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자기 의지대로 결정하고 행동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장애없이 자유스런 사고로 내 인생을 걸어가고 있다고 여깁니다. 내가 계획하고 행동에 옮기고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모든 것들이 순수한 나의 마음의 표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나의 마음을 들여다 봅시다. 나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움직여지는지 관찰해 봅시다. 미워하는 사람을 앞에 놓고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노력해도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슬픈 일을 당하고서 이 슬픈 마음을 바로 없애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바꾸려 해도 그렇게 쉽게 되질 않습니다. 내 마음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 마음을 내가 마음대로 하기 어렵습니다. 내가 다루기 어려운 이 마음을 내 마음이라고 여기며 평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나 의지는 하나의 관념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실제입니다. 관념이 실제를 이기기 어렵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놓고 침샘에서 침이 나오지 못하게 막질 못합니다. 험한 욕을 듣고서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려 생각해도 내 마음은 벌써 격한 감정이 올라와 있습니다. 내 안에 소장된 프로그램이 외부적 내부적 조건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반응을 합니다. 이것을 내 마음,
얼마 전 환자가 되어 병원을 찾을 일이 있었습니다. 병원이라는 공간은 신기하게도 저희가 매일 출퇴근 하는 공간인데도 제가 환자가 되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습니다. 일단은 공기부터 다릅니다. 알코올을 비롯한 여러 소독제, 약제가 섞인 냄새가 여기가 병원이구나 하는 것을 인식시켜 줍니다. 데스크에 가서 접수를 하고 대기실에 앉아서 순서를 기다립니다. 대기 시간이 20분이 지나자, 빨리 진료받고 일하러 가야 하는데 이거 한 시간은 기다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슬슬 초조하기 시작합니다. 제가 원장이었을 때는 30분 기다리다 들어온 환자가 불평을 하면 여기가 식당이나 미용실도 아니고 왜 저럴까 싶었는데 그 심정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환자분 들어오세요.’하는 호출에 진찰실로 들어가서 원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진찰을 받았습니다. 몇 군데 집어보고 몇 가지 물어보더니 별거 아니라고 합니다. 남들이 들으면 우습다 할 정도로 정말 별거 아닌 증상을 가지고 혼자 머릿속으로 망상을 하며 애들과 집안 걱정으로 며칠을 고민했는데, 무엇보다 큰 병이 아닌 것에 안도감이 들면서 믿지 않던 신에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진찰 마무리에 하지만 다른 병이 있을 수도 있으니 지켜보자는 원장님
우리 생활의 대부분은 말로 시작하고 말로 하루를 마감한다. 내가 한 말과 행동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의도하지 않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말은 내가 하지만 듣는 것은 상대방의 몫이기에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의도가 정확히 상대방에게 전달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을 하고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표현하는 것은 많은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말로 마음의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 반면 말로써 의도치 않은 오해와 편견을 만들 수도 있다. 근간의 베스트셀러 ‘언어의 온도’에서 저자는 말과 글에는 나름의 온도가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언어에는 따뜻함과 차가움, 적당한 온기 등 나름의 온도가 있어서 언어의 따뜻함과 차가움의 정도가 의사를 전달하는 상대방과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다. 적당히 온기 있는 언어는 슬픔을 감싸 안아주지만 차가운 언어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반감을 일으키게 할 수 있다. 세상살이의 어려움에 지칠 때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고민을 털기도 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한 글로 위안을 얻는다. 이러한 따뜻한 언어는 한순간 상대방의 마음에 위안과 위로를 줘서 상처를 치유해 주기도
