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箱에게
箱의 본관은 강릉(江陵),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이다.
箱의 의 생가(1912~1933)가 '이상의 집(통인동 154-10)’으로 재개관되었다.
箱은 본인을 천재라고 생각했고,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학과를 수석 졸업했다.
箱은 일제강점기 시인, 소설가, 수필가, 건축가였다.
箱의 아버지는 이발사였고, 가난으로 백부(伯父)에게 양자(養子)로 입양(入養)되어 한문 교육을 받았다.
箱의 필명은 4살 위 친구이며 척추장애 화가인 구본웅이 선물로 준 오얏나무(李)로 만들어진 화구상자(箱, 상자 상)를 받고 지었다는 설... 등이 있다.
箱은 일본어 시들이 수록된 ‘이상(異狀)한 가역반응’이 첫 시집(1931)이다.
箱은 백부가 죽자(1931) 친가로 돌아오지만 불과 보름을 견디지 못했다.
箱은 1933년 폐결핵 진단을 받고 건축 기사일을 그만 두었다.
箱이 지은 건물이나 설계도면은 남아 있지 않다.
箱은 하루에 50개비 피는 골초였다.
箱은 황해도 백천 온천(북한 천연기념물)에서 요양 중 17살부터 작부생활을 했고 딸 가진 20살 기생 금홍을 만난다.
箱은 돌아와 백부의 유산으로 종로1가에 다방 ‘제비(燕)'를 개업, 금홍을 마담에 앉힌 후 동거했고, 금홍은 외도와 가출 그리고 다방은 폐업했다.
箱의 '이런시'와 소설 ‘날개’에 금홍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箱은 구인회에 가입(1934)하여 명사들과 교류, 카페 ‘쓰루(鶴, 학, 1935)’, 다방 ‘69’, '무기', '맥(麥)' 등을 개업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箱은 평상시 거울을 갖고 다녔고 봉두난발(蓬頭亂髮), 짙은 갈색 나비넥타이에 4계절 흰 구두를 신었다.
箱은 구본웅의 배다른 누이동생 변동림(1916~2004,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학과 중퇴, 수필가, 서양화가, 1964년 도미 뉴욕에서 사망)과 결혼(1936), 그녀는 가난으로 여급으로도 일했다.
箱은 결혼 4달 후 혼자 동경으로 떠났으나 폐결핵이 악화, 싸구려 방에서 홀로 은거, 사상불온혐의로 체포, 구금, 병보석으로 한 달 만에 석방, 동경제국대학 부속 병원에서 사망했다.
箱의 소식에 도쿄로 온 아내가 그의 유해를 화장하여 미아리 공동묘지에 묻었으나, 돌보는 이가 없어 유실되었다.
箱의 아내는 이후 김향안(金鄕岸)으로 가명(假名)하여 유부남 서양화가 김환기(1913~1974)와 결혼(1944), 추후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최초 사립 미술관)을 설립했다.
箱은 전문용어와 외국어, 숫자, 기호의 남발, 이상한 문장, 언어체계를 무시, 아방가르드 문학을 추구했다.
箱의 작품에서 33(三十三: 다리 세 개 ♂에 다리 세 개)과 23(二十三: 다리 두 개♀에 다리 세 개)은 성교, 18은 욕, 69는 성적 표현을 말한다.
箱의 오감도(烏瞰圖, 1934)는 스타가 된 작품, 당시 독자들의 반발은 컸고, 문학계에선 이슈화되었다.
箱의 오감도를 대학 도서관에서 복사해 읽었고 보관했었다.
箱의 작품에선 일본어를 모국어처럼 사용, 일본어투가 많이 섞여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箱의 평전은 고은, 소설은 김연수의 '꾿빠이, 이상'이 있다.
箱이 설계한 것으로 알았는데... 옛 서울역사의 설계자는 쓰카모토 야스시(塚本 靖)였다.
箱은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빈곤, 황음(荒淫, 함부로 음탕한 짓을 함)과 폐결핵으로 20대 청춘에 객사(客死)한 박제된 천재였다.
箱의 마지막 말은 “멜론이 먹고 싶다”였다.
2. 오감도(烏瞰圖) Summary
제1호 13인의 아해가 무섭다고 한다.
제2호 나는 나의 아버지의 조상으로 살아야 한다.
제3호 싸움하는 사람은 즉 싸움하지 아니하던 사람이다.
제4호 환자에 대한 진단으로 0과 1을 사용했다.
제5호 臟腑(장부)라는 것은 浸水(침수)된 畜舍(축사)와 區別(구별)될 수 있는가?
제6호 鸚鵡(앵무)는 포유류에 속하느니라.
제7호 나는 塔配(탑배)하는 독사와 같이 地平(지평)에 植樹(식수)되어 다시는 起動(기동)할 수 없었더라.
제8호 第一部 試驗 手術臺 一.
제9호 나는 내 소화기관에 묵직한 총신을 느끼고 내 다문 입에 매끈매끈한 총구를 느낀다.
제10호 찢어진 벽지에 죽어가는 나비를 본다.
제11호 그 사기컵은 내 骸骨과 흡사하다.
제12호 때 묻은 빨래조각이 한 뭉텅이 空中으로 날라 떨어진다.
제13호 내 팔이면 도칼을 든 채로 끊어져 떨어졌다.
제14호 古城 앞에 풀밭이 있고 풀밭위에 나는 帽子를 벗어 놓았다.
제15호 거울속의 나는 불사조에 가깝다.
3. 箱에게 이상(理想)은?
箱은 주로 여급(Waitress)들과 사귀어 책임으로부터 자유를 원했는지 모른다.
箱의 금홍, 권순희 모두 여급(女給)이었고 짧은 위안만 찾았을 뿐이다.
箱은 자기 애인의 외도를 방관했는데 소유하고 싶지 않아서인가?
箱의 금홍이 도망간 것도 폐병에 의한 성기능 문제 그리고 가난 때문이었다.
箱을 다방 제비의 골방에 가두곤 금홍은 버젓이 매춘을 했다.
箱은 금홍의 가출 후 카페 쓰루의 여급 권순희(권영희로 개명, 1956년 평양에서 구보 박태원(1906~1986, 영화감독 봉준호의 외조부)과 재혼, 그의 유작 ‘갑오농민전쟁’의 집필을 도왔다.)를 만났다가 매일신보 기자 친구 정인택에게 양보, 둘의 결혼식 사회까지 맡는다.
箱은 폐병과 가난 그리고 도피성향의 성격대로 아내를 남겨둔 채 동경으로 떠났고 돌아오지 못함을 예상했다.
箱은 만26년 7개월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箱은 20여일 전에 숨진 29살 문우(文友) 김유정과 합동영결식을 치렀다.
箱의 날개는 펴지 못했지만 4개월 같이 산 아내가 훗날 ‘천재는 또 미완성이다’라 했다.
箱의 삶처럼 시들도 난해하다.
송선헌 원장
-치과의사, 의학박사, 시인
-대전 미소가있는치과 대표원장
-충남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외래교수
-UCLA 치과대학 교정과 Preceptor and Research associate
-대한치과교정학회 인정의
-대한치과교정학회 대전·충남지부 감사
-2013년 모범 납세자 기획재정부장관상
-2019년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 장려상과 입상 수상
-저서 : 임상 치과교정학 Vol. 1(웰 출판사)
-전)대전광역시 체조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