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딴. 딴 따다단…딴 딴. 딴 따다 단. 딴 딴. 딴 딴 따다 단. 따 다다 따 딴 따다단.” 브람스의 주제와 변주곡 D 단조.지난 9월 5일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6층 강당에서 서울치대 클래식기타반(클기) 창립 40주년기념 정기연주회가 있었다. 먼저 정기연주회를 진심으로 축하한다.클래식 기타 정기연주회는 학생들이 주축이 되는 연주회지만, 이번에는 40주념을 기념하여 ‘세대공감’이라는 목표하에 졸업회원들과 학생회원들이 같이 연주회를 했다. 클래식기타반 창립 멤버이신 조영환 선생님을 비롯하여 서울시향과도 협연하셨던 최병택 선생님, 멀리 춘천에서 먼길 마다 않고 여름방학내내 연습에 참여하신 한우석 선생님 등등 많은 졸업회원들이 솔로, 듀엣, 트리오, 합주에 참여해 주셨다. 재학생들도 힘든 치의학대학원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닦았던 기량을 맘껏 발휘했다. 그래서 그런지 연주회 수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차원이었다. 이번 연주회가 끝나고 나서 몇 가지 생각들을 해보았다. 어떤 한가지 일을 오랫동안 지속하기란 무지 어렵다. 만약에 20년을 넘게 한 곳에서 음식점을 한다면 맛집으로 유명해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40년이 넘게 지속된 연주회라면, 그것도
이야기 하나, 끝이 보이지 않는 초록색으로 덮힌 목초지가 개방되었다. 여기서는 누구나 소를 방목해서 키워도 된다고 한다. 목동들은 서로 서로 눈치를 보며 ‘내가 소를 한 마리 늘리면 이익이 얼마나 생기는 걸까?’ 를 계산한다. 방목장에 송아지를 한 마리라도 더 넣게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소가 자랄 것이고 내다팔 때에는 나에게 이익이 생긴다. 한편으로 소가 늘어날수록 뜯어먹을 수 있는 풀의 양이 줄어들고 그렇게 되면 소가 자라는데 문제가 생겨 모든 사람에게 피해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한다. 하지만 그렇게 생기는 손해는 모두가 나눠가지기에 1/n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가 송아지를 한 마리 늘리면 나에게는 +1의 이익이 생긴다. 다들 그렇게 방목지 안으로 자기 송아지를 여러 마리 밀어 넣는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목초지에는 풀이 없어지고 소들의 배설물로 가득 차 더 이상 소를 키울 수 없게 된다. 모두가 함께 하는 목초지를 걱정하며 우리 세대뿐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를 생각하고, 적지만 건강한 소를 키워내려는 사람보다는 한 마리라도 자신의 소를 더 풀어놓으려는 사람들에 의해 종국에는 모두의 공유지가 파괴된다는 이 이론은, 1968년 ‘사이언스’에 실렸던 생물학
혁신이 병원계의 화두로 등장한 때는 십 수년 전이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전 군사독재의 유물인 졸업정원제도로 인한 의사의 과잉공급의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치과계도 병원간의 경쟁이 심화되어 병원전문 컨설팅업체도 생겨났고, 유,석,룡으로 대표되는 대형 체인점치과 및 덤핑치과의 임플란트 저수가를 이용한 과잉치료는 많은 국민들과 의사들에게 실망을 주었다. 계속되는 아류치과들 뿐만 아니라 사무장 치과들이 범람하면서 새내기 의사들에게는 경제여건과 더불어 더욱 어려운 개원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총의를 모아 1인 1개소법을 제정하도록 온 힘을 기울인 결과 조금씩 자정작용도 일어나고 있다. 헌데 이 시각에도 1인 1개소법을 무너뜨리려는 시도가 생겨나고 있으니 우리사회 정의는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우리의 광복 70주년을 유난히 강조했던 여름이 지나니 이웃 일본에서는 2015년 9월 19일 비상식적인 법안을 통과시켰다. 우리에게 36년의 고통의 역사를 주었던 나라가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돌아왔다고 외치면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골자로 한 ‘안보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일본 군국주의가 부활한 날로 기록될지도 모르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아는 것이 능력이고 힘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인은 깊이 있는 지식을 원하지 않는다. 더 이상 예전의 백과사전이나 참고서는 필요 없다. 대신 빠른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인터넷이나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보거나 확인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스마트폰 강박증에 빠져 있기도 하다. 스마트폰은 남녀노소에게 편하고 즐길 수 있는 주요 문화가 되고 있다. TV 정규 드라마도 방송시간을 맞춰 기다렸다 볼 필요가 없고 원하는 긴 콘텐츠를 다 보는 일도 드물다. 필요한 것만 골라보고 짧게 요약한 핵심 장면만 골라 본다.‘Snack culture’란 간편하게 과자를 먹듯 짧은 시간 동안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뜻하는 것으로 해외에서는 패션, 음식, 방송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이러한 스낵컬쳐는 사회의 전반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는 이러한 스낵컬쳐를 만나 한국의 주 문화 트렌드가 되고 있다. 전통문화 기법을 지키기 위한 장인정신은 소비자의 트렌드에 맞추어 끊임없이 변화하여 예전의 전통을 찾기 힘든 먼 나라 이야기가 되곤 한다. 스낵컬쳐에 익숙한 소