일반인이 해병훈련소에 입소하게 되면 노란색 명찰을 달고 철모 위의 노란색 번호를 가진, 구분되지 않는 훈병 중의 하나가 됩니다. 수많은 훈련과정을 거치고 나면 비로소 빨간색 명찰을 달게 되며 해병대의 일원이 됩니다. 해병대만이 가진 빨간 명찰은 대한민국 해병대라는 자부심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2011년 해병대에서 총기사고가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병영 내에서 구타와 폭언, 욕설, 왕따, 기수 열외 등 가혹행위에 가담한 해병대 병사에 대한 처벌 중에, 해병대원을 상징하는 빨간 명찰을 일정기간 떼어내고 해병대사령부 직권으로 다른 부대로 전출시킨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기사를 본 해병대 예비역 준장은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해병대 병사들의 가슴에 부착된 빨간 명찰을 뗀다 함은 그 병사에게는 명예적으로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처벌이다. 이렇게 되면 빨간 명찰을 떼인 병사는 더 이상 해병의 일원이 아니요 죽은 목숨과 같은 치욕을 느끼게 될 것이고, 이러한 병사를 배출하게 된 지휘관 역시 평생 지니고 다녀야 할 군 복무 기록에 그 내용이 고스란히 남게 될 것이다.” 최근 시행된 의료현장에서의 명찰패용으로 의료계 내에서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치과의사의 명찰패용
문화인류학자인 롤프 브레드니히(Rolf W. Brednich)는 아래와 같은 글로 조지 버나드 쇼(George B.Shaw)에 버금가는 비판을 한다. 어느 나라 중앙정부에서 외진 벌판에 큰 창고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한참 건설계획을 세우고 거의 완성된 기획안을 검토하던 관료하나가 ‘창고에 도둑이 들어 약탈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뜬금없는 지적을 하고, 중앙정부는 야간경비직원을 모집하는 공고를 냈다. 공고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 중 적당한 사람을 선발하여 채용하였을 때, 또 어떤 관료하나가 ‘야간경비직의 근무지침이 없으면 어떻게 근무를 하나?’라고 지적하며 ‘야간경비직의 근무지침을 야간경비직 자신이 직접 짤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야간경비직의 근무지침 문건을 작성하는 사람과, 근무시간 계획표를 짤 사람이 필요하다’고 제안하여, 두 개의 일자리가 마련되었다. 그때 관료하나가 또 입을 열며 ‘야간경비가 정말로 성실하고 양심적으로 일을 수행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라며 야간경비직원을 상시관리하는 부서를 만들어 두 사람을 고용했다. 한 사람에게는 야간경비의 근무를 관리, 필요시 조사, 감독하는 일이 맡겨지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야간경비와 조사자에 대한 보고서를
얼마전 코엑스에서 열렸던 SIDEX 2017 전시장을 둘러보다가 어느 업체 부스의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던중, 신경치료는 해서는 안될 치료라는 얘기를 듣고, 필자는 얼마전 사망한 유명 여배우의 사망원인이 신경치료에 기인한 암이라는 주장에 대한 기사가 떠올랐다. 기사를 보고 말이 안되는 얘기라 생각하며 가벼이 지나치듯 넘어 갔는데 그 원장의 주장은 아니지만 똑같은 얘기를 생생히 듣게 되니 적잖이 당황하였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적지않게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치과계의 새로운 논쟁으로 인한 분열로 이어질까 걱정도 앞선다. 모 원장의 주장에 대해 “학문적으로 명확히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특히 암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내용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소셜네트워크에 올렸다”고 비난하면서 서울지부는 모 원장을 치협 윤리위원회에 회부하였다고 한다. 유발 하라리라는 이스라엘 학자가 요즘 핫피플로 주목 받고 있다. 45개국에서 500만권 넘는 판매부수의 책, “사피엔스”의 저자로서 빌 게이츠, 오바마 전대통령, 저커버그가 독자라는 것이 더욱 주목을 받는거 같다. 하라리 교수는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등 여러종이 공존하다 사피엔스가 지구라는 행
요즘들어 치과전문의가 많이 늘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전문의제도를 잘 시행하고 있는 미국의 보철전문의에게 미국치과전문의제도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미국은 치과의사로서 살기에 꿈만 같은 나라일거라고 생각들 하시죠? 그래서 그런지 치과전문의에 대한 프라이드가 큽니다. 한국의 덤핑문제는 임플란트 같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가의 치료가 등장한 이후 더 심각해진 것 같습니다. 결국 문제는 이런 고수가진료를 위한 충분한 Training을 받지 않은 GP가 치료행위를 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겠죠. 수년의 수련과정 중 투자한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대부분의 Specialist는 억울해서라도 덤핑을 하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다른 Specialist에 비해 떨어질 게 없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값을 낮추는 건 자존심 문제랑도 상관이 있겠지요. 미국에도 덤핑이 만연된 곳들이 있습니다. Los Angeles나 Texas 같은 곳에서는 한국보다도 싸게 덤핑을 치는 분들 찾는 게 어렵지 않거든요. 그 분들은 거의 100% 다 GP들이고요. 결국 똑같은 문제가 미국 내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미국에서도 Specialist 수가가 유지되고 Referral system이 힘을 발휘하는 곳들의 공
30년 전 태어날 때 필자하고 너무나 똑 같아 신기했고 무엇을 보아도 중첩되어 나타나던 아들이 치과의사가 됐다. 그리고 그 아들이 얼마 전 결혼을 했다. 필자는 아들과 자랑스럽거나 안타까웠던 추억이 유난히 많은 편이니, 온갖 일을 추억한 뒤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 2살 때 자동차만 보면 차 종류를 다 알아 맞추어 천재인가 신기했던 일, 초등학교 때 전교 회장을 하면서 워커힐에서 악장으로 오케스트라 공연을 하던 일, 중학생 때 몽고 두르노고비에서 새벽에 천명의 환자가 기다리는 가운데 썩션을 잡아 주었던 의료봉사, 매년 강북 4개구 체육대회에서 필자와 같이 축구대회에 참가해 골을 넣었던 일은 즐겁고 가슴 벅찬 추억이다. 또한 고1 중간고사 때 엄마와 다투어 집을 나가 그 뒤로 매주 토요일 심리학 교수님과 식사를 싫다 하지 않고 3년 동안 한 일, 고 3때 엄마 몰레 아카펠라 대회를 나가 대상을 한 일,고 3때 9월 모의고사는 1등을 하고도 본 수능 시험을 잘 못 치르자 “애비도 그랬는데, 집안 내력인가보다”생각하며 가슴 아팠던 일도 있었고, 재수 4개월 동안 집을 떠나 외할아버지와 생활하면서 104㎏이던 몸무게에서 36㎏을 빼 너무나 놀라
