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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사랑 치사랑 - 다시 I. O. U. 3

임철중 칼럼

가난한 이웃을 보고, “돈을 찍어서 나눠주면 될 것 아닌가?”하고 의아해하던 초딩 시절이 있었다. 사자 무리는 힘센 수컷이 지배한다. 사냥은 암사자들에게 떠맡기고 맛있는 부위는 먼저 차지하며 짝짓기도 독점한다. 눈에 거슬리면 폭력으로 다스린다. 한참 힘이 오른 젊은 수놈이 동료를 부추긴다. “옆에서 지켜보니 별 것도 아닌데, 내가 한 번 도전할 테니 좀 도와줘.” 대략은 실컷 얻어맞고 꼬리를 내린다.  쉽게 풀어본 ‘세대 갈등’이다. 대장은 새끼를 물어 죽이려는 외부의 적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하며, 발권력(發券力)을 남발하면 화폐는 신뢰를 잃어 휴지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비로소 어른이 된다. 대장이 늙고 이가 빠지면 무리에서 쫓겨나고, 치열한 경쟁을 이겨낸 젊은 사자가 그 지위를 승계한다.

 

효(孝)라는 개념은 사회의 발전·경제적인 여유·수명 연장 등, 인간만이 성취한 ‘문화’와 분리할 수 없다. 성숙기간이 긴 인간이 낳고 키워준 1세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이다. “자식은 내리사랑, 손자는 치사랑”이라고 한다. 부모에게는 맏이보다 뒤늦게 얻은 막내가 더 애잔한데, 3세를 보는 할아버지 눈에는 맏손자가 더 귀하고 든든하다는 얘기다. 먼저 아들의 경우다. 첫째, 어른을 만들려는 고강도훈련에서 1세와 맏이 간에 갈등이 싹틀 수 있다. 둘째, 맏이가 독립할 만큼 성장한 사실을 가장 늦게 깨닫는 사람이 아비다. 셋째, 인간 수명이 늘어나 아비와 맏이의 현역기간이 겹치면서, ‘경쟁  의식’을 낳을 수 있다. 재위 52년의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였고, 아비를 시해한 오이디푸스 그리스신화도 있다. 손자는 다르다. 가장의 지위를 넘겨준 아비와 현역 가장으로 바쁜 아들은, 따뜻한 한마디 나눌 겨를이 없어, 외로워진 할아버지는 자신의 노후를 손자에게 기대한다. 최소한 내가 세상 뜬 뒤에도 제사상을 챙겨줄 귀한 녀석이 아닌가? 영조는 아들을 건너 뛰어 손자인 정조에게 왕위를 물려주었고, 이와 유사한 상속 사례가 적지 않다.

 

세상이 변했다. 항상 가르치던 1세가, 2세에게 IT를 배워야 물건을 사고 표를 예약하니, 1세의 카리스마는 어디로 갔는가. 분배논리 과잉으로 근로와 소득 간에 연결고리가 사라져, 놀고먹으려는 풍조가 만연한다. 젊은이는 1세가 피땀으로 이루고 지킨 산업시설과 사회 인프라를 공공재처럼 누리면서도, 고맙기는커녕 기득권·과거사·친일로 매도한다. 돈을 찍어(增發) 거저 나눠주는 양적완화(QE)는 인플레를 일으켜, 아끼고 저축한 노후자금이 휴지로 증발(蒸發)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젊은 세대는 나름대로, 2세는 물론 3-4세까지 ‘공존’ 하게 될 초 고령화시대를 앞두고, 강제로 떠맡게 될 노령인구에 대한 과중한 부양의무가 불안하고 불만이다.


사랑과 존경으로 이어 온 세상이 변하여 노소가 모두 불만이니, 새 세상에 적응할 새 논리가 절실하다. 국민연금을 보자. 연금이나 통장에 있는 돈도, 당장 현실에 필요한 재화(財貨)나 서비스(요양 간병 등)와 ‘교환’이 되어야 가처분 재산이요, 재화를 만들고 용역을 ‘제공’하는 주체는 결국 젊은이들이다. 내가 모은 재산이니 내 마음대로 쓴다는 노인의 생각이나, 젊은이의 놀고먹자는 풍조는, 교환과 제공이라는 공존의 대전제를 파괴한다. 대가족제도의 상징인 ‘내리사랑 치사랑’은, 외자식·무자녀 시대를 맞아 빛을 잃었다. 내리사랑은 선대의 후대에 대한 사랑, 치사랑은 젊은이의 어른에 대한 존중, 즉 폭넓은 사회적 개념으로 업그레이드하자.


고용과 분배·의료와 요양 등 사회경영과 복지문제는 공동대처 외에 답이 없다.


중산층 삼남매가 치매환자 한 분을 제대로 부양하지 못한다. 우리 모두가 새로운 공공 논리와 윤리를 정립해야 할 과도기에,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혈연과 지연과 학연을 뛰어넘는 ‘인생 선후배 간의 화합’은, 이념과 지역감정의 벽을 허물어줄 것이다. 분열과 반목의 고리를 끊고 대화합으로 가는 길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