했는데 그 점 고맙게 생각합니다. ‘디시즌 메이킹’은 치과를 하는 매순간, 사회에서
필자가 30년을 개원하면서 30대 때에는 매주 학술 세미나에서 공부하는 데 집중을 하였고 40대에는 의료봉사에 모든 휴가를 반납하고 열심히 했었다. 오늘은 의료봉사의 추억을 더듬어 아쉬움과 보람을 나누려고 한다. 의료봉사는 1997년에 ‘산호수중’이라는 스쿠버 다이빙 동호회원들과 소매물도에서 시작하였다. 동호인들과 연변에서 의료봉사를 한 뒤 백두산 천지에서 하루에 열두 번이 변한다는 하늘을 보면서 했던 한 여름에 하얀 눈이 있는 트래킹은 세상 어디에서도 없는 장엄한 감동을 주었다. 그 후 1999년에 본격적인 의료봉사를 위해 지인의 추천을 받아 열린의사회에 가입했고, 매년 1~2회 해외봉사와 매달 있는 국내봉사에 참여하였다. 2000년에 처음 몽고 울란바토르의 항울병원에서 진료를 하였다. 기존에는 발치만 하였지만 레진을 스폰 받고 대학동기인 장갑성 원장의 도움으로 치과이동장비를 만들어서 주로 전치부 레진치료를 많이 해주었다. 그 인연으로 지금도 1년에 1회씩 몽고에서 오는 의료진들과 만나고 있다. 또 맨 처음 진료에서 통역을 도와주던 학생이 얼마 전에 울란바토르 대학의 한국어과 교수가 되어서 필자의 병원을 방문해 반갑게 만나기도 하였다. 몽골 의료봉사를 15
현재 우리나라가 직면한 문제 중 하나는 인구의 고령화이다. 고령화가 우리나라의 사회적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보건의료분야가 직면할 당면 과제의 일차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고령화는 생산가능인구의 비율을 줄이고 지출 부담을 증가시킴으로써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주된 요소로 작용헌다. 대부분의 고도산업화국가들이 인구의 고령화문제에 직면해 있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의 고령화는 심각한 수준이며, UN 보고서도 한국이 2026년에는 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생물공학회는 우리나라 노인인구가 향후 7년 동안 60% 정도 증가하여 2024년에는 1,000만 명에 육박하게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치매환자 역시 77% 증가하여 약 100만 명에 이르게 될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치매증가율은 세계 어디에도 유래 없는 급격한 증가를 보이고 있다. 고령화는 사회안전망을 유지하기 위한 보건의료보장제도에도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노인부양비의 증가와 더불어 보건복지 분야의 지출 증가는 국가 재정에 큰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KDI 박정호, 2015).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노년 부양 비
우리는 살면서 자기 의지대로 결정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장애없이 자유스런 사고로 내 인생을 걸어가고 있다고 여깁니다. 내가 계획하고 행동에 옮기고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모든 것들이 순수한 나의 마음의 표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나의 마음을 들여다 봅시다. 나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움직여지는지 관찰해 봅시다. 미워하는 사람을 앞에 놓고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노력해도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슬픈 일을 당하고서 이 슬픈 마음을 바로 없애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바꾸려 해도 그렇게 쉽게 되질 않습니다. 내 마음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 마음을 내가 마음대로 하기 어렵습니다. 내가 다루기 어려운 이 마음을 내 마음이라고 여기며 평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나 의지는 하나의 관념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실제입니다. 관념이 실제를 이기기 어렵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놓고 침샘에서 침이 나오지 못하게 막질 못합니다. 험한 욕을 듣고서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려 생각해도 내 마음은 벌써 격한 감정이 올라와 있습니다. 내 안에 소장된 프로그램이 외부적 내부적 조건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반응을 합니다. 이것을 내 마음,
얼마 전 환자가 되어 병원을 찾을 일이 있었습니다. 병원이라는 공간은 신기하게도 저희가 매일 출퇴근 하는 공간인데도 제가 환자가 되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습니다. 일단은 공기부터 다릅니다. 알코올을 비롯한 여러 소독제, 약제가 섞인 냄새가 여기가 병원이구나 하는 것을 인식시켜 줍니다. 데스크에 가서 접수를 하고 대기실에 앉아서 순서를 기다립니다. 대기 시간이 20분이 지나자, 빨리 진료받고 일하러 가야 하는데 이거 한 시간은 기다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슬슬 초조하기 시작합니다. 제가 원장이었을 때는 30분 기다리다 들어온 환자가 불평을 하면 여기가 식당이나 미용실도 아니고 왜 저럴까 싶었는데 그 심정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환자분 들어오세요.’하는 호출에 진찰실로 들어가서 원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진찰을 받았습니다. 몇 군데 집어보고 몇 가지 물어보더니 별거 아니라고 합니다. 남들이 들으면 우습다 할 정도로 정말 별거 아닌 증상을 가지고 혼자 머릿속으로 망상을 하며 애들과 집안 걱정으로 며칠을 고민했는데, 무엇보다 큰 병이 아닌 것에 안도감이 들면서 믿지 않던 신에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진찰 마무리에 하지만 다른 병이 있을 수도 있으니 지켜보자는 원장님