우리는 살아가면서 현재에 일어나는 일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은 일어날만해서 일어나는 실제의 상황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보질 못하고 관념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바라봅니다. 관념은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가치들입니다. 그러한 가치들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필요한 것들이지만 오히려 우리를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관념들이 현실을 직시하고 수용하는데 시야를 흐리게 하기 때문에 불만족스럽고 힘들게 사는 인생이 되기도 합니다. 병을 치료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진단입니다. 진단이 잘못되면 아무리 좋은 치료와 장비를 동원해도 치료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일어나는 실제를 정확히 보질 못하고 관념으로 진단하면 처방이 부실하여 삶이 괴롭고 힘들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교육을 받으며 사회적 인간으로 자라다 보니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관념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관념적 판단이 삶을 지탱해 주는 구실을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일어날만해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눈에 보이든 보
子曰 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논어 이인 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위가 없음을 근심하지 말고, 지위를 맡을 자질이 없음을 근심하라.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근심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나의 가치를 알 수 있도록 노력하라)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位)이 있다면, 이루고자 하는 그 일을 이룰 능력이 자신에게 있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노력으로 인해 이루고자 하는 일을 할 능력이 갖추어졌다고 스스로 인정하거나 타인에게 인정받으면, 자신이 능력이 있음을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며 기다리기 보다는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位)에 대해 말을 하고 나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아 이루고자 하는 일을 실행하여 그 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 본다. 논어의 구절은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 상상을 하게 만들어 준다. 子曰 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를 보며 역사속에서 생각나는 인물이 있는가? 처음 이 문장을 읽으며 불현 듯이 제갈공명이 떠올랐다. 대학생 시절부터 힘들다고 느낄 때 나는 어린왕자와 삼국지를 읽었다. 지금까지 10번 이상은 읽었으리라. 어린 왕자를 읽으며 어린시절로 돌아가 현재의 고민에서 일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1993년 유럽에 처음 갔을 때 비행기가 내린 곳은 히드로 공항이었습니다. 영국을 여행하며 그저 길에 서있는 내 앞을 지나가며 ‘excuse me’라고 낮은 저음으로 말했던 영국신사의 목소리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슈퍼마켓에서 진열대 물건을 보고 있는 내 앞으로 물건을 집으려던 손이 지나갈 때 들리던 ‘excuse me’도 생생합니다. 이래서 영국을 신사의 나라라고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얼마 전 출장으로 영국에 다녀왔습니다. 런던에 들어서며 예전의 그 느낌을 기대했지만 23년전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횡단보도 신호를 지키는 영국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얌전히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은 모두 여행객입니다. 신호가 바뀌기 전에 이미 건너가기 시작하는 것은 양호한 편이고 신호와 무관하게 모두들 무단횡단을 합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요? 그렇게 여러 날 런던에 머무르면서 보고 또 보았지만 무단횡단은 그들의 일상이었습니다. 관찰을 하던 몇 일째 저는 또 다른 발견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모든 차량은 신호를 엄격하게 지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있건 없건 횡단보도 앞에서는 멈춰섭니다. 정지선 역시 정확하게 지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무단횡단을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