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이 되면 어김없이 TV나 영화관에서 ‘납량특집극’이나 ‘공포영화’들이 등장한다. 지난 2010년 8월에도 이병헌, 최민식이 주연해 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정받은 영화 ‘악마를 보았다’가 상영됐었다. 이 영화에서 최민식은 피도 눈물도 자비심도 없는 철저한 악마적 연쇄살인마 ‘경철’로 분해 여자들을 납치해 강간하고 살해한 후 토막 내 시체를 유기해 증거를 인멸하는 주도 면밀한 살인마로 나온다. 이병헌이 분한 ‘대훈’은 뛰어난 실력과 능력을 자랑하는 국정원 요원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약혼녀 ‘주연’이 알 수 없는 누군가에 잔인하게 토막살해 당하자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분노로 가장 고통스러운 복수를 다짐하고 ‘악마’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국내는 물론 전세게 국제 영화제에서 수 많은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기도 했다. ‘악마를 보았다’의 개봉은 8월이었다. 그리고 2014년 8월 마치 ‘악마를 보았다’의 ‘경철’이 환생한 듯한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일어나서는 안될 사건이 발생해 국민들을 소름돋게 할 뿐 아니라 분노케 하고 있다.육군 28사단에서는 윤 모 일병이 선임병들로부터 잔혹한 가혹행위와 폭행을 당
현아라는 어린 여가수의 새로운 노래 제목이 ‘빨개요’ 라고 한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면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뮤직비디오도 덩달아 화제이다. 그런데 그 수준이.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몸을 판다’고 평론가가 적었을 정도이다.이야기 하나, 내가 어렸을 때 동네에 있는 작은 치과들, 우리 아버지 시대의 치과들은 환자들을 진료하는데 초점을 둔 의사들이었다. 치과의사의 수가 늘어나고 서로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진료만으로 환자를 보기 어려워지자 인테리어 등 외적인 것에 치중하기 시작했다. 이제 병원대기실에는 커피숍에나 있는 값비싼 커피 머신이 있고 바리스타까지 근무하고 있다. 대기시간 동안 머리를 해준다던가 발 마사지를 해주는 곳도 있다. 도서관이나 전시장을 꾸며놓은 곳도 있다. 통기타 하나를 들고도 노래와 노랫말로 청중을 사로잡는 것이 가수였다. 가수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노래로는 시선을 끌기 어렵다고 판단한 일부는 춤을 추거나 의상에 신경을 쓰는 등 외적인 것에 치중하기 시작했다.이야기 둘, 치과의사들은 혼자서는 안 되겠다는 심정으로 하나 둘 모여 소위 중대형 치과병원을 만들고 광고를 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부족한 진료파트를 보완하여 보다 나은 진료
고맙습니다 황선문 선생님.이 말은 저를 포함해서 많은 이웃들이 황선문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일 것입니다.어제 토요일에는 아내와 저는 황선문 선생님을 뵈러 갔습니다.우리 딸 성희가 오랜 시간 손가락을 빨아서 치과의사인 저도 어찌 할 바를 몰랐을 때 단 한번의 만남으로 성희가 스스로 손가락 빨기를 중단하도록 해주신 분….성희는 시험 준비 중에 황선문 선생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그 편지를 선생님께 전했습니다. 선생님께서 편지를 쓰다듬으셨고 고맙다고 하셨습니다.암으로 진단받고 1년 8개월….저는 황선문 선생님께서 수술 마치시고 쾌유되시고 있는 줄 알았는데 생각과는 달리 병이 진행되었습니다. 얼마 전에야 안 좋으시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습니다.같은 수영구에서 30여 년간 동료로 지내오셨던 양희택 선생님께서는 32G의 USB메모리에 영화를 가득 담아서 아파트 경비실에 맡겨두고 가셨다고 합니다. 오래 전 일하던 메리놀 병원에서 알고 지내셨던 한 신부님께서는 소식을 듣고 멀리 미국에서 선생님을 뵈러 오셨다고 합니다. 수영구회에서는 총무이사님이신 송의환 선생님께서 구회모임에 초대했고 그때 병환이 심해진 것을 전해 들었습니다.따뜻한 아버지와 같으신 황선문 선생님…. 선생님
“대한민국! 짝짝~ 짝짝짝!” 2014년 6월 대한민국에 울려 퍼진 함성 소리는 안타깝게도 오래가지 못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 대표팀은 ‘태극전사(太極戰士)’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그냥 스포츠 경기일 뿐인데 선수에게 전사라는 호칭을 줄 정도면 월드컵 축구는 경기라기보다는 전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2014년 월드컵에서 스페인과 칠레, 독일과 프랑스 경기는 역사적 배경 때문에 축구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270년 동안 스페인으로부터 식민지 지배의 고통을 겪은 칠레 국민들에게 2:0 완승은 약간의 위로를 주었을 것이고, 반면 독일의 비스마르크와 히틀러에게 두 번이나 영토를 점령당한 프랑스인들에게 1:0 석패는 커다란 슬픔을 안겼을 것이다.애국심은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를 구하기 위한 마음이고, 그 마음을 실천하는 사람을 애국자라 정의할 수 있다. 오래된 책 냄새가 물씬 풍겨 나오는 치과의사학의 책장을 넘기니 우리나라의 서재필, 유관순과 안중근을 생각나게 하는 치과의사들이 있어 그 분들의 인생을 잠깐 들여다보고자 한다.쿠바는 1898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였는데 그 중심에 Emilio Nunez(1855~1921)가 서 있었다. 꽃다운 나이 20세에 쿠바 독립
