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론허 택 <본지 집필위원> 가정의 달을 되새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왜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총칭할까? 유독 5월에 가정과 연관된 기념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11일 입양의 날, 15일 스승의 날과 가정의 날, 21일 성년의 날 및 부부의 날이 기념일로 지정됐다. 왜 하필 5월일까? 그리고 굳이 가정과 밀접한 기념일을 지정해야 할까? 봄의 5월은 신록의 생기가 천지만물에 만연하고 온화한 기후로 열두 달 중 자연세계가 가장 훈훈하다고 할 수 있다. 고로 봄의 생태와 섭리를 가정이 닮아야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정은 인간사회의 핵이요, 자연생태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예부터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즉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뤄진다는 진리불변의 고사성어를 인간의 가슴에 품어왔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가정이 소름끼칠 정도로 급속하게 파괴되고 소멸돼가고 있다. 그래서 삼라만상이 소생하는 봄에 가정의 중요성을 각인하고자 하기 때문 아닐까? 18~19세기 산업혁명 이후 과학문명은 세계사에 경천동지할 만큼 발전했다. 과학문명의 발전은 산업, 사회 등 인간생활 전반에 상상을 초월할 만큼 혁명적인 변화를 유발했다.
월요 시론오성진 <본지 집필위원> 홍 수 요즈음 신문의 머리를 채우는 기사들은,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무겁게 한다. 어떤 것은 공포를 주고, 어떤 것들은 불안을 주고, 어떤 것들은 사회에 대한 절망감을 준다. 과거는 어떠했는데 하는 이야기는 현재에 대해 만족스럽지 못한 점들에 대한 불만의 표시이지만, 현재의 문제에 대한 대안이 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과거가 완전한 모습이 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지식이 쌓여 왔고, 해법들도 셀 수 없이 쌓여 왔건만, 오히려 문제들은 더욱 복잡해져 온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넷과 같은 매스미디어는 알고 싶은 지식을 전달하고 공유하는데 크게 기여해 왔다. 사람들간의 교류만큼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없고, 인터넷만큼 사람들간의 교류를 원활하게 해 주는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터넷에 빠져들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터넷이 보급이 되지 않았고, 국제간의 교류가 지금처럼 원활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오랫동안의 관습을 기반으로, 단순한 생각으로 세상을 운영할 수 있었다. 생각이 단순하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났을 때에도 처리하는 법이 어렵지 않았다. 오랜 전통 속에서 익숙해 온 방법으로 판단을 하
월요 시론박용호 <본지 집필위원> 불법 네트워크, 광고는 이제 그만 최근 불법 네트워크의 몇 차례 돌출성 일간지 광고 후에 치과계는 일견 잠잠하다. 협회는 소송은 할지언정 겉으로 드러나는 맞대응은 자제하고 있다. 막대한 광고비도 문제려니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일개 치과와 맞붙는다는 것이 협회의 체신도 있고, 국민들 입장에선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는 고민이 있을 것이다. 더구나 총선으로 전국이 들썩했던 마당에 본질에서 비껴난 문제를 가지고 일 년여 공방을 한다면, 따가운 국민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의료법 개정 후 개원가의 과열 공방은 사라졌지만 과연 7월 법시행이 제대로 적용될지는 미심쩍은 분위기다. 불법 네트워크의 광고를 보면 초지일관 한결같다. 자기들은 정의의 사도로 협회의 박해를 무릅쓰고 국민을 위해 싸게 봉사한 죄밖에 없는 의인이라는 것이다. 초기에는 그래도 품격 노인 광고 시리즈로 상승된 치과계 역량의 효시로 보였고, 카르텔 운운하고 양심선언 한다고 나대어 용감한 젊은 진보다운 면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광고를 대하면 개원의들은 “이제 또 시작이구나…”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보철시술 비용 중에서 재료비를 따지는
월요시론박인임 <본지 집필위원> 의료가 상품인가? 겨우내 기지개를 펴고자 준비했던 꽃들이 만개했다.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신비스럽다. 우리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 우린 사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정말 복된 나라에 살고 있다. 감사함과 행복감이 넘쳐야 할 때 사람들의 마음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 가끔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을 보면서 웃기도 한다. 하지만 씁쓸하기도 하다. 스스로 결정하면 책임을 져야 하므로 책임지기 싫고 생각하기 싫어 하는 우리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 같아서이다. 자기의 의견이 없고, 누군가 얘기하면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고 믿어버린다. 그로 인해 상처받을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려 고도 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대처하는 방법도 감각적이 되어간다. ‘언젠가는 알아 주겠지, 나의 진심을’ 하면서 참고 인내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치과경영이 힘들다.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동네 치과들도 힘겹다. 특히 젊은 치의들은 더욱 어렵다.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도 친근함과 감사함보다는 무언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따지려고 한다.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지 않으며 사는 모습
