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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화만사성

시론

얼마 전 아이들이 다닌 유치원 원장님이 개원 40주년을 며칠 앞두고 지병으로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지금은 여섯 살 난 셋째가 다니고 있는데, 초등학교 5학년인 둘째가 이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한 달에 한 두 번씩은 꼭 유치원에 갔던 기억이 난다. 부모 대상으로 아동심리나 양육방법 및 아이와 놀아주기 등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많이 하였기 때문이다. 감정코치, 행동지도, 자존감, 부모의 리더십, 뇌의 발달 등 그때 교육 받았던 자료들과 자녀 교육서들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때로는 외부에서 유명 연자를 섭외하여 자녀 교육에 대한 특강도 열어주었다. 아이들에게 뭘 가르치려하기 전에 먼저 좋은 부모가 되라는 내용들이 많았다. 덕분에 나는 아이들과 정서적으로 별 탈 없이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는 유치원에서 감정코치로 유명한 최성애 박사를 초청하여 특강을 하였다. 아내가 강의를 듣고 와서 책을 하나 건네주었다. 아이들의 정서와 애착에 관한 내용이었다. 애착(attachment)이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깊고 지속적인 유대감’이라고 한다.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신체접촉이나 애정표현을 자주 해주면 아이들은 장성한 후에도 부모에게 깊은 유대감과 애정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부모와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하면 아이가 자존감이 높고, 다양한 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매사에 긍정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애착은 식물이나 파충류에게는 없는 포유류에게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한 학자는 진화적 관점에서 설명하기를 자립할 때까지 다른 동물들에 비해 기간이 긴 영장류의 아기들은 위험에 처했을 때 양육자에게 의존해야 생존이 가능하기에 애착은 오랜 진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필연적인 생존본능이라고 보았다.
 
애착손상이 일어나면 뇌의 구조와 기능에 이상을 준다고 한다. 애착손상은 사회적 관계, 정서적 욕구의 알아차림과 표현 등의 기능을 담당하는 뇌 영역의 발달을 지연시키거나 축소시킬 수 있다. 그 결과 훗날 감정 조절, 충동 조절, 주의력, 상황 파악 능력, 공감력, 대인관계능력 등에 심각한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극단적인 경우가 사이코패스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들 중에서 청소년 우울증과 자살률이 최고수준이고, 아동 청소년들의 행복도는 최하위권이다. 최근 타임지 발표에 의하면 우울증으로 인한 미국의 연간 경제 손실액이 25조원을 넘는다고 한다. 즉 미국에서는 감기약보다 항우울증 약이 더 많이 팔리는 실정이다. 미국 임상심리학자들은 성인 정신질환의 가장 큰 원인이 어린 시절의 애착 트라우마로 인한 정서 조절의 어려움이며, 그 대표적인 증상이 우울증과 불안증이라고 지적하였다.


미국의 유명한 뇌과학자 존 메디나 박사는 영유아의 뇌 발달에 관한 책을 쓰고 부모 교육 특강을 다니면서 강연 후 미국의 아빠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어떻게 키워야 우리 아이가 나중에 하버드에 갈 수 있을까요?” 박사의 대답은 “집에 가서 아내에게 잘해주세요.” 엉뚱한 답변이다. 이 말의 뜻은 부부 사이가 좋아야 그 밑에서 자라는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서 뇌가 건강하게 발달하고, 그래야 공부도 잘하고 또래 관계도 원만해서 좋은 대학에 갈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미국 아동 청소년들의 전반적인 학력 수준이 아시아의 학생들보다 낮은 것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정부가 연구해 보니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알 수 있는 가장 큰 예측 인자는 ‘부모가 얼마나 안정적이고 화목하게 잘 지내는가’였다. 그리고 부부가 서로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이뤄야 자녀가 부모로부터 받은 애정과 지지를 통합하면서 성장할 수 있고, 훗날 기능을 제대로 하는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확률이 높다고 한다.

 

요약하면 한마디로 ‘가화만사성’이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어린이들의 학습서 명심보감에 나오는 이 말이 현대 서양에서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아이들을 정서적 금수저로 기르는 평범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괜찮은 부모’가 되는 것이다. 내가 자랄 때 부족했던 부분들을 아이들에게 채워주기 위해서 많은 부모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한다. 하지만 그 속에 원칙과 지혜가 있어야 하고 오랜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 분에게서 많이 배웠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지혜로운 미소가 아름다웠던 S 유치원 원장님. 감사하고 부디 하늘나라에서 평안하시길 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