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다행히, 대구의 사례를 제외하면 아직 치과 종사자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에 걸려서 치과 문을 닫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듣자 하니 확진 환자가 내원한 치과는 이름도 알려지고 2주간 자가격리를 당했는데 보상도 받기 어렵다지요. 이제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가 끝났으니 감염자가 모르고 치과에 내원하는 경우가 많아질 텐데, 먼저 발열을 확인한다 해도 무증상 감염자는 막을 수 없을 거라 걱정이 됩니다. 확진 환자가 다녀간 치과로 이름이 공개되면 어떻게 하죠? 환자들이 피할까봐 염려스러워요. 익명
이런 생각이 결코 기우는 아니라는 게 문제입니다. 기억하시겠지만, 2015년 메르스 때 확진 환자가 다녀갔다고 공개하고 자가격리 기간 병원을 폐쇄해 확산 방지에 이바지했던 창원의 모 병원은 경영난에 2017년 파산했지요. 확진 환자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공간으로 인식되는 마트나 헬스장 등과는 달리, 의료기관과 식당은 확진 환자가 다녀갔을 때 사람들에게 오염되었다는 인상을 주게 됩니다. 여러 군데가 동시다발적으로 알려지면 그나마 분산 효과라도 있어 다행이겠으나, 2020년 초의 상황에 비춰본다면 확진 환자가 다녀간 치과가 되는 곳은 지역에 많아야 한두 군데일 거예요. 그럴 때 나타날 주목 효과는 엄청나겠죠.
폐업하고 새로 개업하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만, 이는 최후의 방책이어야 하며 해결책으로 제시될 만한 방법은 아닙니다. 이 상황, 거꾸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확진 환자의 동선에 의료기관이 포함되어 있으면, 이를 공개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다시 던져봐야 하죠.
현 정부가 동선을 완전 공개하는 방침을 세운 것은 메르스 때문입니다. 기억하시겠지만, 당시 정부는 처음 확진 환자, 입원한 병원, 동선 등에 관해 비공개를 원칙으로 했죠. 이것이 사람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는데, 안타깝게도 당시 격리 대상자의 기준으로 삼았던 “확진 환자 2m 이내, 1시간 이상”이 너무 느슨한 기준이었어요. 두 조건 중 하나만 만족한 사람 중에서 감염자가 나왔지만, 정부 대처는 느렸고 그 와중에 서울시가 환자 동선과 병원을 공개했지요. 지금 정부가 잇고 있는 것은 이 기조이고요. 이를 투명성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투명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투명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답이며, 허용되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무조건 투명하면 좋다는 식의 사고는 무책임합니다. 한때 회자하였던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투명사회』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현대 사회에서 투명성은 신화입니다. 모든 것을 다 공개할 수 있을까요? 투명하기 위해, 내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드러내야 마땅할까요? 사생활 보호까지 가지 않아도, 그 자체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공사의 구분이 있는 것은(물론, 한국은 공사 구분이 흐린 것이 문제라는 이야기는 오랫동안 들려 왔습니다만) 투명과 불투명, 보일 것과 보이지 않아야 할 것 사이에 분리가 필요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의미하고 있지요. 하지만, 사회는 마치 투명한 것이 곧 선인 것처럼 말합니다. 누군가에겐 선이겠죠. 자신은 내보이지 않고 남들을 지켜보는 것으로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일부에겐. 나머지엔 그건 그저 부담이거나, 지배의 다른 통로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조건 없는 공개의 부당성을 살폈으니, 의료기관의 명칭을 공개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질 기초는 마련한 셈입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의료기관의 명칭을 공개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과 막는 것의 근거를 살펴봐야겠지요. 명칭 공개의 근거는 보호의 의무(duty to protect)입니다. 사회와 기관은 타인에게 위해가 될 경우, 그 위해를 막기 위해 적절한 대처를 할 의무가 있으며 여기에는 관련 정보의 공개 또한 포함됩니다. 반면, 명칭을 공개하지 않을 근거는 비밀 보장(confidentiality)이죠. 히포크라테스 선서로부터 내려오는, 의료인이 취득한 환자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의무. 환자가 의료인에게 비밀 보장의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경우, 정부 또는 규제기관이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에 비밀 보장의 의무를 지는가? 를 물어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또한 성립한다고 보는데, 여기에서 정부 또는 규제기관과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이 형성하는 관계는 공중보건의 맥락 속에서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공중보건에서 정부는 보건을 수행하는 자로서, 넓은 의미에서의 의료적 행위자입니다. 또,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은 의료를 수행하는 자이지만, 포괄적인 보건의 작동 안에서 보건 행위의 대상이 되기도 하기에 정부에게 의무를 요구할 수 있는 거지요.
단, 비밀 보장은 특정 상황에선 약해집니다. 대표적인 것이 앞서 말한 보호의 의무죠. 상대방에게 목숨을 위협하는 위해를 끼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보호의 의무가 우선하며 정보를 공개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진 환자의 정보 공개에 윤리적 지반을 제시한다면, 타인을 보호하기 위한 필요성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규제는 효과적인 범위 내에서 최소화해야 해요. 이를 공중보건 윤리의 규제 원칙(principle of restraint)이라고 부르죠.
즉, 의료인이 감염 환자를 진료한 사실이나 의료기관에 감염 환자가 내원한 사실은 이것이 공중보건과 방역에 중대한 위해를 끼칠 때만 공개 가능합니다. 주의할 것은, 이것이 메르스 때 문제가 된 것은 방역의 그물코가 넓어 많은 감염자가 빠져나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내원한 의료기관을 공개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던 것은 아닙니다. 의료기관에 내원한 자는 의무기록에 모두 기록됩니다.
물론, 국내의 경우 가족이나 간병인 등이 기록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나, 이는 문병 문화의 변화와 함께 점차 개선되고 있지요. 그렇다면, 설령 확진 환자가 의료기관에 내원했다 해도 접촉자 추적은 모두 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확진 환자 동선 공개는 혹시라도 자신이 확진 환자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있었는데 이를 모르는 사람에게 확인시키기 위한 목적입니다. 사용자 확인이 어려운 마트나 공공장소와 달리, 의료기관은 접촉자 추적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동선에 명칭을 공개할 필요가 없죠.
따라서, 효과적인 한에서 최소한의 규제를 적용하는 규제 원칙에 의거, 의료기관이 동선 공개에서 밝혀지는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입니다. 이는 단지 의료기관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며, 방문자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으며 명칭 공개가 기관이나 업체에 피해를 가져올 때 동선 공개는 그것이 낳을 손해를 고려하여 최소화해야 합니다. 당국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며, 치과계는 정책을 더 낫게 개선하기 위한 제언을 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