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는 기회의 천국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세계는 하나가 되고 마음만 먹으면 불가능한 일이 없음직도 하다. 그만큼 모든 일의 진행과 효과에는 마음가짐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주위의 많은 일들이 인간관계에서 시작되고 끝나므로 이 과정이 믿음과 신뢰로 이어질 때 결과는 기대이상의 효과로 나타날 때가 많다.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란 자신 또는 누군가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나 기대, 예측이 그 대상에게 그대로 실현되는 경향으로 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인하여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 효과는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긍정적으로 기대하면 상대방은 기대에 부응하는 행동을 하면서 능률이 오르거나 기대에 충족되는 결과가 나오게 되는 현상을 나타낸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키프로스의 왕 피그말리온은 여성들의 결점을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고 한 평생 독신으로 살 것을 결심한다. 하지만 외로움과 여성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아무런 결점이 없는 완벽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조각하여 함께 지내기로 하였다. 그는 이 조각상에게 옷을 입히고 목걸이를 걸어주며 어루만지고 보듬으면서 마치 자신의 아내인 것처럼 대
해가 바뀌어 첫 글을 쓰는 마음이 여전히 무겁다. 한국국적을 포기한 자녀가 학자금 대출과 의료보험 혜택을 받은 것이 인사청문회에서 비난이 일자, 의도적으로 딸에게 국적을 포기시키지 않았다 하면서도 8년이 지난 지금 뒤늦게 딸의 국적을 회복시키겠다는 코미디 같은 답변을 하고 있는 사람이 사회부총리 후보자이다. 사람은 지나온 삶으로 스스로를 말하니 지켜 볼 일이다. “평화의 위안부소녀상 이전이 10억엔 출연의 전제조건”이라고 하는데 이 돈은 이대호 선수가 일본 프로야구에서 받는 2년 치 연봉이라고 한다. 소녀상은 15,16세에 인권유린을 당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징일 뿐 아니라, 한국인의 자존심과 세계의 양심을 상징하는 기념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인데 명예와 진실규명, 사과와 법적책임은 간 곳 없고, 한 선수의 연봉으로 환산할 수 있는 정도의 돈으로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슬픈 역사를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조건으로 우리 정부가 최종적인 합의를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 측 언론에 따르면 불가역적이고 항구적인 침묵서약 등 해괴한 단어들만 떠다니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애간장이 더욱 더 끓고 있다.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
얼마전 한 장애인의 감동적인 동영상을 보았습니다.이름은 닉 부이치치.그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으로서 태어날 때부터 팔다리가 없이 발가락 두 개만 있는중증 장애인이었습니다.그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10살에 자살을 시도하는 등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그러나 17살에 어머니로부터 한 중증장애인이 극복해가는 이야기를 들은 후 인생의 전환점을 갖게 되고 비영리 단체인 ‘사지없는 인생’을 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희망 메세지를 전하는 역할을 하기 시작했습니다.그는 말합니다.“내가 가지지 못한 것 보다 가지고 있는 것에 집중하세요.”그가 가진 것은 발가락 두 개. 그는 그것으로 자신의 몸을 일으키고 그것으로 걷습니다.그가 넘어졌을 때 그는 그가 가진 두 개의 발가락으로 몇 번이고 넘어졌다 일어났다를 반복해서 결국을 일어서고야 맙니다. 그에게 포기란 없습니다.그가 낑낑거리며 일어서는 장면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적시게 합니다.그러나 정작 그는 울지 않습니다. 그의 밝은 웃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생각해 보았습니다.그렇습니다. 긍정과 희망….닉 부이치치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입니다.그는 그가 가지고 있는 장애를 불평하기보다는 그 장애에 집중합니다. 그가 보기에 우리
