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 건 <본지 집필위원> 개원 초기비용을 줄이자 조선일보가 2009년 5월 6일부터 “모두가 피곤한 고비용 결혼식”이라는 제목의 시리즈를 지상에 연재하고 있다. 6월 8일까지 이미 10회가 실렸다. 여기에서 서울의 특1급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릴 경우 단 하루의 결혼비용만으로 최하 7천만원, 평균 1억, 최고 1억5천만원까지 든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훨씬 높은 홍콩이나 프랑스 같은 국가에서도 국민 대다수가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관공서 예식장을 이용해 결혼식을 올리며, 결혼 총비용을 다 합쳐도 우리나라의 절반에 미치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의 결혼문화도 이제부터는 허례허식에서 벗어나 실용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결혼과 개원을 똑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우리 치과의사의 경우 개원이 인생의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는 의미에서 결혼과 유사한 점이 많다. 치과의원의 개원 초기비용에 대해, 우리 대한치과의사협회 쪽은 정확한 데이터가 없어 확실히 알 수가 없지만,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대한의사협회 쪽 데이터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의 추정이 가능하다.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개원을 위
본래 주어진 권리 혜원 스님<조계종 한마음선원 주지>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 한 것은 스스로 무한한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고, 자유자재의 능력이 있다는 것, 모든 재료를 다 갖췄고, 여여하고 청정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모두들 소견을 아주 잘게, 좁게 써서 아웅다웅하며 살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짐승들은 보이는 데서 서로 잡아먹지만 사람들은 보이지 않게 서로 정신을 잡아먹고 있습니다. 그 싸움은 너무나 치열하고 비참해서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 싶을 정도입니다. 각자 마음을 너그럽고 자비롭게 쓰며 살아도 먹을 것, 입을 것이 따라오게 되어 있는데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싸우다니 참으로 비통한 일입니다. 한 생을 길다고 하면 길겠지만 짧디짧은 생을 괴로움 속에서 보내서야 어디 산다고 하겠습니까?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참으로 슬픔도 많고 외로움도 많고 고독함도 많고 허망한 일도 많은데 그것이 다 어디서 오는지를 모른다면 얼마나 딱한 일이겠습니까? 내게 닥치는 일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도 모르고 가는 것조차 모른다면 어디 인간이라고 자부할 수 있겠습니까? 나 하나 건질 수 없다면 사람이라 말하기도 어렵습니
황규선 <치과의사·철학박사> 西施捧心(서시봉심) 서시라는 미인은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후궁이었는데 가슴앓이 병이 있어서 늘 가슴을 움켜쥐고 괴로운 모습을 하고 있을 때가 더욱 어여뻐 보이고 가련해 보였다고 한다.그런 연유로 장안의 여인들이 짐짓 가슴을 움켜쥐고 괴로워하는 서시의 모습을 흉내 내는 것으로 자기도 미인인양 과시했다는 것이다.요즈음은 각종 정보매체의 도움으로 지구촌이 하나같이 감각적인 아노미 상태에 빠져있다.수백 개의 채널을 통해 흘러나오는 영상물이나 휴대용 전자기기를 통한 각종 정보는 어느 곳 어느 때를 할 것 없이 지구촌을 술렁이게 한다. 여인들이 몸에 걸치는 입성을 보면 세월 가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다.이즘에는 파리의 번화가나 동경이나 서울의 거리가 별로 구별이 되지 않을 만큼 서시의 몸짓으로 일반화 되어 가고 있다.한때 얼짱이란 말이 떠돌면서 얼굴 뜯어 고치는 것이 유행됨으로써 짝퉁 얼굴이 시내에 득실 대더니 이제는 몸짱으로 방향이 바뀌면서 도하의 헬스클럽, 체조교실이 호황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결국에는 얼짱이나 몸짱에 식상한 나머지 맘짱(마음씨 아름다운 모습)으로 이행될 조짐이 보이기에 그
.VBN_42585 {WORD-BREAK: break-all; font-family:굴림;font-size:9pt;line-height:normal;color:#000000;padding-left:10;padding-right:10;padding-bottom:15;padding-top:15;}.VBN_42585 p, .VBN_42585 td, .VBN_42585 li{font-family:굴림;font-size:9pt;color:#000000;TEXT-DECORATION:none;line-height:normal;margin-top:2;margin-bottom:2}.VBN_42585 font{line-height:normal;margin-top:2;margin-bottom:2}.VBN_97131{font-family:굴림; font-size:9pt;}오 성 진 본지 집필위원지식을 활용하는 훈련이 필요생각의 깊이를 깊게 하다 보면, 상식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얕은 판단인가를 깨닫게 될 때가 많다. 좋은 일에는 웃고 힘든 일에는 찡그리고 마음에 드는 일에는 기쁘고 언짢은 일에는 짜증을 내는, 갖은 반응들이 생각의 얕음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깨닫는다.고통이 축
