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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와 환자가 진료 외 관계를 맺어도 될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12)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연초, 모 치과의사가 연예인 지망생인 미성년자를 꼬드겨 성관계를 맺고 그 장면을 불법 촬영하여 재판에 넘겨졌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미성년자, 불법 촬영은 그 자체로 불법이므로 부정을 저지른 개인을 향한 엄벌을 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성년자가 아니었고 불법 촬영을 하지 않은 경우에도 문제가 될까요? 작년에는 한 정신의학과 전문의가 환자를 그루밍 성폭력 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치과의사는 이런 부분과는 무관하지 싶어서요. 치과의사와 환자가 진료 외 관계를 맺는 것은 괜찮지 않나요? 익명

 

미국에서도 이 질문에 관한 논문과 지침이 여러 번 발표된 것을 보면 꽤 흥미로운 지점인 것 같아요. 주변에서 환자와 만나 결혼한 치과의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 것을 보면 더더욱. 일단, 미국치과의사협회 학술지인 JADA에 실린 논문을 간략히 살펴보고, 여기에 살을 더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면 어떨까 합니다.

 

2005년, 당시 테네시대학교 치과대학 학장이었던 로이드 조지 박사가 실은 논문은 가상의 사례를 하나 듭니다. 질문의 요는, 한 치과의사가 접수 담당자에게 데이트가 가능하고(즉, 미혼이고) 관심이 있는 환자가 있다면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했는데, 이게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냐는 것이었어요. 조지 박사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답해요.


우선 미국치과의사협회 윤리 원칙, 전문가적 행위 규약은 전문가적 판단이나 신뢰를 해칠 수 있는 환자와의 관계를 치과의사는 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의료윤리의 원칙 중 하나인 악행 금지, “해를 끼치지 말라”에서 나오는데요. 그런데, 환자와 사적 관계를 맺는 것이 환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을까요? 환자와 치과의사가 만나고 있는 경우 전문가적 판단을 내릴 때 환자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둘 사이 만남은 피해야 한다고 조지 박사는 말합니다. 더불어, 치과의사가 진료 표준에 따라 최선의 진료를 한다고 할지라도, 환자-치과의사 사이 취득한 정보가 치료 외의 목적에 활용될 수 있으므로 신뢰와 비밀유지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면 치과의사는 환자와의 만남을 피하고 중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핏 설득력 있는 주장처럼 보이지만 모호하지요. 환자와 만난다고 해서 치과의사가 치료적 결정을 내리는 데서 흔들리고, 비밀유지를 어긴다면 그것은 치과의사의 기본적 자질 문제일 거예요. 물론 어떤 경우―이를테면 환자와 헤어진 치과의사라면―복수심에 이런 행위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잘 만나서 어떤 귀결로 이어지면 좋은 일이요, 헤어지면 환자는 다른 치과로 가면 되니까요. 위 논문의 답은 충분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환자와 치과의사가 만나는 것은 아무런 윤리적 문제도 제기하지 않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는 어느 정도 윤리적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 환자-치과의사의 치료 외 관계에 존재한다는 의미이며, 이런 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 치과의사는 자신의 행동을 세심하게 점검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환자-치과의사 관계는 두 가지 축으로 이뤄집니다. 하나는 의학적 지식을 통한 신뢰의 차원, 다른 하나는 시장 계약을 통한 재산 관리의 차원이죠. 환자-의료인 관계 일반이 이 두 차원으로 이뤄지기에 임상윤리는 환자-의료인 관계를 신탁으로 설정하며, 의료인은 수탁자로서 일정한 업무를 위임받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진다고 봅니다. 지식의 차원이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의사와 달리, 현대 치의학은 발생하던 초기부터 재산 관리 차원이 더 중요했어요. 즉, 치과의사는 지식을 통한 정보 제공과 결정보다, 좀 더 구강 건강이라는 환자의 재산을 관리하는 역할이 크다는 의미입니다. 신탁자인 환자는 치과의사에게 이미 일정 정도 자신의 처분을 위탁하게 됩니다. 남에게 잘 열어 보이지 않는 입안을 드러내 보이고, 그 안에서 어떤 치료가 진행되는지 알기 어렵다는 점에서 치과에서의 위탁은 상당히 높은 수준에 이릅니다.


이런 위탁 관계에 치료 외의 관계가 개입되는 경우, 환자는 수탁자와 맺은 계약의 안정성에 대해 불안감을 품게 됩니다. 그것은 치과의사가 환자 중에서 만날 상대를 찾고자 하는 경우든, 아니면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치과의사와 환자가 어떤 계기로 만나게 되는 경우든 마찬가지죠. 그것은 현 단계에서 완전히 치료가 끝나 유지 단계로 들어간 환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점차 우리는 환자와 치과의사가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상호 신뢰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고 있지요. 이를 환자-치과의사를 다루는 문헌에선 상호작용 모형이라고 불러요<표 참조>. 하지만 성별을 이유로 어떤 환자는 이런 관계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특정 환자를 향한 차별이자 치과의사가 환자 일반과 맺는 관계에서 문제 발생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정리하면, 환자와 치과의사가 치료 외 관계를 맺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상황을 만들 가능성을 다분히 품고 있습니다. 그 문제는 환자-치과의사의 신탁 관계를 저해하는 데에서 나오며, 따라서 치과의사는 자신이 환자와 치료 외의 관계를 맺고 있거나 맺으려는 경우, 이 관계가 환자와 맺는 신탁자-수탁자로서의 관계를 침범하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