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성 이사장(서울치대 졸업, 동대학원 박사)
사과나무의료재단의 이사장이자, 재단 산하 의생명연구소의 미생물 연구자이다.
구강미생물에서 시작해 장내 미생물, 발효 음식의 미생물까지 폭넓게 공부하며 몇 권의 책을 냈고 논문을 발표했다.
『미생물과의 공존』 『입속에서 시작하는 미생물이야기』 『미생물과 공존하는 나는 통생명체다』등 3권이 과학기술부 선정 우수과학도서를 수상했다.
제게 참 끊기 어려운 게 있습니다. 빵입니다. 팥과 치즈가 적당히 들어가 달달하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지는, 게다가 금방 나와 따뜻하기까지 하면 참 거부하기 어렵습니다. 점심 후에 직원들이 슬쩍 내미는 빵 접시를 거부하다가도 한번 집으면 그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 날의 오후는 거의 분명합니다. 속이 더부룩하고 가끔 복통도 있고, 저녁때까지 배가 빵빵합니다. 빵 만드는데 들어가는 밀가루와 여러 식품첨가물이 주범일 거라 의심하고 경계하면서도, 절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실험을 했습니다.(Chassaing, Koren et al. 2015) 쥐에게 빵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한 여러 식품첨가물을 먹인 후 장 조직을 조사했습니다. 그랬더니, 장조직을 덮어서 조직을 보호하는 점액층이 없어졌습니다. 조직이 더 예민하고 헐게됨은 물론입니다. 또 장 속 미생물은 다양성이 떨어지고, 그 중 일부는 허물어진 장 조직 틈을 비집고 장 조직과 그 속의 혈관을 통해 전신으로 돌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런 쥐들은 몸 전체에 염증지수가 높았고, 대사증후군에 노출되었습니다. 장누수증후군(leaky gut syndrome)이라 하기도 하고, increased permeability라고 부르는 증상입니다.
이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생물 저널을 읽다 보면,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서양인들이 자기네들 식단(Western diet)에 대한 경계감이 높아져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van de Guchte, Blotti?re et al. 2018) 고기는 많고, 야채는 적으며 가공음식이 많은 자기네들 음식이 장 미생물의 건강한 생태계(Gut ecosystem)를 뒤흔든다는 것입니다. 그런 음식들이 장 미생물의 다양성을 줄이고 박테로이데스 (Bacteroides)같은 특정 종을 늘립니다. 그리고, 그런 장 미생물의 변화는 자기네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겪고 있는 장질환이나 당뇨, 비만 등 수많은 질환의 원인일 거라 의심합니다. 그래서 고령화되어 갈수록 점점 증가하는 그런 질환들의 해법을 건강한 식습관과, 그를 통한 장 미생물 생태계의 복원에서 찾아가려 하고 있어 보입니다.
저는 위의 쥐 실험이나, 서양인들의 우려감을 충분히 공감합니다. 우리의 한식,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 발효음식을 서양인들이 한국인들을 장수하게 만드는 수퍼푸드(Superfood) 라 칭송할 때 뿌듯합니다. 저 스스로도 김치를 포함한 야채나 과일을 챙겨먹으려 하루 먹는 것중 그 양을 의식한지 오래입니다. 처음엔 그게 입맛에 맞고 소화가 잘 되어서 그러다가 미생물 공부를 하면서는 그런 음식이야 말로 식이섬유와 프로바이오틱스가 함께 있는 신바이오틱스(Synbiotics) 음식이라 귀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음식들이야 말로 내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도우미들일테니까요.