월요시론박상섭 <본지 집필위원> 99% 대 1%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을 끌어내는 방법은 다수의 사람들의 이해와 직결된 이슈를 먼저 찾아내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이슈는 단순하고 선정적인 구호로 효과적으로 대변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해 9월경 미국의 반(反) 월가 시위대가 외쳤던 “우리는 99%다”라는 문구는 그런 원칙에 매우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나빠진 미국의 경제상황과 이로 인해 그들이 느끼는 좌절감, 그리고 부유한 1%를 위해 나머지 99%의 서민들이 이용당한다는 젊은이들의 피해의식이 “99%다”라는 한마디 말로 강하게 표현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세계 어디에서든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또 분명히 미래에도 “99% 대 1%”는 소위 먹히는 구호이고, 아이러니하게도 서민들을 현혹하기 딱 좋은 수단으로 이용되곤 한다. “당신은 1%의 가진 자이고, 나는 99%에 속하는 서민이다.” “99%의 서민을 위한 것이다.” 이런 말 자체에서 이미 당위성은 확보되어 버린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 따져봐야 한다는데 있다. 얼마 전 필자는 일간지를 보다가 어느 네트워크치과라는 곳의 전면광고들을 지면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
월요시론서은아 <본지 집필위원> 방어기제 행동이나 성격의 문제를 이해하는 핵심은 의식과 무의식의 수준에 있다. 의식은 자아와 초자아가 차지하고 있다면, 무의식은 원초아인데, 우리 마음속 자료의 85%(경험, 기억, 억압된 재료 등)를 차지하고 있다. 불안은 원초아, 자아, 초자아 사이의 갈등이 이용 가능한 정신 에너지의 통제를 넘어설 때 어떤 것을 하도록 우리를 동기화시키는 긴장상태를 말한다. 불안의 기능은 임박한 위험에 대해서 경고하는 것이다. 자아가 합리적, 직접적인 방법으로 불안을 통제할 수 없을 때 자아는 비현실적인 방법, 즉 방어기제를 선택하게 된다. 방어기제는 자아가 강한 압력이나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며, 억압, 투사, 반동형성, 합리화, 치환, 승화, 퇴행, 보상 등이 있다. ·억압(REPRESS); 위험한 기억, 갈등, 생각, 지각을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밀어내고 그것이 의식으로 다시 표출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즉, 생각, 기억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투사(PROJECTION); 자신이 수용할 수 없는 특성들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싫어하는 환자를 인정하기 싫어해서 환자가
월요시론정원균 <본지 집필위원> 치과의료윤리 교육에 관한 단상 요즈음 치계는 그동안 불법 치과 네트워크 사태로 내홍을 겪으면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치과의사의 위상을 두고 우려와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학계와 교육현장에서는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해법으로 치과의료윤리 교육이 핵심적인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한국치과대학장·치전원장협의회에서 치과의료윤리 등의 인문학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으며, 그 일환으로 치과의료윤리 교재를 개발하는 방침을 정한 바도 있다. 지난해에는 치과의사학 교육과정 개발을 위한 교수협의회가 창립해 치과의사학을 바탕으로 치과의사의 전문직윤리 교육에 주력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또한 대한치과의사협회에서는 치과의료윤리에 관련한 내용을 국가시험에 포함하기로 했고, 최근에는 치과의료윤리 교육을 주제로 포럼을 개최하는 등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필자는 치계의 이러한 문제의식에 모두 공감한다. 하지만 필자는 몇 가지 점에서 이러한 의지의 진정성을 낙관할 수 없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이러한 선언들이 과연 어느 정도나 구체적으로 성사될 수 있겠느냐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치계의 이러한 목소리는 전혀 새삼스러운 것은
