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예방치과가 임상과목으로 개설되어 있는, 즉 예방치과 수련병원으로 인정되어 있는 병원은 2021년 현재 세 곳에 불과하다. 현재에는 상급종합병원 전체에서 필자가 근무하는 예방치과가 유일하다고 하고, 전국에 치과대학 또는 치의학전문대학원으로 인가되어 있는 학교가 11개인데 치과대학 또는 치의학전문대학원은 모두 부속치과병원을 갖고 있고, 각 치과병원별로 8개에서 10개의 전문과목을 표방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예방치과”를 표방하고 있는 치과부속병원은 강원도에 한 곳, 충청도에 한 곳 뿐이다. 나머지 9개 치과대학과 치의학전문대학원은 비용, 효과 분석을 해서인지, 아니면 표현하기 어려운 내부 사정이 있는지 부속치과병원의 문턱을 넘지 않고 있다.
예상은 되겠지만, 필자가 속한 예방치과는 매출액이 낮을 수밖에 없다. 의료원 전체에서 최하위라고 해도 이의가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의료원에서 ‘치과’의 매출이 낮다고 질책할 때마다, 병원 재무팀과 치과교수들은 ‘예방치과’ 같은 과가 수익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분석하여 답변했고, 5개 과의 구성이 되어야 수련병원 지정이 가능하다는 근거를 들어, 어쩔 수 없이 현재로서는 예방치과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의료원 재무관계자로부터 한 단계 건너 전해 듣고, 예방치과 교수 1인이 치과 전체의 수익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꼈다고 답변해 주었다. 아군이 별로 없는 적지(?)에서 살아남으려면, ‘목소리를 크게 낼 때’와 ‘묵묵히 도와줄 때’를 구분할 수 있으면 된다는 것이 필자가 터득한 ‘적과의 동침’ 원리이다.
가끔 듣는 이야기이지만, 대답하기 어려운 것인지 싫은 것인지 모를 질문이, 왜 그 병원에서는 ‘예방치과’를 그냥 두고 있는지, 필자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는지 하는 질문 등이다. 그 당시에는 대답하기 싫어 웃음으로 피해갔지만, 아마도 그 대답은 내 목소리를 내야 할 때는 내 주장을 내세우고, ‘적(?)’이라고 여겼던 이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적절하게 도움을 준 게 다라고밖에는 할 말이 없다. 耳順의 나이를 지난 필자에게 ‘적(?)과의 동침’을 할 줄 아는 능력이 생긴 것 같다는 것이다.
사는 동안, 요즘처럼 우리나라의 ‘편 가르기’가 오랫동안 문제가 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정치의 정당으로 치면, 필자는 국회의원 1명이 당 대표부터 당원까지 다 해 먹는 ‘홀로당’일 것이다. 의료원의 의사들을 거대 여당으로 보고, 치과교수들을 제 1야당으로 생각한다면, 필자의 존재는 미미할지 모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의료원의 관계자들은 필자를 ‘무언가 있어 보이는 예방치과 교수’로 인식을 한다는 점이다. 아마도 나이 많은, 백발이 흑발의 수를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넘어서는 치과의 임상교수를 배려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의료원의 안과 밖에서 필자가 하고 싶은 일이 본인의 능력의 부족으로 차단되거나 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아, 필자의 ‘거대 여당과의 동침’은 일단은 성공한 듯하다.
제1 야당 격인 필자가 속해 있는 ‘치과’ 교수들과 잘 지내는 일이 숙제로 남는데, 필자를 제외한 모든 과(4개 과) 교수들과 잘 지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듯하다. 과거로부터 우리는 이 경우의 어려움을 풀어내는 방법으로 ‘학연(學緣)’과 ‘지연(地緣)’을 동원하곤 했다. 그런데, 필자가 터득한 ‘적과의 동침 원리’는 오히려 ‘학연’과 ‘지연’이 없는, 누가 보아도 ‘적’으로 보이는 교수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결과적으로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앞서의 의료원의 대다수 의과대학 교수들은 필자와 다른 대학을 나왔고, ‘지연’도 주장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필자가 택했던 방법을 지금은 그대로 ‘치과’에도 적용을 한다. 이 방법의 장점은, 믿었던 선배, 동료, 후배에게 당하지(?) 않을 수 있고, 설사 ‘적’이라고 표현된, 학연, 지연, 혈연 관계가 없는 이들이 필자에게 ‘핵무기(?) 같은 것’을 겨누더라도 손해볼 일은 없고, 이를 당연히 예상된 일로 간주하면 되고, 이는 결국 둘 다 손해보는 장사로 끝나므로, ‘적’의 입장에서 쉽게 선택하기는 어려운 일이 된다. 우리는 상식적으로는 ‘적과의 동침’이라는 말 자체에서, 그 상태로 누우면 과연 잠이 오겠는지, 아침에 사지 멀쩡하게 일어날 수 있는지를 걱정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지금의 정치 상황에서 알 수 있듯이, ‘학연’과 ‘지연’, 심지어 ‘혈연’까지도 무시하고, ‘객관적인 냉철한 뇌’로 판단하면 ‘적과의 동침’도 의외로 편안한 꿈나라를 만날 수 있고, 아침이 상쾌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궁극적으로 처음에 ‘적’이라고 여겼던 분들을 ‘진정한 내 편’으로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개원했을 당시의 기억으로 끝을 맺는다. 1990년대 개원 초기 몇 년간은 예비군 동원훈련이라는 것을 며칠씩 다녀와야 했었다. 아침잠이 많았던 필자는 허둥지둥 군복을 챙겨 입고 문 앞을 나서면 아파트 입구에 K형이 차 운전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교 선후배들과 항상 뭉쳐 다녔던 필자는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지나가는 말로 ‘아침에 함께 가요.’라는 말을 들었는데, 학연, 지연, 혈연 관계도 없는 분이, 진짜로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후로도 치과의사들 간의 모임이 있을 때에는 늘 K형과 동행하면서, 남들 보기에도 다정한 치과계의 선후배로 지낸 것 같다. K형은 믿고 따를 수 있는 좋은 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