매년 이 맘 때가 되면 필자의 모교대학동창회에서는 2월 졸업을 앞둔 후배들을 위해, 이른바 ‘신입동창회원환영식’ (이 행사를 DCODental Community Orientation이라 이름지어 진행해왔다)을 준비한다. 모교의 동창회원은 8000여명에 이르는데, DCO라는 신입회원환영식을 치르고 입회한 후배들은 지난 몇 년간 기껏해야 400여명 정도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들에게 해주는 신입생오리엔테이션도 아니고, 어엿한 치과의사들에게 기성세대의 무슨 잔소리가 새삼 필요한 것일까하며, 혹자는 고개를 갸우뚱 할 수도 있겠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대학교육종료와 현장실무개시의 연결에 대한 필요성과 관심은 치의학외의 다른 전공분야에서도 부쩍 활발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예컨대 서울대학교의 정치외교학과에서는 GLP(Global Leaders Program)으로 졸업생들이 재학생들을 가이드하고 양성함에 학부과정중의 졸업생참여, 토크콘서트 등을 수시로 가지며 자연스러운 선후배간의 멘토링이 이루어지는 네트워킹을 구현하기 시작했고, 동대학의 공대출신의 여성동문들이 여성재학생들과의 모임을 도모하여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숙원을 2015년에 ‘WIINS(Wo
20여 년 동안 치과의사로 살면서 제일 보람 있고 의미가 있었던 봉사활동을 하면서의 느낌과 함께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추억들을 더듬어 본다.처음 개업하고 3년 쯤 뒤인 3월 한가한 달에 환자들이 많지 않아 병원에서 놀고 있다 보니 무척 따분했다. 그래서 교회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 우리 교회에서 도움을 주고 있는 장애우 27명에게 무료진료를 해 주겠다고 하여 3달에 걸쳐서 보철치료까지 모든 치료를 다 해 준적이 있었다.거동도 불편하셔서 일주일에 2번 2명 씩 오기로 하였는데 5명 이상 같이 와서 병원이 휠체어로 꽉 차 일반 환자들이 불편하게 생각하고 치료를 받지 않고 가신 분도 있었다. 그렇지만 치료를 받고 좋아하시던 우리 장애우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고 너무나 보람이 있었다.그 후에 산호수중이라는 스쿠버다이빙 동호회에서 의사 몇 분과 소매물도, 백두산 연변 등지에서 구강검진과 발치 등 진료 봉사 후에 스쿠버다이빙을 했던 추억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연변 의료봉사 후에 백두산 천지에 장비를 메고 1시간을 내려가서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면서 봤던 하루에도 12번 변한다는 천지의 장관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그 후에 지금은 모 제약회사의 회장인 지인의 추천으로
요새 광고를 보면 치과광고들이 많다. 이중 가장 다가오는 것이 가격파괴일 것이다. 가격파괴가 어디까지 될 지는 모르지만, 치과의사중에 이를 덤핑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많은 것 같다.덤핑(dumping)은 채산을 무시한 싼값으로 상품을 투매하는 것을 말한다. 즉 원가 이하로 판매를 하는 것을 말한다. 국제무역거래에서의 덤핑은 수출품의 가격이 국내에서 정상적으로 판매되는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즉 원가이하 판매개념보다는 특정수출국에 낮은 가격으로 수출하여 판매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그럼 덤핑을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첫째, 수입국 시장에서 경쟁기업을 무너뜨려 시장지배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하는 약탈적 덤핑이다. 예컨대 수입국 시장에서 수입만 하다가 새로운 물품을 생산하기 위하여 새로운 생산기업이 설립되는 초기에 외국의 수출기업이 수입국 기업의 생산초기의 어려움을 이용하여 약탈적 가격으로 대폭 수출가격을 낮추어 덤핑수출을 함으로써 수입국시장의 새로운 기업의 생성기반을 뿌리채 앗아가 버리는 경우이다. 뿐만아니라 기존 수입국시장의 기업이 구조조정을 위해 시간이 필요할 때에 수출국에서 약탈적 가격으로 수입국산업을 무너뜨리는 경우도 있을 수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면 항상 시비가 붙게 되고 옳고 그름을 따지다 보면 내 편, 네 편이 생겨나게 됩니다.그러다가 감정이 격해져서 개인간이나 사회, 국가간의 다툼과 분쟁이 일어납니다.아마도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없어지기 어려울 것 입니다.부부간이나 지역사회간이나 국가끼리의 문제도 옆에서 살펴보면 사실 일방적으로 한 손을 들어주기가 어렵습니다.싸우고 있는 부부에게 다가가서 남편의 말을 들어보면 부인이 세상에서 인간성이 제일 나쁜 여자 같고, 부인의 말을 들어보면 남편이 세상에서 제일 무책임하고 비도덕적인 남자 같습니다.이러한 모습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개인이건 단체이건 국가간이든지 모두 자기의 위치와 입장이 있습니다.그 위치에서 보면 그렇게 보일 것입니다.서울의 남산 타워를 강북에서 바라보는 모습과 강남에서 보는 모습은 다릅니다.제 각각의 위치에서 보면 그 모습이 맞습니다.맞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고 목숨까지 불사하면서 다투게 됩니다. 강북 사람이 강남에 가서, 강남 사람이 강북에 가서 바라보지 않으면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정신의학에서도 그렇게 자기를 떠나서 상대방의 입장으로 되돌아가서 역할 바꾸기를 시도함으