.VBN_42585 {WORD-BREAK: break-all; font-family:굴림;font-size:9pt;line-height:normal;color:#000000;padding-left:10;padding-right:10;padding-bottom:15;padding-top:15;}.VBN_42585 p, .VBN_42585 td, .VBN_42585 li{font-family:굴림;font-size:9pt;color:#000000;TEXT-DECORATION:none;line-height:normal;margin-top:2;margin-bottom:2}.VBN_42585 font{line-height:normal;margin-top:2;margin-bottom:2}.VBN_97131{font-family:굴림; font-size:9pt;}월요 시론배 광 식 본지 집필위원구강보건의 날을 맞으며1946년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전신인 조선치과의사회(1945.11 창립)에서는, 6월 9일을 ‘구강보건의 날’로 정했고, 금년으로 64회 구강보건의 날을 맞게 되었다. 근세 우리나라에 이와 유사한 날로, 조(전)선치과의사회(1921.10.2 창립)에서 1926년
弔崩御岩 (조붕어암) 삼가 명복을 빕니다.2009년 5월 23일은 서글픈 날 이었습니다.초여름 가랑비가 산야를 적시는 가운데 비보가 전해졌습니다.가신님의 영혼을 애도하는 눈물 같은 보슬비가 내렸지요.63세로 생을 마감한 노무현님이 가신 날 이었습니다. 서민정치인으로 일관했던 대통령! 아쉬운 생애를 권위에 연연하지 않고 서민과 함께 정치무대를 만들어 보였던 수승한 평민대통령이셨지요. 참으로 애절하고 아쉽습니다.지나치게 순박한 탓 이었을까요. 아니면 治世의 술수를 외면한 탓 이었을까요.역사의 흐름과 정치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암수가 있음을 짐짓 무시해 버렸기 때문이겠지요.왜 하필이면 생애의 공과를 공개적으로 평가받아야 될 즈음에 침묵으로 대항하려 하십니까.大人다운 풍모로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다시는 국정이 변칙적으로 자행되지 않을 방도를 천명하셨어야지요. 숨긴 뜻을 헤아리기 어려워 답답하기만 합니다.허물은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님의 그 깊은 뜻을 어이 헤아려야 하겠습니까. 이와 같은 불행이 되풀이 되지 않으려면 어이해야 하겠습니까. 남은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주셨군요. 우선 의식수준을 한층 높여야 하겠지요. 도덕적 양심이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이 세상에 괜히 태어났다, 어쩌다가 잘못 태어났다고 한탄하는 사람을 가끔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개구리 한 마리, 저 날짐승 하나, 풀벌레 하나도 괜히 태어난 게 아닙니다. 태어날 만하니까 태어난 것입니다. 수십억 년 전으로 돌아가서 본다면 인간은 물에서 살다가 겨우 물 밖으로 나왔고 갖은 우여곡절 끝에 돌고 돌아서 지금 인간으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생명에 대한 갖가지 교육을 받은 셈입니다. 그 과정의 시련과 고난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진화하여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찰나찰나 죽고 사는 생사의 고비를 넘겼고 때로는 새나 짐승의 몸으로 쫓고 쫓기는 천차만별의 시련도 겪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이 되었는데 그런 반복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차원의 높낮이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인간의 몸을 받아 나와서 나를 바로 알아야 한다는 것은 계속해서 차원의 승화를 도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과거 미생물에서부터 수없는 나날들을 거치면서 스스로 애쓰고 노력한 끝에 진화하고 또 진화해서 인간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 어찌 잘못 태어났다든가, 원치 않는 인