월요 시론강병철 <본지 집필위원> 즉시 임플랜트의 불편한 진실 아 임플랜트를 티타늄으로 만들어 생체와 완전한 친화성이 생기고, 다양한 표면 처리를 통하여 골 유착이 잘되고, 치과용 CT 영상을 통하여 골의 양과 형태 등을 정확히 평가하고, 골 이식을 통하여 치조골을 보완하여 치아 임플랜트의 성공률이 높아져 이제는 임플랜트 시술이 보편화되어 있다. 교과서적인 임플랜트 시술은 발치 후 잇몸 뼈가 다시 채워지면 임플랜트를 심고, 심고난 후 임플랜트 주위에 골 유착이 되면 비로소 보철을 하는 것이 순서이다. 이런 전통적인 시술은 몇 달의 시간이 걸린다. 몇 달간 이가 없으면 음식을 먹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보기 흉하고 늙어 보이고 바보 같아 보이므로 발치 후 즉시 임플랜트를 심어 쓸 수 있기를 바라는 환자들의 요구가 커져왔고 이에 즉시 임플랜트와 즉시 부하 임플랜트 시술이 보급되고 상당히 높은 성공률이 발표되자 빨리 시술하는 기법이 많이 강의, 연수되고 있다. 그러나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는 말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빨리빨리 임플랜트 시술은 실패할 확률이 높아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교과서적인 임플랜트 치료를 하는 치과의사가 대부분이고 즉시 임플랜트 식립
월요시론허 택 <본지 집필위원>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시작됐다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현재 일반 직장인의 평균퇴직 연령이 53세로 산정됐다면 베이비부머의 퇴직이 2008년도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베이비부머는 이미 알고 있겠지만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가족계획 정책이 도입된 1963년 사이에 출생한 세대를 일컬으며,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약 713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4%를 차지하고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한국경제가 성장하던 19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 취직해 죽기살기로 일했으며 그 덕분에 한국을 세계 상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시키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베이비부머가 한국경제의 급속한 성장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여러 경제수치로 알 수 있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사회의 룰에 따라 은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의 사회적, 경제적 역할과 비중이 매우 컸기 때문에 그들의 은퇴는 한국사회와 경제에 매우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게 된다. 또한 아직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연령에 그들이 은퇴하는 것은 사회 전반에 공황상태까지 유발시킬 수 있겠다. 또한 개인의 입장에서도 가정경제 타격과 건강한 사회활동의 위축
월요시론정재영 <본지 집필위원> 예술인이자 과학자인 치과의사 (6)-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추구하자 치과 정의를 내릴 때 왜 과학이라는 단어보다 예술이라는 용어를 먼저 사용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예술은 인간으로 어떤 대상을 ‘봄(watch)’에서 시작한다. ‘본다’는 것은 관찰과 사고를 통해 그 대상을 파악하는 과정이다. 파악하는 데는 사고의 전제가 상상을 동원함에 있다. 그래서 콜링우드는 “예술은 최초의 기본적인 정신활동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말을 원용한다면 치의학도 무엇보다도 정신의 분야라는 것을 강조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예술가는 정서적인 공명(共鳴)을 통한 설득에 근거하고, 철학가는 논리적으로 일반적인 진실에 도달하고자 한다. 예술가는 감각적인 형상을 창조하려 하고, 사상가는 진리의 구조에 관심을 가진다. 따라서 예술가는 주제나 소재를 통해 인생을 해설하고, 철학가는 지성을 통해 경험에 바탕을 두고 과학적인 이해를 하려한다. 그래서 철학자와 예술가는 서로 갈등의 관계가 상호보완의 관계보다 강하였다. 그러나 바움가르텐이 미학이라는 말을 사용한 후 비트겐슈타인 등의 예술철학자들에 의해 예술과 철학의 상호관계가 해명되었던 것이다. 이제
월요 시론오성진 <본지 집필위원> 선량(選良)의 시기 선거철이다. 세상을 변화시킬 절호의 기회이다. 어떤 것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정치지망생들은 자신만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자기의 경쟁상대인 사람은 그런 개혁을 하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흠을 찾아 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때로는 평소에 하지 않았던, 몸을 혹사시키는 행동을 보이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자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변함없이 상대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끈 사람이 당선이 되어, 이 세상은 큰 변화 없이 이어져 나간다. 사실, 목소리 큰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 온 적은 없었다. 오히려 어지럽히는 일들이 많았다. 세상의 변화는 소리 내지 않고 꾸준히 한가지 길을 걸어 온 사람들의 노력들이 쌓인 결실이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세상을 바꾸려고 하기 전에 자신먼저 바꾸라는 금언을 한번쯤 마음에 두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을 실천하고자 계획도 세우고 실행에 옮겨보지만, 실제로 결실을 얻는 경우는 별로 없다. 소위 작심삼일로 끝나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