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마음이었겠구나!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였다고, 평소 가깝게 지내는 지인들이 새해 인사를 나누려 문자도 보내 주시고, 전화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수고스럽게도, 엽서와 편지를 보내 주셨습니다. 이렇게 정중한 편지를 받았을 때에는 감사한 만큼이나 편지로 답장을 드려야하는데, 부끄럽게도 몇 년 전부터 편지를 안 쓰다 보니, 메일이나 간편한 문자로 의무를 다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새해 인사를 나누려 보내 온 편지 중에 꼭 답장을 편지로 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하는 가슴 뭉클한 사연이 있습니다. 『신부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리고 늘 영육 간에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하는 신부님, 저는 올 한 해 마음의 목표를 나의 약점 돌아보기로 정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부님, 몇 일 전 연말이라 부모님 댁에 아내와 인사드리러 간 적이 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몇 달을 가지 않다 보니, 오랜 만에 찾아 뵌 부모님 댁에서 인사드린 후, 효도 한답시고, 이리 저리 둘러보면서, 혹시나 내 손길이 필요한 것이 없나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날
건강,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이랴! 정 운 스님대한불교조계종 그대는 인생을 살면서 가장 소중한 가치관은 무엇인가? 가치관이라기 보다는 인생의 근간으로 삼아야할 것은 건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건강은 음식과 관련되며, 음식을 통해서 새로운 인생관을 설계할 수 있다니 음식과 건강은 중요한 인연인 것만은 사실이다. 부처님 당시, 인도는 여러 나라로 갈라져 있었다. 코살라국 이라는 나라는 강대국 중 하나였고, 이 나라의 파사익왕은 부처님께 법문도 듣고 공양도 올리는 지극한 불교 신자였다. 그런데 파사익왕은 음식을 즐겨먹는 미식가였다. 게다가 대식가로서 매 식사 때마다 혼자서 쌀 두되 반 정도의 밥을 먹었고, 반찬도 육류나 생선이 주류를 이루었다. 늘 이렇게 식사를 하다보니, 왕은 많은 양의 음식을 먹지 않으면 밥 먹은 것 같지 않을 만큼 심각한 정도였다. 대신들과 왕후의 걱정은 말할 것도 없고, 비대한 체중으로 인해 건강문제도 심각했다. 어느 날, 파사익왕은 평소와 똑같이 아침밥을 많이 먹고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기원정사 사찰로 찾아갔다. 부처님은 몇몇 제자들과 파사익왕, 대신들에게 진리를 설해주었다. 그
마음의 상처 변경수 목사동녘교회 다사다난했던 2012년이 저물어 갑니다. 다시 오지 않을 시간입니다. 시간은 후진이 없습니다. 오직 앞으로만 나갑니다. 시간은 선물과 같습니다. 공로가 없는데 주어집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합니다. 시간 속에서 사는 건 축복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살아있다는 건 기적입니다. 틱낫한 스님은 ‘사람이 물위를 걷거나 하늘을 나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진짜 기적은 땅위를 걷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기적 같은 생을 누구나 행복하게 살길 원합니다. 시간은 좋은 추억의 흔적도 새겨놓지만 우리 마음에 상처를 새겨놓기도 합니다. 마음의 상처는 비방과 험담, 오해 등 말로 인해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좋은 추억은 살아가는데 행복한 기운을 더해주지만 마음의 상처는 두려움과 분노의 기운을 일어나게 해서 한발짝 더 나가게 하는 것을 막고 자신감을 잃게 만들어 스스로를 움츠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상처를 관리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혜민 스님은 “프라이팬에 붙은 음식 찌꺼기를 떼어내기 위해서는 물을 붓고 그냥 기다리면 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떨어져 나갑니다. 아픈 상처를 억지로 떼어내려고 몸부림치지
선한 마음과 선한 치료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음, 1년이나 지났을까, 거의 일 주일에 한 번씩, 치과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동창 신부님이 있습니다. 치과 치료를 다니게 된 발단은 예전에 운동장에서 야구하다가, 날아오는 공에 안면을 정통으로 맞아 심하게 다쳐 눈과 볼 주위 성형 수술까지 한 후에, 또 다시 치과 쪽에도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기간 치과 치료를 함께 받아야 할 지경에 이르러 지금까지 꾸준히 치료를 받으러 다닙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창 신부님은 치과 치료를 끝낸 후 나와 만날 일이 있어, 저녁에 약속을 잡고 만났습니다. 만나자마자, 내가 먼저 물었습니다. “치과 치료는 잘 다니고 있어? 그리고 오늘 치료는 잘 했어? 정말 지겹겠다! 아프지는 않아? 언제까지 다녀야 해?” 나의 연거푸 쏟아내는 질문에, 동창 신부님은 그냥 피식 웃으며, “응, 뭐, 잘 다니고 있지. 그런데 오늘 치과 치료를 다 끝낸 후에, 치과의사 선생님이 시간이 좀 있는지, 둘이 간단하게 차를 한 잔 마시게 되었어. 그 때 선생님으로부터 무척이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어!” “치과 선생님으로부터 흥미로운 일? 치아가 너무나 안 좋아, 그 선생님이 더 이상