fault line(단층선 또는 충돌선)은 지형학에서 단층면(斷層面)이 지표면과 만나는 선을 말한다. 기복이 많더라도 단층면이 수직이거나, 단층면은 경사를 이루었으나 기복이 없으면 단층선은 직선상으로 나타나고, 이에 반하여 지형면에 기복이 있거나 경사진 단층면의 기복과 경사가 클수록 단층선은 심한 굴곡을 그리면서 나타난다. 지표면이 직선상으로 만나는 경우 지형도나 지질도 상 안정된 지형으로 나타나나, 단층선의 심한 경사와 굴곡이 불규칙하게 그리면서 만나는 경우 지진이나 화산폭발 등 예기치 않은 자연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또한 다른 의미의 fault line은 테니스나 베드민튼의 라켓 관련 용어로 쇼트라인에서 뒷벽으로 연장된 코트에 쇼트라인과 수직으로 그어진 라인이며, 두 곳의 서비스 라인으로 코트의 뒤를 나눈 라인이다. 이 라인 안에 볼이 떨어지면 게임은 진행되나 라인밖에 떨어지는 경우 점수를 잃게 된다. 보이는 의미상으로는 그저 하나의 선에 불과하나 그 선 하나의 차이로 부조화가 일어날 경우 원하지 않는 결과가 오류와 충돌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에서도 이와 같은 많은 충돌선이 존재한다. 관념적 구조에 의해 표현되는 사고 및 행
11월은 치과의사에게는 세금을 중간 예납하는 달이다. 한꺼번에 많은 세금을 납부할 수 없기 때문에 분납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으며 카드 할부도 된다. 월말과 연말이 다가오면서 사회분위기는 더욱 더 어수선하기만 하다. 세금을 결정하고 심사하며 국정을 이끌어 가야할 여당은 독주하고, 견제해야할 야당은 무기력하니 정치에 대한 불신은 깊어가고 국회는 외면당하고 있다. 우리들이 피 땀 흘려낸 세금이 정치인들에 의해서 집행되기 때문에 정치를 포기해서도 안 되고 관심의 끈을 놓아서도 안 된다. 정치가 나서서 민생을 살피고 신음하는 국민들을 일으켜야 한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이 모인자리에서 정치와 종교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자리분위기를 위해서도 좋고, 공중파 뉴스들도 정치보도는 비중이 없는 뉴스로 다룸으로써 애써 모른 척 하는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가 일상화 되어 지금은 정치얘기를 꺼낸 사람들을 왠지 이상한 사람으로 쳐다보는 사회가 되어간다. 정치라는 것이 원래 지지층을 빼앗아 오는 게임이라고들 하는데 생각자체를 하지 않는 무관심한 이들을 설득할 수 없으니 답답하다.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니 이길 재간이 없다.초등학교 때 암기를 강요당했던 국민교육헌장에 우리는 민족중흥의
‘子不語怪力亂神.’논어(論語) 술이편(述而篇)의 가르침 중, 공자(孔子)는 괴이(怪異), 폭력(暴力), 문란(紊亂),귀신(鬼神)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시대의 미디어가 미디어로서 계속 인정받고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곱씹어봐야할 화두를 던진다. TV뉴스의 기사들과 뉴스의 아류격인 프로그램들의 화제들은 물론, 인터넷 포털들의 관심순위로 대변되는 검색어 순위도 거의 怪力亂神에 관한 것들이 점령했다. 우리가 몸담고 아이들을 키우는 이 사회에 정말 저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하는 호기심에 채널을 고정하고 시청해보거나, 검색어에 마우스를 끌어다가 클릭하여 차분히 보다보면, ‘이 내용들이 모두 확인된 사실에 근거하고, 구체적인 인과관계가 성립된다고 인정하며 전하는 이야기들일까?’ 하는 고리타분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또 만일 그것들이 사실이고, 필연성은 그만두고라도 일말의 개연성이라도 있어 기사가 되고 화제가 되었다면, 이러한 怪力亂神의 이야기들을 이토록 우리에게 열정적(?)으로 전해주는 것은, 정녕 ‘알 권리’라는 그 흔한 시민의 권리를 구현해주려고 소중한 가치가 담긴 정보를 전달해주는 노력인가에 대한 질문도 하고 싶어진다.‘道聽
치과의사로 풍운의 꿈을 안고 사회에 나온 지도 벌써 27년이 흘렀다. 개인적으로 대학입시에 4년을 계속 실패를 하여 군 입대문제로 야간 공대에 학적을 두고 낮에는 입시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대학에 맨 뒷자리에서 힘들게 공부하여 24살에 치과대학 예과 1학년에 입학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고교성적은 나름대로 좋았지만 운이 없어(?) 계속 대학에 떨어지고도 어린 내가 포기하지 않고 결국에는 치과대학에 들어간 또 다른 내가 인생에서 제일 자랑스럽고 대견하게 생각된다.늦게 대학에 들어가니 2~3년 후배님들이 형님으로 잘 대해 주고 너무 재미있게 공부를 하였던 생각이 난다. 우리 때는 졸업정원제가 있어 30%의 학생이 예과 2학년 때까지 성적에 의하여 제적되는 군사정권의 가슴 아픈 기억이 있다. 개인적으로 예과 1학년 때 재시험 걸린 친구들을 위해 방학 때 과외를 해 주고 예상 문제도 풀어 주었던 추억이 있다.늦게 대학에서 공부를 하니 모든 것이 너무 뜻 있고 재미가 있어 대부분 시험 볼 때는 전부 다 눈 감고 강의 노트를 외울 정도로 열심히 즐겁게 하였다. 그 때 부터 나는 전화위복을 가슴에 품고 인생을 살게 되었다. 이십대 초반의 어려웠던 시기가 나에게는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