메르스 사태는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의사(MD)의 역할과 가치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위기관리에 성공적이지 못했던 정부의 무능이 부각됨으로써, 향후 보건의료정책 수립에서 국민적 지지라는 유리한 입장을 정부보다 우위에서 선점한 것으로 평가된다. 언론도 역할과 소명부재, 사회 갈등 조정 능력 없는 경쟁적 전달자(김연종, 2015)로서의 이미지를 스스로 노출시킴으로써 의사 집단을 일방적으로 집단 이기주의자로 호도하던 과거의 선정적 전달방식에 대한 국민적 회의를 이끌어 낸 꼴이 되었다. 지난 수 개월 동안의 메르스 사태는 우리 치의학의 현재 문제에 대한 해법과 미래 발전의 역동성을 끌어낼 수 있는 실마리는 구강건강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이라는 가장 본질적 치의학의 역할과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중심가치’를 실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웅변한다.서구에서 의료인들의 전문직 직업성은 13세기 외과의사들이 길드 형태의 ‘꼴레지아(collegia)’ 라는 공동체를 구성하여 집단적 직업 윤리를 발전시켜 온 일로부터 유래한다. 이들은 의료 집단의 이익과 사회적 책무 사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집단적 윤리를 정착시켰다. 즉 공공의 이익을 지향하는 직업윤
앞으로 다가올 일이 걱정이다.돌아보니 살아온 날들이 후회스럽다.온통 걱정과 후회의 시간들로 오늘이 즐겁지 않다.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고민이다.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 1989)”에서 키팅선생역의 명배우 로빈 윌리암스는 이렇게 말했다.“카르페 디엠! 오늘을 즐겨라, 소년들이여. 삶을 비상하게 만들어라.”젊은 시절, 당시 어른들이 생각하는 성공한 미래라는 목적하에 늘 초조하고 하루하루를 힘겨운 공부와 진료에 시달린 필자는 이 영화를 보고난 후 충격을 받았다.오늘을 즐기라고? 어떻게?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기원전 로마시대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시 한 구절로부터 유래한 말이다.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현재를 잡아라(Seize the day),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이 노래는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옛날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
21세기 지구는 자기자신에 대해 부쩍 생각이 많아졌다. 그간 별로 심각히 생각하지 않던 깨끗한 공기와 물과 땅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뭔가 대책을 마련해 보려고 제대로 노력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지 않으면 희망(希望)이 없음을 깨달은 듯 하다. 다행이다.흥미롭게도, 희망이란 단어는 도저히 해법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궁경(窮境)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등장한다. 그 이전 시점에서는 그만큼의 간절함이 없는 까닭일 것이다. 절박해져서야 문제의 발단과 전개와 실상을 새삼 자세히 살피는 것이 매우 비효율적임을 알면서도 많은 집단들이 그런 상황을 반복하고 후회한다. 의지를 가진 어떤 주체가 문제의 발단과 추이를 시종일관 경계하고 있지 않다면, 무방비상태의 어떤 집단에 대한 안팎의 끝없는 도전과 위협은 그 무관심과 나태에 대한 대가로 종내엔 절망에 직면하게 된 구성원들에게 어둡고 고통스러운 긴 시간과 희생을 요구한다. 희망을 찾아 정처없이 헤매이게 하는 것이다.주변여건이 호의적이지 않거나, 내부의 일체성(integrity)이 부족할 때라면 ‘저절로 잘되는 쪽으로 흘러가지는 않을 거’라는 의도적인 부정적 가정을 과감히 선포하고, 구성원들이 단결하여 경계하고 대응함이 현명한
치과의사로 산다는 것이 때론 힘도 들지만 다시 태어나도 치과의사이고 싶은 생각은 대개 비슷할 것이다. 30년 가까이 치과의사로 살아오면서 느꼈던 보람과 희비가 새삼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것을 개인적인 감상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엔 우리의 삶이 너무나 치열했다.치과를 처음 개업했을 때, 오후 5시까지 단 2명의 환자를 보고 답답한 마음으로 ‘환자님’을 기다리던 기억, 경험이 부족해 우는 꼬마 환자를 아빠와 엄마까지 모두가 붙잡고 진료했던 기억은 지금 돌이켜봐도 아찔하기만 하다.그러면서도 매주 일요일마다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세미나에 열심히 참여했던 시절과 10여 년 동안 휴가 모두를 의료봉사에 바쳤던 날들, 구치과의사회와 서울시치과의사회, 대한치과의사협회에서 봉사했던 기억들이 새롭다.요즘에는 나름대로 새로운 개념들을 정리하는 데 매진하고 있는데, 이 모든 것들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치과는 새로운 재료와 치료방법들이 계속 개발되므로 배우려면 힘도 많이 들지만 과거에 어려웠던 술식들이 수월하게 되어서 좋을 때도 많다. 특히 여러 가지 새로운 술식을 필자와 같은 모임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의 치과 선후배가 부지런히 연구를 해서 쉽게 적용할 수 있게 해 주므로 늘