영원한 행복도 없고, 영원한 불행도 없다 정 운 스님대한불교조계종 사람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하며, 내게 손실이 생기든 이익이 발생하든 간에 그것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중도(中道)적인 삶이라고 한다. 즉 어느 한편에 쏠리거나 집착심을 갖지 않는 무심(無心)한 마음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첫째, 행복할 때도 있고, 불행할 때도 있다. 둘째, 재물이 생길 수도 있고, 재물을 잃을 수도 있다. 셋째, 타인으로부터 칭찬 받을 때도 있고, 비방 받거나 꾸짖음을 당할 때도 있는 법이다. 보통 사람의 인생은 늘 기복(起伏)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런 기복에 마음여린 중생은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돗단배처럼, 삶의 파도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세상은 영원한 행복도 없고, 영원한 기쁨도 있을 수 없다. 그 반대로 영원한 불행도 없고, 영원한 슬픔도 없는 법이다. 그러니 어떠한 경계가 불어 닥쳐도 그 경계에 흔들리지 않는 중도가 필요한 법이다. 그러기에 타인의 어떤 비방이나 불행에 흔들릴 필요가 없으며, 반대로 타
우리는 무엇 때문에 고통을 받을까? 박성현 교수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고통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바이런 케이티> 인간은 자신에게 영원한 행복을 안겨 줄 무언가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무엇’과, 자신이 되고 싶은 ‘누구’를 찾고 싶어하지만, 대개는 좌절로 결말이 납니다. 영원한 행복을 줄 것 같았던, 인간관계, 직업, 자녀, 사랑 등등이 동시에 고통의 원천이 된다는 것을 쉽게 깨닫곤 하지요. ‘Loving What is’(네 가지 질문이란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됨)이란 책을 쓴 바이런 케이티라는 여성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세 자녀들 둔 어머니로서 좋은 직업이 있었던 그녀는 십년에 걸쳐 분노와 극심한 우울증, 피해망상과 섭식장애의 나락으로 서서히 빠져듭니다. 목욕이나 양치질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우울했고, 작은 소리에도 극도의 화를 낼 정도로 예민해져있었기 때문에 아이들과의 관계도 엉망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섭식장애 여성을 위한 요양원에 들어갔는데, 다른 여성들이 모두 그녀를 피했기 때문에 혼자 다락방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다락방에서 일주일 쯤 지난
선한 말 변경수 목사동녘교회 트로이 전쟁 중에 트로이 목마 작전을 고안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오디세우스가 전쟁터로 나가기 전 그의 친구 멘토르에게 아들을 맡겼습니다. 10년 전쟁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아들이 아주 훌륭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멘토르의 이름에서 오늘날 ‘정신적 지주’, ‘조언자’, ‘스승’의 의미를 가진 ‘멘토’라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멘토는 삶으로 가르치고 말로 용기와 희망을 주는 나침반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가야할 길을 모르거나 삶에 지쳤을때 위로의 말 한마디 들을 수 있는 멘토를 가진 사람은 행복합니다. 나의 상황과 사정을 잘 알고 그에 맞는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자신이 처한 어떤 상황에 함께 동감하면서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할 줄(!) 아는 친구를 가지셨나요? 제가 존경하는 이현주 목사님께서 몇 년 전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마태복음 4:4)는 말씀을 전하면서 하신 예화입니다. “어떤 성당에 가서 설교를 하면서 ‘말에 힘이 있을까요’라고 물은 뒤 앞에 앉아있는 여성분에게 일어나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분이 일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감나무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신앙생활을 나름,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하시는 자매님 한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언제나 신앙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좋은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과 편안한 관계를 잘 맺는 모범적인 신앙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자매님이 얼마 전에 있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생생하게 들려주었습니다. “신부님, 우리 마당에는 그다지 크지 않는 감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올 해 거기에 먹음직스러운 감이 몇 개가 달렸지 뭐예요. 