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8 (수)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릴레이수필(765)>
출근길
이한우(진주시 이한우치과의원 원장)

작은 것들에 눈을 빼앗기며 걷는 출근길 아침마다 나에게 일상의 소중함 일깨워 진주라는 작은 도시에서 사는 나에게 누군가가 작은 도시에서 사는 즐거움을 하나만 들어보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걸어서 출퇴근하는 재미라고 말하겠다. 나의 병원은 도심의 제일 중심에 있는데도 집에서 출발해서 빨리 걸으면 15분쯤 걸리고 주변에 시선을 주며 느긋하게 걸으면 20분쯤 걸린다. 대개는 주변에 시선을 주며 생각에 잠겨 걷기 때문에 20분쯤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나는 가능한한 차가 잘 다니지 않는 골목길로 주로 다닌다. 우선 집을 나서서 첫번째 골목에 접어들면 벌써 눈길이 잡히는 곳이 있다. 뜰에 심어 놓은 목련이 유난히도 예쁜 집이 있는데 이른 봄철이면 상아색 처연한 봉오리를 푸른 하늘에 기도하듯이 피워올린 모습에 끌려 그 밑에서 잠깐이라도 걸음을 멈추고 황홀한 눈길을 던지곤 한다. 봄바람에 날리는 목련꽃의 향기가 사그라드는 골목 끝을 지나 1분쯤 더가면 성당의 뒷길이 나오는데, 이 골목길에서도 항상 시선을 빼앗기는 곳이 있다. 성당의 지붕 꼭대기에는 참새들이 항상 일렬로 늘어앉아 수다를 떨곤 한다. 특히 겨울에는 이른 아침 햇살에 간밤의 추위를 녹이느라 부산히 날개 깃을 부비며 몸속 고루 햇살을 넣기도 하고, 부리로 톡톡 햇빛 부스러기를 쪼아 먹기도 하며 재재거리는 소리가 제법 긴 골목 끄트머리까지 따라오는 것이다. 골목이 끝나 큰길을 건너면 서부시장이 이어진다.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이른 새벽부터 인근 산청이나 함양 등지에서 모여든 할머니들이 조그마한 보퉁이들을 저마다 펼쳐놓고는 좁은 인도 양쪽에 쪼그리고 앉아 서로 자리다툼에 바쁘다. 할머니들의 보퉁이에는 계절이 그대로 담겨있기 마련이어서 이른 봄에는 쑥이나 냉이가 잔뜩 봄내음을 풍기며 수줍음을 타고 있고, 여름이면 열무나 배추 몇 단이 더위에 지쳐 있곤 한다. 또 가을에는 사과며 밤 따위들이 서로 몸을 기대며 옹송거리며 모여있고, 겨울이면 곶감들이 꼬챙이에 꿰어진 채 서로 햇살을 받으려고 고개를 쳐들고 있기도 한다. 때론 장보러 나온 아주머니의 손 끝에 찍힌 길다란 갈치가 내리치는 칼날에 흰 비늘을 번뜩이며 튀어오르는 것도 볼 수 있다. 시장을 벗어나서 길을 건너면 좁은 골목길이 나를 맞고 그 길로 몇분쯤 가면 야트막한 담을 친, 한 세평이나 될까 한 짜투리 땅이 나온다. 여기를 지날 때마다 나는 귀를 세운다. 담장 안에는 허연 개 두 마리와 몇 마리의 닭들이 있는데 거기를 지날 무렵이면 닭들이 꼬옥꼭하는 울음을 내며 내게 인사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도 안녕하며 반가움을 전하고 지나간다. 그런데 어쩌다가 부러 느린 걸음으로 더디 지나가는데도 울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마음이 여간 섭섭하지 않아 들리지 않는 울음 소리를 보기라도 해야 할 것처럼 몇번씩이나 뒤를 돌아보며 골목을 아쉬운 듯 지나는 것이다. 그 곳을 지나면 본격 도심으로서 벌써 차들이 분주하다. 차도를 건너 병원이 있는 「차없는 거리」에 접어들면 여기저기서 문을 여느라 옷가게 아가씨들의 몸짓이 부산하다. 그 속에서 길 한가운데에 똬리를 튼 뱀처럼 쪼그리고 앉은 채 긴 담배를 물고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날 수 있다. 근처 가게에서 나오는 헌 종이박스를 모아서 파는 것이 업이어서 할머니의 눈초리는 짐짓 엄숙하기만 하다. 할머니의 머리엔 사시사철 나이키 표식의 챙모자가 씌워져 있고 그 뒷머리에 눈인사하고 지난다 싶으면 아쉽게도 바로 병원이 나온다. 그러면 나의 감미로운 출근길도 끝나는 것이다. 이렇게 작은 것들에 눈을 빼앗기며 걷는 출근길은 아침마다 나에게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우리 인생의 길도 이와 같아서 목표를 향해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다보면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을 놓치고 마는 것인지…. 드디어 장마의 시작인지 오늘은 비가 온다. 우산을 받쳐들고 나서니 우산에 부딪치는 하늘의 소리가 경쾌하다. 여느 때와 같이 골목길의 닭울음에 화답하며, 빗 속에 상큼하게 피어난 질경이의 노란 빛에 감탄하며 걷는 출근길은 진주에서 사는 나의 큰 기쁨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