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우식을 주소로 새로 진료실에 내원한 환자가 교정치료를 다 받았는데 이가 잘 안 맞는 것 같다고 이야기해요. 교합을 확인해 봤는데 악간 접촉이 몇 부분에서만 이뤄지더라고요. 치과에선 이미 교정이 다 끝나서 유지 단계라고 하고 잘 끝났다는 이야기만 한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환자에게 치료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고 이야기해도 될까요? 익명
“어느 수준까지 진료를 제공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각자가 진료를 바라보는 개념이 다르고, 전공에 따라 접근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죠. 게다가, 각 사람이 모든 진료 영역에서 같은 수준의 진료 기술을 습득하고 수행할 리도 없고요. 제 예를 들면, 소아치과 수련을 받고 이후 군의관과 봉직의 생활에서 일반 진료도 배우고 소화하긴 했습니다만 정밀한 근관치료나 보철적 재건, 복잡한 치주수술은 쉽게 손을 대기 어렵습니다.
꼭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하겠습니다만, 그 결과가 만족스러우리라는 자신은 없지요. 제가 그런 진료를 해놓은 것을 보면 누군가는 모자란 진료라고 하실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최선을 다해 진료할 것이고 그것이 최소한 나쁜 진료가 되지는 않기 위해 노력하겠죠.
이런 상황이다 보니, 누군가가 잘못된 진료를 했다고 명확하게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환자에게 부작용이나 불편감이 발생한 것은 잘못된 진료의 기준일 수 없는데, 모든 진료는 제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을 상정해야 하기 때문이죠. 엄청나게 공을 들여 잘 접착한 레진도 떨어질 수 있고, 부근관까지 다 찾아서 잘 충전한 근관도 술후 통증이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심지어, 환자의 구강 관리와 전신 건강, 습관에 따라 치료가 언제까지 유지될까 하는 것도 천차만별입니다. 잘 심은 임플란트라 해도 환자가 자주 흡연하고 구강 위생에 신경 쓰지 않으면 임플란트 주위염이 생긴다 해서 치과의사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죠.
그렇다면, 잘못된 진료란 어떤 치료 기준을 달성하지 못한 진료를 의미하게 됩니다. 이를 의료윤리에선 진료 표준(standard of care)이라고 부르죠. 현재 치과계에서 일반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진료의 수준에 맞춰 적정한 진료를 제공했다면, 그 진료에서 부작용이 발생했다 해도 그것은 잘못된 진료가 아닙니다. 물론, 환자에게 부작용 발생 가능성을 미리 설명했다는 전제가 붙어야겠지만요. 거꾸로, 현재 치과계에서 일반적으로 수행하는 진료 수준을 달성하지 못하거나, 적정치 못한 진료를 제공한 경우를 우리는 잘못된 진료 또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의료 사고라고 부를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구강 내에서 타 치과의사에 의해 수행된 잘못된 진료 결과를 발견한 치과의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조건 환자에게 이전 진료가 잘못임을 고하고 자신이 새로 잘 치료해 줄 것이며, 이전 치과의사는 고발하라고 말해야 할까요? 고발은 심하니 이전 치과에는 그냥 가지 말라고 말하는 것에서 그치면 될까요? 주의해야 할 것은, 의료인으로서 진료 결과에 관해 언급하는 것은 공적 진술이라는 점입니다. 이 내용은 이후 법적 근거로 활용될 수 있을 만큼의 무게를 지녀야 합니다. 즉 타인의 진료를 평가할 경우, 평가는 엄밀한 근거에 의해 이뤄져야 하며 객관적으로 볼 때 누구나 동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기준을 통과하는 잘못이라면, 그 진료를 수행한 치과의사가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공적 절차를 밟아야겠죠. 전문직으로서 문제를 책임 있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선, 협회 윤리위원회에 질의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그러나 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환자에게 잘못된 진료라고 말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대신, 치료 결과가 좋지 못하다는 표현으로 에두를 수 있겠지요. 이는 동료의 잘못을 무턱대고 덮어두자는 주장이 절대 아닙니다. 엄밀하게 증거를 제시할 수 없는 판단의 경우, 그 결과에 관한 판단을 제시하는 것을 보류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긴급을 요하는 처치가 있다면 해결하고, 원래 치료받은 치과와 연락을 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발견한 상황을 전달하고, 환자가 다시 원래 치과로 돌아가 적절한 후속 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치과의사로서 지닌 의무입니다. 같은 선상에서, 만약 다른 치과에서 환자 문제로 연락을 받았을 경우 동료의 견실한 충고로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상대방이 자신을 공격하거나 헐뜯기 위함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야 하죠.
왜 이렇게 접근해야 할까요? 그것은 신뢰의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환자와 치과의사 간, 치과의사와 치과의사 간의 신뢰. 친구 사이에도 신뢰를 쌓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동안 쌓아온 것은 한순간에 허물어집니다. 여태껏 모르는 사이였던 환자와 치과의사 사이나 치과의사끼리의 관계에선 말할 것도 없지요. 하지만 환자가 치과의사를 만날 때, 치과의사가 다른 치과의사를 만날 때 개인 대 개인의 만남만이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환자는 눈앞 치과의사에 치과의사 공동체를 겹쳐 보지요. 치과의사끼리 만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문인으로서 남 앞에 설 때는, 자신이 속한 전문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상대방을 만나게 됩니다. 이것은 해당 공동체가 주는 사회적 신뢰가 개인 치과의사에게 중요함을 알려줍니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이라 해도, 그가 속한 공동체의 평판이 엉망이라면 환자에게 신뢰를 얻긴 어렵죠.
거꾸로, 이는 개인 또한 공동체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개인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공동체의 신뢰가 저해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공동체에 속한 동료가 사회적 신뢰에 문제를 일으키는 행동을 하는지 살피고, 필요하다면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이 틀 안에서 다른 치과의사의 미진한 진료(확실한 근거하에 잘못된 진료라고 판단할 수 없는 경우)를 다시 생각해본다면, 이를 잘 해결하는 것 또한 공동체의 신뢰를 유지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환자가 이전 치과의사, 자신, 전체 치과의사 공동체에 관한 신뢰를 잃지 않는 선에서 현재 불편감이나 문제를 느끼는 부분을 원래 치과의사에게 다시 상담받을 수 있도록 새로 환자를 본 치과의사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다른 치과의사로부터 주어진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지요. 이것은 개인 수준의 행동방침일 수 있어요. 하지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가 될 수 있죠. 남이 먼저 신뢰를 줘야 나 또한 그렇게 행하겠다 하는. 그렇기에, 의료윤리에서 행동지침으로 이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질문으로 주신 상황이라면, 환자에겐 교정치과에서 다시 상담받을 수 있도록 하고(다른 치과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환자가 이전 치과에 대한 신뢰를 놓쳤다는 증거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교정치과에 연락을 취해 문제 상황을 잘 전달하는 것이 윤리적 접근이겠지요.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