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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의 위기로부터

스펙트럼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제가 요즘 입에 달고 사는 말입니다. 전공의 2년차의 일상은 매우 바쁘게 돌아갑니다. 일과 중에는 진료실을 지키며 원내생을 지도하는 동시에 리모델링을 앞둔 진료실 환경개선에 분주하고, 야간에는 각종 연구과제 실무 진행과 임상시험 준비, 또 대학원 수업까지 빼곡한 일정이 이어집니다. 칼퇴근은 고사하고 집에서 여유롭게 저녁을 차려 먹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서울역에서 노숙인 상담원으로 활동하며 만나온 이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졌습니다. 때로 누군가의 죽거나 다친 소식이 들려오더라도 코로나 시국의 문제로 조문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내심 바쁜 일상을 떠올리며 안도하곤 합니다. 삶의 방식이 점차 ‘나 중심’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느낍니다.

 

분주한 마음 그대로 집에 돌아와 업무를 이어갑니다.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하는 루틴입니다. 수많은 그룹 채팅방의 메시지를 읽고 최소한 이모티콘으로, 필요하다면 장문으로 답장을 보내야 합니다. 그렇게 알림창을 아래로 넘기다가 어느 개인톡에 시선이 꽂힙니다.
 
“형 저 검정고시 붙었어요.”
 
얼른 메시지를 눌러 다시 한번 들여다봅니다. 제가 아는 그 녀석, 10년이 넘도록 고졸 검정고시를 쳐왔던 녀석이 맞습니다.

 

10년도 더 전에 처음 만난 녀석은 어려운 유년기로부터 절망적인 성인기에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집을 나가고, 일용직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녀석을 시설에 맡겨 오래도록 그곳에서 생활하던 녀석이 어느덧 퇴거할 나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성, 학습 및 근로 능력 모두 평균을 한참 밑도는 상황에도 퇴거를 미룰 만한 법적인 근거는 없었고, 결국 퇴거한 이후에는 숙식이 제공되는 직업학교, 군 복무와 같은 궁여지책으로 근근이 버텨왔습니다.

 

군 제대 이후 지자체의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거쳐 간 직장의 수가 세지 못할 정도였는데, 어느 가을에는 별 이유도 없이 일을 그만두길래 물어보니 건강보험료가 너무 많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수백만 원에 이르는 보험료를 감당할 수 없으니 그냥 수급자로 살겠다는 말에 내용을 상세히 알아보니, 그해 여름에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가 바로 원인이었습니다. 구급차에 실려 이 병원 저 병원에서 퇴짜를 맞는 동안 그 형편없는 시스템의 이용료를 긴급복지지원금(일종의 재난지원금)으로 지급하기 위해 말소되었던 주민등록이 되살아났고, 동시에 건강보험 미납료가 서류상의 피부양자인 녀석에게 부과된 것입니다.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노숙인 상담소의 실무자들과 골똘한 끝에 내린 결론은, 부자간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단절하는 것이었습니다. 글자를 잘 모르는 녀석을 언어중추가 마비된 그 아버지 앞에 데려간 저는 무척이나 담담하게 ‘가족관계단절사유서’를 써 내려갔고,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르는 그 아버지의 손가락을 빌려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렇게 건강보험료 사태가 일단락된 이후에도 녀석은 한참을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수시로 전화를 걸어 햄버거 사 먹을 모바일 쿠폰 좀 보내 달라는 녀석에게 욕을 바가지로 쏟아내곤 했지만, 분주한 일상에 그마저도 힘이 들어 전화를 받지 않거나 짧은 메시지로 답하며 외면해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렇게 잔소리를 할 때는 기미도 보이지 않던 합격 소식을 떡하니 들고 나타난 것입니다.

 

격양된 제 목소리에 너무나도 차분하게, 마치 당연히 붙어야 할 시험에 붙은 것처럼 답하는 녀석이 얄밉지가 않았습니다. 80점을 넘긴 과학 덕분에 합격은 했어도 국어는 여전히 20점이라는 사실이 하나도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간호조무사를 목표로 하겠다는 녀석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어느 똑같은 하루의 한 가지 사건이, 제게는 커다란 선물이었습니다. 거의 소진되었던 제 안의 열기를 다시 태우고 앞으로의 궤적을 바로 세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추진력을 허투루 소진하지 않도록, 그간의 궤적과 더불어 주변을 수시로 살피기로 다짐해 봅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