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치과의사 면허를 따고 그동안 미뤄왔던 의무를 해결하기 위해서 거제시 보건소로 왔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와본 거제도는 참으로 큰 도시였지만 커다란 섬의 크기에 비해 사람들이 사는 곳은 한정되어 있었고, 치과 검진 버스로 구석구석 다니다 보니 그간 TV로나 만났던 시골 생활이 눈앞에 있었습니다. 치과 검진 버스를 타고 출장을 가면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그분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엑스레이도 없는 열악한 환경이라 사실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해드릴 수 있는 진료는 굉장히 제한적입니다. 틀니 위생 교육 및 간단한 수리, 스케일링, 간단한 치과 검진 및 상담 정도의 업무만 진행하고 있습니다. 항상 출장을 나갈 때마다 진료 전에 이 열악한 상황을 설명해 드리지만, 큰 의미는 없습니다. 치과 검진 버스로 올라오시면 그때부터 할머니들의 귀여우신 부탁(?)이 시작됩니다. “아이고 선생님, 이거 하나만 뽑아주소. 내가 이거 땜에 을마나 고생하는데~!”
발치는 할 수 없다고 말씀드리고 그냥 넘어가고 싶다만, 할머니께서 저렇게 말씀하시는 건 흔한 일이 아닙니다. 시골 출장 진료를 1년간 다니며 알게 된 할머니어(語)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조금 불편하지만 괜찮다고 말씀하신다 → 제가 볼 땐 하나도 안 괜찮은 상태입니다.
2. 불편하다고 말씀하신다 → 당장 발치를 해야 합니다.
3. 이거 때문에 고생한다 → 농이 나오는 등 굉장히 안 좋은 상황입니다. 어떻게 버티시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꽤나 익숙해진 할머니어(語)는 처음에는 굉장히 충격이었습니다. 하루는 검진 도중 실수로 두 손가락 발치를 해본 적도 있습니다. mobility check을 위해 잡았더니 그대로 빠졌습니다. 그 치아가 없으면 안 되는 상황인지라 다시 살포시 잇몸에 끼워(?) 제자리에 식립(?)해드렸긴 합니다만, 신입 치과의사인 저에겐 충격이었습니다. 아픈 적도 없으시다 하셨고, 밥 드실 때 치아가 떨어지신다길래 크라운이 탈착되는 상황인 줄 알았었는데 정말로 치아가 떨어지다니.
다시 현재로 돌아와, 치아 때문에 고생하신다는 할머니께서 체어에 누워계십니다. 공보의 2년 차인 저는, 어떤 상황인지 꼼꼼히 봅니다. 역시! 상황이 굉장히 안 좋습니다. 농양이 있을 뿐만 아니라, 치아도 살릴 수 없는 상태입니다. 제가 여기서 치료해드릴 수 없음을 친절히 설명해 드린 뒤, 치과로 보내기 위한 설득이 시작됩니다. 이대로 제가 “어머니! 치과 꼭 가셔야 합니다~”하고 보내봐야 치과에 절대 안 가실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경제적인 이유, 거리상의 이유로 가지 않기에 해당 부분을 집중적으로 설득합니다. 발치는 보험진료가 된다.. 제가 미리 전화해놓을 테니깐 예약 잡아서 바로 여러 번 갈 필요 없이 한두 번만 가면 된다.. 등등 말입니다. 다음은 감정적인 설득입니다. 한번 사는 인생 고통을 참아가며 살아가는게 무슨 의미가 있냐.. 그냥 이대로 살다가 가면 되지라고 생각하시는 거 다 안다고 (라고 말씀하시면 어떻게 알았냐고 웃으십니다.) 지금 애기가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 20년인데, 어머니께서도 그 시간을 더 사셔야 하는데 제가 자식 된 마음으로 이런 모습을 뵈면 참 마음이 안좋다고.. 저의 진심들을 말해봅니다.
설득이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정도로까지 말씀드리면 꼭 간다고 약속하시고 그제서야 저는 다음 환자를 보게 됩니다. 치과의사가 아니라 상담사가 된 듯한 기분도 들지만 어쨌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은 좋습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노인정 출장이 거의 없습니다. 치료는 받고 오셨는지 참 궁금합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