장내 세균을 위시해 내 몸에 사는 미생물들을 수치로 표현한 자료가 있습니다. 100조 정도로 추정되는 내 몸에 사는 미생물이 무게로 치면 평균 2kg 정도라 하니, 여러 분들의 몸무게에서 2 kg 은 빼도 됩니다. 이들을 일렬로 세우면 지구를 두 바퀴 반은 돕니다. 유전자의 수를 합하면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자보다 100배 정도 많습니다. 내 몸에서 생기는 질병의 90% 정도는 직간접적으로 미생물과 연결됩니다. 이런 내 몸의 느낌과 여러 연구들을 연결시켜 보면, 최종적으로 닿은 지점이, 나라는 존재는 호모사피엔스로서의 거대 생명체와 그 호모사피엔스를 서식처 삼아 살아가는 수많은 미생물들의 통합체라는 인식에 이르게 됩니다. 나는 그런 미생물과 호모사피엔스가 오랫동안 공진화해오면서 만들어낸 산물이고, 또 지금도 공존을 통해 생명을 이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런 공존과 공생을 포착한 개념이 바로 통생명체(Holobiont)입니다. 코스모스로 유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첫번째 아내이기도 했고 그 자신이 굉장히 도발적인 과학자이기도 한 린마굴리스(Lynn Magulis)가 1991년에 Symbiosis as a Source of Evolutionary Innovation(공생, 진화를 이끌어온 혁신의 원천)이란 책에서 처음으로 제안한 개념이라고 합니다(Wikipedia). 이 책을 직접 읽어보지는 못했고, 1998년에 쓴 공생자 행성(Symbiotic planet) 이란 책을 매우 인상깊게 보았습니다. 이 지구는 미생물로부터 시작해 온 생명체가 서로 공생(symbiosis)을 통해 진화해 왔고 지금도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생명에 대한 근원적 통찰과 가이아(Gaia) 이론 같은 거시적 시선까지 어우러진 느낌이 좋았습니다.
통생명체라는 통시적 시선(holistic view)은 실은, 21세기 생명과학이 향하는 방향과는 많이 다릅니다. 어찌 보면 정 반대일 듯도 싶습니다. 지금의 생명과학과 그를 기반으로 한 의료는 쪼개기 바쁩니다. 인간은 간, 심장, 장, 구강 등 각 기관으로 나뉘어져 전문과의 진료영역이 됩니다. 실험실은 그 기관이 더욱 쪼개진 세포를 대상으로 합니다. 더욱이 요새는 세포를 더욱 쪼개어 세포 속 분자들이 어떤 경로(pathway)를 통해 생명활동이 이뤄지고 있는지가 수집됩니다. 제약회사들은 그런 근거를 바탕으로 특정생명활동을 차단(inhibition)하는 분자를 모아 약으로 시장에 내놓습니다.
물론, 이런 분자생물학적 과학과 의학은 이 우주와 세계를 보다 정교하게 설명해 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고 또 필요한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면 그 정교함의 의미는 퇴색되고, 심지어 위험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항암제가 암세포의 특정경로를 차단하면 세포는 또다른 경로를 스스로 찾아갑니다. 이것은 생명의 본성상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면 연구자들은 암세포가 찾아가는 또다른 경로를 차단하는 약을 찾고, 세포는 또 다른 길을 찾으며 하는 쳇바퀴식 연구와 약물개발이 반복됩니다. 이런 항암제시장과 의료에 많은 환자들이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 상당부분 진실일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그런 정교함과 전문화와 함께 통시적 시선에 대한 의식이 또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시적 정교함과 통시적 시선이 만나는 그 어딘가의 길이 우주와 세계의 모습을 더 잘 다가가고 묘사하는 길이 아닐까요?
이런 얘기는 당연히 저에게도 향하는 말입니다. 잇몸이 아파온 온 환자들의 구강상태를 전문적인 진료와 기술로 문제를 해결해 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좀 더 길고 넓은 시선으로 보아주는 것. 그래서, 항생제 처방이라는 1분이면 끝나는 해결책만이 아니라, 좀 더 구강미생물 부담을 낮추는 관리를 통해 환자 스스로 좀 더 건강한 통생명체로서의 삶을 유지하도록 돕는 것이 저의 할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구강, 그중에서도 치주포켓은 내 몸에서 가장 미생물이 밀집된 공간으로 적절한 일상적 관리가 반드시 필요한 곳이니까요. 시간과 체력과 병원운영이라는 핑곗거리가 의식되기도 합니다만….
요컨대, 통생명체란 말은 그 자체로 21세기 주류 과학인 환원주의적 분자생물학에 인간은, 생명은 기계처럼 나눠질 수 없음을 외치는 듯 합니다. 최소한 저에겐, 통생명체란 말이 그간 살아온 일상과 진료에서 크게 비어 있었던 면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하나의 틀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Bordenstein, S. R. and K. R. Theis (2015). "Host biology in light of the microbiome: ten principles of holobionts and hologenomes." PLoS Biology 13(8): e1002226.
Chassaing, B., et al. (2015). "Dietary emulsifiers impact the mouse gut microbiota promoting colitis and metabolic syndrome." Nature 519(7541): 92-96
van de Guchte, M., et al. (2018). "Humans as holobionts: implications for prevention and therapy." Microbiome 6(1): 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