원숭이에게 아침에는 세 개, 저녁에는 네 개의 도토리를 줌. 즉 잔 술수를 이용해 상대방을 현혹시키는 모습.중학교때 한문시간에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고사를 처음 들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송(宋)나라(중국은 독특해서 송이라는 같은 이름으로 4번의 나라가 있었다. 춘추전국시대의 송, 위진남북조시대의 송, 북송남송시대)에 원숭이를 좋아하여 키우는 저공(狙公)이란 인물이 있었다. 그런데 원숭이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원숭이 먹이인 도토리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이에 저공은 원숭이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씩 주겠다” 그러자 원숭이들이 모두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그러자 저공은 할 수 없다는 듯이 “그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 라고 하였다. 이에 원숭이들은 좋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이 고사를 지금에도 똑같이 생각하면…지금은 저공의 기지가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원숭이가 더 현명해 보인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시간이라는 변수는 아주 큰 효과를 발휘한다. 그래서 미래에 어떤 일은 하는 것보다 지금 그 일을 하는 것이 미래에는 더 큰 가치가 부여될 수 있
치과라는 직업의 특성상 우리는 하루에도 어린아이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사람들을 접합니다. 사람들을 접하면서 언어라는 표현의 수단으로 서로 대화하면서 소통을 해나갑니다.그래서 자기의 생각과 감정 등을 전달하게 됩니다.그런데 묘한 것은 같은 말을 가지고도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입니다.같은 강의를 듣고도 사람에 따라 다르고, 같은 책을 읽고도 다르게 생각합니다.물론 비슷하게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아주 똑같게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이러한 근본적인 이유가 사람들은 모두 다르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의 구조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말을 받아들이는 반응들이 다르게 나타나게 됩니다.그래서 사람들이 모이면 시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말을 듣고 본인한테서 나타나는 반응이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생각에 빠지게 됩니다.옳은 것이 있으면 그른 것이 나타나게 되나니, 본인의 생각과 다르면 짜증이나 화나는 감정이 올라오거나 무관심으로 그것을 배척해 버립니다.그래서 사람들은 본래 자기중심적인 이기적인 존재로서의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그러한 것은 자기 안에 가지고 있는 자기만의 인식체계 속에서 받아들일 수밖에
오늘날 많은 단체와 조직들이 주변에 산재한 정치·사회적 환경을 분석하고 정책결정 과정에 영향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이익을 추구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한 활동이지만, 이러한 활동이 조직과 사회의 목적을 상호 보완하고 나아가서는 조직과 사회의 이익을 동시에 실현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퍼블릭 어페어즈란 기업과 단체가 자신들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법안과 정책이 최대한 우호적으로 결정되고 집행되도록 하기 위해 펼치는 활동으로 과거에는 정부기관이나 국회를 대상으로 한 ‘로비’가 중심이었으나 점차적으로 이미지, 이슈광고 같은 홍보활동과 사회적 기여 등을 포함한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활동으로 표현된다. 지금 이 시대에 단체나 기업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는 ‘사회적 인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단체는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해 퍼블릭 어페어즈 활동을 하고, 이를 평가하는 것은 바로 국민이기 때문에 국민은 퍼블릭 어페어즈의 주체가 되기도 하고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정부로부터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기업과 단체가 펼치는 로비와 같은 개념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마케팅 외의 활동 전반과 지역사회와의 관계, 단체와 직원들의 자선활동이나 봉사활동, 단체의 사회적 책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