우리 생활의 대부분은 말로 시작하고 말로 하루를 마감한다. 내가 한 말과 행동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의도하지 않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말은 내가 하지만 듣는 것은 상대방의 몫이기에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의도가 정확히 상대방에게 전달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을 하고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표현하는 것은 많은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말로 마음의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 반면 말로써 의도치 않은 오해와 편견을 만들 수도 있다. 근간의 베스트셀러 ‘언어의 온도’에서 저자는 말과 글에는 나름의 온도가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언어에는 따뜻함과 차가움, 적당한 온기 등 나름의 온도가 있어서 언어의 따뜻함과 차가움의 정도가 의사를 전달하는 상대방과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다. 적당히 온기 있는 언어는 슬픔을 감싸 안아주지만 차가운 언어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반감을 일으키게 할 수 있다. 세상살이의 어려움에 지칠 때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고민을 털기도 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한 글로 위안을 얻는다. 이러한 따뜻한 언어는 한순간 상대방의 마음에 위안과 위로를 줘서 상처를 치유해 주기도
일반인이 해병훈련소에 입소하게 되면 노란색 명찰을 달고 철모 위의 노란색 번호를 가진, 구분되지 않는 훈병 중의 하나가 됩니다. 수많은 훈련과정을 거치고 나면 비로소 빨간색 명찰을 달게 되며 해병대의 일원이 됩니다. 해병대만이 가진 빨간 명찰은 대한민국 해병대라는 자부심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2011년 해병대에서 총기사고가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병영 내에서 구타와 폭언, 욕설, 왕따, 기수 열외 등 가혹행위에 가담한 해병대 병사에 대한 처벌 중에, 해병대원을 상징하는 빨간 명찰을 일정기간 떼어내고 해병대사령부 직권으로 다른 부대로 전출시킨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기사를 본 해병대 예비역 준장은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해병대 병사들의 가슴에 부착된 빨간 명찰을 뗀다 함은 그 병사에게는 명예적으로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처벌이다. 이렇게 되면 빨간 명찰을 떼인 병사는 더 이상 해병의 일원이 아니요 죽은 목숨과 같은 치욕을 느끼게 될 것이고, 이러한 병사를 배출하게 된 지휘관 역시 평생 지니고 다녀야 할 군 복무 기록에 그 내용이 고스란히 남게 될 것이다.” 최근 시행된 의료현장에서의 명찰패용으로 의료계 내에서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치과의사의 명찰패용
문화인류학자인 롤프 브레드니히(Rolf W. Brednich)는 아래와 같은 글로 조지 버나드 쇼(George B.Shaw)에 버금가는 비판을 한다. 어느 나라 중앙정부에서 외진 벌판에 큰 창고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한참 건설계획을 세우고 거의 완성된 기획안을 검토하던 관료하나가 ‘창고에 도둑이 들어 약탈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뜬금없는 지적을 하고, 중앙정부는 야간경비직원을 모집하는 공고를 냈다. 공고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 중 적당한 사람을 선발하여 채용하였을 때, 또 어떤 관료하나가 ‘야간경비직의 근무지침이 없으면 어떻게 근무를 하나?’라고 지적하며 ‘야간경비직의 근무지침을 야간경비직 자신이 직접 짤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야간경비직의 근무지침 문건을 작성하는 사람과, 근무시간 계획표를 짤 사람이 필요하다’고 제안하여, 두 개의 일자리가 마련되었다. 그때 관료하나가 또 입을 열며 ‘야간경비가 정말로 성실하고 양심적으로 일을 수행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라며 야간경비직원을 상시관리하는 부서를 만들어 두 사람을 고용했다. 한 사람에게는 야간경비의 근무를 관리, 필요시 조사, 감독하는 일이 맡겨지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야간경비와 조사자에 대한 보고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