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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이 주는 의미

수필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로부터 이름 때문에, 아니면 생김새 때문이라도 별명을 부르곤 했다. 별명은 내가 좋든 싫든 간에 꼬리표를 단것처럼 따라다니며 이름보다 기억하기 좋은 단어로 머리에 남아 있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는 그 사람의 인격을 생각하여 함부로 별명을 면전에 두고 부를 수는 없었다. 달갑지 않은 보복이 있을 수 있고 아니면 괜한 시비거리를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별명과 호칭은 한 사람의 인품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때 상대방의 직업이나 존재감을 잘 모를, 즉 중년 남자들은 사회에서 편의상 사장님으로 통했다. 실제로 회사나 자영업 경영 유무와 상관없이, 상대방을 품격 있고 최고의 위치까지 올라 있는 사장님으로 격상해서 호칭을 불러주는데 누가 화를 낼 것이며 기분 나빠하는 사람이 있었을까? 백화점에 가도 그만한 대접에 잠시 기분이 우쭐하여 마치 그 자리에 내가 있는 양 착각한 나머지, 사고 싶지 않은 물건도 종업원의 호사로 구입하기도 했던 모습을 기억한다.


요즘은 연배가 있으신 분들 중 통상적인 호칭이 남자는 선생님, 여자는 사모님이 대중화된 것 같다. 직업의 사회적인 위치에 따라 재직하고 있는 사람이 남녀노소와 상관없이 대중적으로 친근하게 자리 잡고 있는 단어가 이제 선생님이 되었고, 꼭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니더라도 선생님은 존귀한 단어와 함께 격상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식상한 사장님보다는 대표님이 그리고 상대에 대한 비하보다는 인격을 존중하고 배려차원에서인지는 모르나 아저씨, 아줌마는 좋고 친근한 호칭임에도 이제 퇴색되어가거나 심지어는 비하적인 호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나는 어떤 직업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직업도 귀천이 점차 없어지기 때문에 나름대로 직업에 대한 호칭도 점차 변화되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이런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대통령 각하’라는 극존칭이 ‘대통령님’으로 변화가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권위적인 모습이 점차 사라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었으나 존경하는 모습은 잃어가고 있는 현실을 본다. 치과의사가 된 후 진료실에서 환자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 여러 가지가 있었다. 20년 이상 진료를 하면서 들었던 호칭은 다음과 같다.


‘의사 선생님, 원장 선생님, 과장님, 원장님, 의사 양반, 선생님, 치과 선생, 치과 아저씨, 치과 주인’ 등 다양하게 부르더니 요즘은 원장님과 선생님이 주로 통용되는 것 같고, 어린 학생들의 교육부재인지는 모르나 치과 아저씨의 호칭이 더러 오르내리곤 한다. 의료인이 존경받았던 세월을 사셨던 연로하신 환자분들은 오히려 젊은 의사에게도 존경과 존칭의 호칭은 계속되는 반면 젊은 층의 환자들은 면전 앞에서 마땅한 호칭 없이 치료해달라는 응시를 암묵적으로 보내기도 한다. 의사를 존경하는 마음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손님은 왕인데 치료 받으러 왔으니 알아서 모셔야 하는 서비스 개념으로 대해 달라는 제스처인지 구분하기가 모호한 점을 느낀다.


이와는 달리 간호사는 환자와 자주 접촉하여 스킨쉽을 느끼는 위치에 있어서인지, 여권신장으로 여성의 지위가 격상한 결과인지는 모르나 변화는 급속하게 달라지고 있다. 60, 70년대 간호부, 간호원에서 선생님의 위치인 간호사로 바뀐 것은 제법 오래되었다. 이에 편승하여 치위생사, 간호조무사들의 호칭도 자연스럽게 선생님의 대열에 합류하여 이제는 치위생사 서로 간에 선생님의 호칭을 쓰게 되었다. 아직까지 간호사의 사는 스승 師이고 치위생사의 사는 선비 士이지만 이것을 굳이 구분하려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변호사님하고 부르면 5명 중 1명이 뒤돌아본다고 한다. 변호사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얘기이지만 이제 진료실에서 환자가 “선생님!” 하면 누구를 부르는지 뒤돌아보게 된다. 미래에 선생님의 존귀한 호칭이 식상할 때가 오면 선생님보다 더 좋은 호칭이 나올까?


나는 치과의사의 권위적인 모습으로 호칭을 원하지는 않지만 존경하는 모습이 점차 잃어가면서 치과 아저씨로 호칭이 바뀌지 않도록 우리의 자존심과 명예를 위해 탈법, 불법, 환자유인행위, 비도덕적인 모습, 신용불량자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치과를 운영하는 사업자가 아닌 치과를 경영하고 존경받는 의료인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치과계의 귀하신 몸은 치위생사가, 천한 몸은 치과의사가 되어가는 현실은 아닌가?

 

이승룡 원장

 

서울 뿌리샘치과의원
<한맥문학> 수필 등단
대한치과의사문인회 회장 
국제펜 한국본부 회원
전)치의신보 집필위원
<2012 치의신보 올해의 수필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