의료 현장에서 의사, 치과의사와 환자 간의 적절한 의사소통의 목적은 “경청과 공감을 통한 관계형성”으로 요약된다.2011년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의학계열 학생들의 경청과 공감 능력의 실태는 대화 분위기 및 관계형성, 경청과 환자 발화 촉진, 사회 심리적 요인의 공감 항목에서 대단히 낮은 능력을 보인다. 환자가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하지 못하게 하거나 말하는 중에 중단시키는 경우, 환자에게 충분히 묻지 않거나 환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적절히 제공하지 않을 때, 그리고 환자가 느끼는 감정을 무시할 때 환자는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느낀다(임인석, 중앙대).의료인들은 환자의 발언 중 자신에게 필요한 얘기만을 요구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의증과 관련된 질병의 단초를 찾는 일에만 편집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환자들의 정서나 질병에 관련된 사회적 심리적 배경을 포착하지 못함으로써 진료에 꼭 필요한 정보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적절한 진료 여건 조성을 위한 환자와의 바람직한 관계 형성을 하지 못하고 환자의 불만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환자들은 소외감과 함께 무시당했다는 느낌으로 의료인에 대한 불신과 오해를 의료 분쟁으
과거 대학입학시험을 치르고 원서를 접수할 때 한의과대학 입시 문턱은 오히려 의대, 치대보다도 합격선이 더 높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요?주변에 한의원을 개원하고 있는 친구나 후배들에게 요즘 의원 경영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한사코 힘들다며 고개를 내젓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힘들게 했을까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한의사수 가 너무 많이 배출되는 과정에서 정책 변화에 재빨리 대안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순응하며 지내온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치과계의 미래는 어떠합니까? 결코 낙관적이지만은 않지만 꼭 비관적인 것만도 아닙니다. 그러나 현실은 모두들 힘들다고 하는 게 사실입니다. 흔히 일반적인 데이터비교를 할 때 일본의 사례를 들곤 합니다. 일본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 몇 년 후에 우리나라에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볼 때 한의사들은 그들의 선례가 없지만 우리는 일본의 경우를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좋은 본보기입니다. 요즘 일본에서는 치과의사 과잉배출로 어려움이 있자 치과대학 신입생이 줄고 인기도 하락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그래서 자구책으로 치과대학이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현실입니다.우리나라 치과는 머지않아 5년 후면
블루존(blue zones)은 백세 이상 노인들이 많은 장수마을을 가리키는 영어 표현이다. 미국의 오지탐험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댄 뷰트너가 내셔널지오그래픽 팀과 함께 전세계의 장수마을을 찾아다니면서, 백세 이상 인구가 미국 평균의 열 배가 넘는 이른바 최장수 지역을 지도상에 파란색 동그라미로 표시해놓은 데서 유래된 말이다. 이탈리아의 사르데냐 섬, 일본의 오키나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로마린다 공동체, 코스타리카의 니코야 반도, 그리고 에게해에 떠 있는 그리스의 작은 섬 이카리아가 그런 블루존들이다. 사르데냐 섬의 102세 주민 쥐세페 노인은 평생을 농부로 살았다. 그는 밭일과 양치는 일을 끝내고 귀가하면 온 가족과 둘러앉아 염소 젖과 오메가 3가 풍부한 페코리노 치즈로 저녁을 먹는다. 식사가 끝나면 마을사람들끼리 떠들썩하게 웃으며 유쾌한 시간을 보낸다. 자연스러운 노동과 자연식, 그리고 가족과 이웃의 소속감은 사르데냐 섬 사람의 장수비결이다. 이 섬에는 미국 평균보다 30배나 많은 백세 인구가 산다. 오키나와의 카다마 할머니 역시 102세. 두 딸이 이미 70대에 접어든 왕할머니이지만 아직도 마을 제사장(noro) 일을 놓지 않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맨