그 기분, 묘하더라구요. 그런데 몇 일 전 미사를 다녀오는데, 누군가 그 감나무에 달린 감을 찍어 먹은 흔적이 있음을 발견했지요. 그 순간, ‘아, 까마귀 요 놈들이 그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와 동시에 ‘내 감’을 누군가에게 빼앗긴다는 기분이 들더니, 탐스런 그 감이 아까워 아직 익지도 않은 감들을 그냥 다 따서 집 안으로 가져와 버렸어요. 그리고 방에 걸어 두면, 시간이 지나 자연히 익겠거니 하면서요. 그런데 그 날 저녁, 수능 시험을 앞둔 딸애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것 같더니, 마당에 앉아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아 울어 버리더라구요. 가슴이 철컹
잠시 쉬어가면 어떨까요? 정 운 스님대한불교조계종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는 천하를 정복할 당시, 아테네에 이르렀다. 모든 사람이 정복자 알렉산더에게 무릎을 꿇었으나 디오게네스란 철학자는 알렉산더를 찾아오지 않았다. 기다려도 디오게네스가 오지 않자, 그는 부하를 데리고 찾아갔다. 가서 보니 한 늙은이가 몸에는 누더기를 입고, 머리는 언제 빗질을 했는지 산발을 한 채 나무통 옆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그 나무통은 그의 소유물의 전부인데, 낮에는 어디를 가나 그것을 굴려 가지고 다니며, 밤에는 그 안에 들어가 잠을 잤다. 알렉산더가 그를 쳐다보자 그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둘 사이에 한동안 침묵이 흘렀고 알렉산더가 물러나지 않자, 디오게네스가 물었다. “폐하께서는 지금 무엇을 가장 바라고 계십니까?”“그리스를 정복하길 바라네.” “그리스를 정복하고 난 다음에는 또 무엇을 원하십니까?” “아마도 소아시아 지역을 정복하길 바라겠지.”“그 다음은 또 무엇을 가장 원하는 바입니까?”“아마도 온 세상을 모두 정복하길 바라겠지.”“그러면 그 다음은 또 무엇을?” “그렇게 하고 나면 아마도 좀 쉬면서 즐겨야 하겠지.”“이상하군요
나 무 명 상 변경수 목사동녘교회 기독교환경운동연대 30주년 행사에 제가 만든 목공예품을 전시하고 싶다해서 팀장을 만났더니 조심스럽게 “목사님, 이거 벌목한 거 아니죠?”라고 물어봤습니다. “아니예요, 가지치기해서 버려진 나무 주워다가 만들었어요. 이 십자가는 볼라벤에 쓰러진 나무로 만들었어요”했더니 안도를 하는 듯했습니다. 지난 8월, 역대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태풍 볼라벤으로 제가 학교 다닐땐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휴교령이 떨어지는 등 온나라가 초긴장 상황을 맞았었습니다. 태풍이 지나 간 후 길거리에는 바람에 꺾인 나무들을 치우느라 분주한 분위기였습니다. 가지치기로 버려진 나무를 주워서 공예를 하는 제게 나무더미는 늘 관심거리입니다. 특히 모과나무, 단풍나무, 은행나무, 향나무를 주우면 하늘을 향해 큰 인사를 하고 기뻐합니다. 일산 호수공원가는 도로에 단풍나무 가로수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빠알갛게 물들어가는 단풍에 감탄하지만 저는 몸체에 감탄합니다. 근육질 모양으로 우람하게 뻗어 올라간 강인한 느낌의 몸체가 참으로 멋집니다. 그래서 이런 단풍나무를 구하는게 늘 바람입니다. 태풍 볼라벤에 의해 허벅지 굵기만한 단풍나무
참으로 별난 강아지!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나는 애완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끔 어느 가정에 초대를 받아 갈 경우, 그 집에 강아지나 고양이, 그리고 그 밖의 동물들이 있는 걸 보면, 남들처럼 감탄사를 연발하며 ‘아, 예쁘네요, 귀엽네요… ’ 뭐, 이런 말들을 하지 못합니다. 아니, 오히려 그 집 식구들이 키우는 강아지나 그 밖의 동물들이 나에게 다가오면, 집 주인에게 말은 못하고,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듭니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지금 방금 기억나는 것으로는 예전 신학교 다니던 시절, 어느 선교 수도회를 방문했을 때 일이 떠오릅니다. 그 수도회 마당에는 개가 한 마리 있었는데, 그 날, 그 개가 나에게 어슬렁 다가오더니, 이유 없이 나의 종아리를 물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개가 나를 물을 것을 본 거기 수녀님이 달려오더니, 나에게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개에게 ‘많이 놀랐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날, 정말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는 꼴을 당한 후, 더욱 애완동물과 그 동물을 애지중지 키우는 이들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요즘은 ‘애완동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