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난 딸내미가 내 등뒤에서 낑낑거린다.“엄마 시원해요?”내가 어렸을 때 친정 어머니는 매일 목욕을 하셨고 나는 그 때마다 어머니의 등을 밀어드리러 목욕탕으로 호출되었다. 아마도 초등학교 1학년서부터였을 것이다. 엄마의 넓은 등을 낑낑거리며 때수건으로 밀면서 “엄마 이제 시원해요?” 자꾸 물어보곤 했다. “이제 그만 닦으면 안 되요?” 하는 완곡한 표현이었겠지...어머니는 내가 등 밀어 드리는 것이 늘 시원하다고 하셨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갈고 닦은 노하우로 내가 등을 밀면 다들 시원해한다. 10~20년쯤 전에는 동네 목욕탕에 가면 서로 모르는 사이라도 돌려가며 등을 밀곤 했다. 목욕탕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한 사람을 찍어서 나중에 저 사람과 등을 밀어야지... 하고 정해서 때를 엿보기도 하고 어느 때는 떡대같은 아주머니에게 일방적으로 찍혀서 내 등의 3배는 되어 보이는 그 넓은 등을 밑지는 심정으로 닦고 나서 내 차례에는 그 아주머니의 강력한 힘에 부풀어오르는 등의 아픔을 이를 악물고(아프다고 말도 못하고) 참았던 적도 있고... 그 때는 목욕하러 가면 등 미는 게 무슨 필수과정이라도 되는 것처럼 전국민이 다 그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등 밀어달라는 숫기가 없거나 긴 타월이 없는 사람은 등 한 복판에 외로움의 흔적을 남겨야 했다. 여기 저기 팔 닿는 데까지 닦아도 할 수 없이 남는 등 한가운데의 마름모꼴의 외로움의 흔적을... 요즈음은 이전처럼 최선을 다 해 때를 미는 사람도 없고 그저 비누칠 한 번하면 20분 안에 목욕이 끝난다. 아무튼 내 등밀이는 시원하고 프로패셔널했다. 나중에는 ‘압력법’이라는 신기술까지 개발했다. 목덜미에서부터 꼬리뼈까지 힘을 주어 꽉 눌러가며 천천히 한 줄로 밀어내는 것이다.이 기술에 걸리면 아무도 내 실력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목욕탕에서 등 바꾸어 밀자는 사람도 없고, 더 이상 등을 밀 어머니가 옆에 계신 것도 아니다. 오늘 나는 아홉 살 난 딸에게 엄마의 등을 밀어보라고 했다. 내 딸은 어렸을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작은 몸에서 나오는 모든 힘을 때수건에 모아서 내 등을 민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어렸을 때 하던 말이랑 똑같다. 약간 힘이 들어 하면서... “엄마, 시원해요? ”한다. 그 말속에는 “엄마 이제 그만 닦아도 되요?”가 숨어있겠지... 어쩌면 이렇게 인생이 순환하는 것이구나... 내가 어렸을 때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었지. 나는 어머니의 등을 밀고, 내 딸이 다시 나의 등을 밀고....어머니와 내가 했던 일을 나와 내 딸이 하고, 그렇게 어머니의 인생, 나의 인생, 내 딸의 인생의 고리들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구나. 크게, 그리고 감동적으로.....홍소미 / TOOTHMAN 치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