잔인한 달 4월 세월호 침몰사고, 아픔이 채 시기도 전 5월, 장성요양 병원 화재 참사까지…벌건 대낮에 300여명의 생명이 수장되는 참담한 장면을 두 눈 벌겋게 뜨고 볼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깝고 분노한 시간들이 흘러갔다. 그리고 6·4 지방선거가 끝났다. 사상 처음 여야 어느 곳도 자신 있게 우위를 주장하기 어려운 결과를 낳았다. 세월호 참사가 여권에 책임을 묻는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국민은 여야 모두에 책임을 묻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여야가 동수를 이뤘느니 절묘한 선택이니 하는 것이 아니다. 당선자들이 표를 얻기 위해 땅바닥에서 절을 하고 목이 쇠도록 시·도민을 주인으로 모시겠다고 약속했던 초심을 그대로 유지하느냐다. 그런 의미에서 멜 깁슨 주연의 베트남전 전쟁영웅을 다룬 ‘We were soldiers’라는 영화에서 무어중령이 했던 명 연설이 오버랩 된다. 필자는 골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여가시간을 책과 함께 하거나 바둑기보를 보며 휴식을 취한다. 또 하나 아내와 함께 하는 영화관람은 빼놓을 수 없는 낙(樂)이다. 특히 혼자 조용히 즐기는 영화감상은 어렸을 적 어머니의 품안에 있는 안락함마저 느끼게 한다. 영화를 즐기는
건강보험공단은 7월부터 진료 전 건강보험 수급 대상자 여부를 확인한 환자에 대해서만 진료비용을 지급한다고 6월 8일 밝혔다. 이에 따라 장기 체납자와 무자격자는 진료비 전액을 내야한다. 병의원은 공단 홈페이지를 통해 수급 대상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이상이 6월 9일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다. 위와 같이 변화된 정책은 사실 올해 초 중앙 일간지에 조그맣게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 기사를 접한 후 후속 기사나 조치를 애타게 찾았으나 확인할 수 없었고, 내가 잘못 보았나해서 잊혀질 즈음 제도시행 20여일을 남겨두고 중앙일간지 20면에 조그맣게 보도된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예전에 이와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였을 적에 겪었던 여러 가지 불편했던 점이 떠올라 시론 마감날 내용을 바꿔서 원고를 작성하고 있다.개업 초 수급권자 확인은 병의원 몫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전산화도 지금처럼 되어있지 않아서 일일이 의료보험증을 확인해야 했고, 환자가 낯이 익어 확인 안한 경우 드물게 무자격자 진료에 부당이득금을 취한 것으로 통보되며 환수조치를 당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었다.그 뒤로는 의료보험증을 가져오지 않아도 건강보험공단에 자격여부를 확인하여 접수할 수 있었지만 인력이 부
7월 1일부터 시행예정인 임플란트 급여 수가가 최종 확정 되었습니다. 행위 수가와 재료대를 합하여 약 120만원 정도에서 결정이 났다고 합니다. 벌써부터 다양한 의견들이 올라 오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주변의 덤핑치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70만원대에 임플란트 치료를 시행 했는데 오히려 다행이라고 합니다. 어떤 분은 기회는 왔다고 하시며 보험 임플란트 2개 하시면 비보험 임플란트 한 개를 무료로 해 주겠다는 참 희한한 마케팅 수법을 발견해 내셨다고 하기도 합니다. 이러다가는 보험수가보다 일반 수가가 낮게 형성되는 심각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나마 이 정도의 수가를 받아 내기 위해서 치협 보험 부회장님을 위시한 관련 되시는 분들은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까 싶습니다. 제가 건정심 위원이라 하더라도 당연히 인터넷과 실제 치과 의료기관에서 시행되고 있는 100만원 미만의 진료 수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 분들이 치과에서 손해 보면서 진료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분들을 탓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앞으로가 더 문제입니다. 여전히 일반 임플란트 수가가 보험 수가 보다 낮게 이루어진다면, 현재의
올해 나이 46세, 온실의 보호속에서 살아온 시간들을 생각해봅니다.많은 사람들이 험난한 파도를 넘었다면 저는 시냇물이나 작은 강을 건넌 것 같습니다.살아가는 과정중에 파도를 넘는 큰 바다대신 시내나 작은 강을 건너는 것으로 끝이난 것에는 직업적으로 치과의사라는 것을 선택한 덕도 크다고 생각합니다.게다가 넉넉한 부모님의 보살핌이 오랜시간 지속되어서 비교적 쉬운 난관만을 선택했습니다. 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스스로 앞서나가지 말자는 생각을 했습니다.조금 더 천천히 자중하면서 조금씩 천천히 나아가서 같은 동료들이 저를 추월해서 앞으로 나아가도록 내 걸음을 늦추고 나를 보고 조금 쉴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의미를 수없이 생각해보지만 지혜도 부족하고 혜안은 더더욱 없습니다.처음 치과의사가 되어서는 기본적인 치료도 잘못했거니와 예후를 잘 몰라서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성공한 경험도 적었고 실패한 경험도 적어서 교과서의 이야기를 나의 상황으로 끌어오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그 때 꿈이 틀니를 못 만드는 의사였습니다. 잘 치료해서 틀니를 만드는 곳까지 가지 않겠다는 뜻입니다.하지만 많은 환자분께서 틀니를 껴야할 상황에서 내원하셨고 저는 당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