박 용 호 <본지 집필위원> 왜, 이리 항상 골프가 문제인가 일전에 국방부에서 군의관들이 평일 근무시간 중에 골프를 쳤다고 대대적으로 구속을 하고 난리법석을 친 사건이 있었다. 급기야는 형평성이 문제되자 장성을 포함한 모든 장교 및 군무원까지 파급되어 언론에서도 무슨 큰일 일어난 듯 연일 떠들다가 북한이 미사일 발사하면서 흐지부지 되었다. 그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은 참, 아직도 별것을 다 뉴스 감으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국방부가 그랬든 언론이 그랬든 우선 호칭부터가 군인 보다는 ‘군의관’이라고 함으로써 의사들이 군대에서 또 일을 저질렀다는 선입견을 준 것이다. 일반장교와 똑같은 대우와 월급을 주면서 왜 하필 이럴 때는 별칭을 써야 하는가. 이것은 은연중에 학생 때 자기들보다 공부 잘 했던 의사들에 대한 반감과 시기심과 열등감을 표출한 것에 다름 아니다. 평일 골프라고 하지만 아마도 수요일 전투체력의 날 오전 근무 일찍 끝내고 모처럼 기분을 낸 행사였을 것이다. 그 이외 다른 날 골프를 칠 간 큰 군의관은 없었을 것이다. 필자가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25년 전에도 이미 발 빠른 군의관들은 그걸 했는데 지금까지도 위수지역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은 철칙입니다. 금생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은 다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의 결과입니다. 내 살아온 모습이 금이면 금방에 태어날 것이고 무쇠 차원이면 무쇠전으로 가서 탄생이 될 것이고 넝마 같았다면 넝마전에 나앉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이 세상에 출현하는 모습은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악업·선업으로 지은 인연들이 내 속에 모두 주둔해 있다가 그 양상대로 표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금을 어떻게 사느냐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내 생활이 이만하면 됐다, 나만큼 잘 하고 사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사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인간이면 누구나 자기 나름의 차원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바로 마음공부를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마음공부야말로 지금 이 순간의 이 상태, 이 처지에서 벗어나 보다 나은 상태로 진화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지금 내가 받은 인생의 배역에 따라서 다음 순간의 삶으로 연결됩니다. 따라서 인생 배역을 지금 이렇게 받은 이상 소임을 충실히 하면서 선하게
월요시론 김 재 성 <본지 집필위원> 내 子息은 이렇게 기르고 싶었는데 지금까지 살아 온 나날이 반백년은 넘었고 이 세월을 돌이켜 볼때 마음에 남는 것은 대부분이 자식에 관한 일들이다.그리고도 앞으로의 일들에 대한 걱정과 바람도 나 보다는 자식들에게 있으니 이런 다정(多情)은 집착이 아닌가 싶다. 많은 서양인들은 성년이 될 때까지 보살피고 교육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면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한 것으로 보는데, 우리의 사고방식은 낳아서 기르고 가르치고 능력이 허락한다면 경제적인 힘까지 보태어 사회로 나가는 첫발도 남보다 더 앞서 나아가게 해주어야만 부모로서 할 일을 다한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미가 자식을 보살피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종족보존과 유지라는 큰 의미를 말하지 않아도 당연한 것으로 모든 어미는 자식을 돌보지만 그 어느 무리나 개체보다도 자식 사랑에 모든 힘을 다하는 종족을 찾는다면 한국의 부모가 으뜸이다. 이런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금까지의 효심과 우애로 뭉쳐지는 한국적 가정문화를 이루는 근본은 되었지만 그와 더불어 “자식의 삶이 내 삶이요, 자식의 실패는 내 책임”이라는 지나친 사랑으로 이어져 자식
김 신 <본지 집필위원> 아날로그적 발상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디지털은 너무나 익숙한 물건이다. 아무데나 널려 있다. 처자를 떠나보낸 기러기 치과의사의 눈물을 쥐어짜게 만드는 인터넷 화상통화, 어디건 데려다주는 네비게이터, 바지주머니 속에서 세상을 연결해 주는 휴대폰… 그리고 치과 진료에 이제 디지털 X-ray는 필수장비가 되어가고 있다. 숨쉬는 공기 중에도 디지털은 섞여 있을 것 같다. 디지털이 현대생활에 필수적인 도구가 되어가면서부터 아날로그는 디지털의 반대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디지털은 최첨단 신기술을 등에 업은 편리함의 대명사로 이해되는 반면, 아날로그는 과거의 느리고 불편했던 낙후한 기술이자 골동품으로 파악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러나 실제로 그럴까 하는 의문을 간혹 가지게 된다. 지도를 들고 초행길을 운전하다가 길을 잃어 차창을 내리고 촌노에게 길을 물었을 때 물씬 풍겼던 고향 냄새는 이제 네비게이터가 빼앗아 갔다. 이메일이 아닌 육필로 쓴 편지를 받아본 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람의 체취와 마음이 묻어나는 글씨와 편지지, 봉투가 그리울 때가 있다. 디지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