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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것을 만나야 하는 이유

코로나 극복을 위한 힐링 경영캠프

치협 경영정책위원회가 치의신보·치의신보TV와 함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의 위기 및 역경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하자는 취지로 우리 사회 저명인사들의 칼럼 시리즈를 격주로 게재합니다. 치과경영 및 치과의료인의 삶에 새로운 자극, 위로와 활력소가 되길 바랍니다.<편집자주>

 

 

 

 

 

 

 

 

 

 

 

구범준 PD

세상을 바꾸는 시간 대표

 

 

2018년은 남극 세종 과학기지 설립 30주년이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이하 세바시)'은 이를 기념해 과학과 도전을 주제로 특집 강연회를 열었다. 강연회 중간에 세종 기지의 통신 대원 이상훈 씨를 실시간 화상 통화로 연결하고 관객의 질문을 받는 특별한 시간도 마련했다. 호기심 많은 관객의 질문이 그치질 않았다. 이상훈 대원도 열심히 답했다. 그러다 한 초등학생 아이의 차례가 되었다.

 

“저는 이상훈 대원의 아들 이동훈입니다.”

 

아이는 자신을 소개하는 한마디를 씩씩하게 내뱉더니 바로 울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부자 상봉이 세바시 강연회장에서 벌어지자 관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아이는 말을 잇지 못하고 숨이 넘어가도록 오열했다. 강연회에 온 부모들의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특히 아버지들은 더 그랬다. 울음을 가까스로 삼킨 아이는 건강하게 돌아오라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로 아빠 이상훈 대원의 눈가를 촉촉이 적셨다. 400명 관객 모두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반전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이렇게 화상으로 아들을 만난 것도 오랜만인가요?”라고 사회자가 물었다. 이상훈 대원은 “어제도 통화했다, 매일 화상 통화한다, 재가 오늘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며 갸우뚱했다. 심지어 어제는 유튜브 보는 데 방해되니 자꾸 전화하지 말라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증언했다. 강연회장의 분위기는 이내 폭소로 바뀌었다.

 

낯선 공간, 낯선 사람, 낯선 상황은 사람을 바꾼다. 심지어 초등학생이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까지 성찰하게 만든다. 비록 아버지는 지구 반대편에 떨어져 있지만, 화상 통신 기술의 발달로 동훈이가 아빠를 만나는 일은 일상과 다름없다. 일상 속에서 사랑은 유튜브 시청보다 못한 것이 되지만, 낯선 상황에선 사무치는 그리움이 된다. 낯선 코로나바이러스에 빼앗긴 평범한 일상을 지금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것처럼.

 

얼마 전에는 한 외국계 손해보험사의 한국 대표가 강연자로 출연했다. 싱가포르 태생인 에드워드 러는 글로벌 보험사의 중역으로 성공한 사람이었다. 세바시 강연 내용도 자신의 커리어 성공 스토리에 관한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강연 내용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에드워드 러 대표는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 의식이 중요한 이유를 강연 스토리에 담았다.

 

 

한국 지사에 부임하자마자 그가 찾은 곳은 인사동이나 명동이 아니었다. 지리산 길 100km를 걷는 옥스팜 트레일 워커 대회에 출전했다. 지난해 가을에는 울주군에서 열리는 영남 알프스 9봉 완등 트레일 러닝 대회에 참가했다. 30시간 동안 자지 않고, 100km를 달리며 9개의 봉우리를 모두 오르는 험난한 도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늘 하나의 질문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혹시 내가 안전지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이 이끈 낯선 도전과 모험은 늘 그를 성장과 성취의 봉우리로 안내했다. 때로는 전혀 엉뚱한 길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 여정에서 그는 더 노련하고 건강한 사람이 됐다. 

 

“대학에서 겨우 4년 배운 것으로 20년을 우려먹으면서 일했더니, 이제 바닥난 느낌이다.”

 

신입 PD 시절에 한 고참 선배의 푸념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서야 푸념의 의미를 알았다. 그의 무기력은 20년 넘게 직장과 가정이라는 ‘안전지대’에만 머물러 산 결과였다. 삶은 변증법적이다. 안전을 추구하지만 안전한 곳에 정체할 때 안전은 오히려 위협받는다. 안전지대에만 머물 때 무기력과 위기에 빠지기 때문이다. 삶의 안전지대에서 벗어나야, 오히려 삶의 영역은 확장되고 기회와 성장이 찾아온다.

 

 

이제 내가 그 고참 선배의 나이가 됐다. 하지만 나는 그 만큼 바닥 같진 않다. 올해는 세바시를 만든 지 꼭 10년째이다. 1,400여 편의 세바시 강연을 만들어 세상에 공개했다. 누적 조회수는 10억 회에 가깝다. 그동안 만난 강연자만 1천 명에 달한다. 모두 나와 다른 사람들이다. 다른 일을 하고, 다른 생각을 한다. 낯설지만 새로운 그들의 생각과 경험이 나를 자주 일상에서 끄집어냈다. 덕분에 나는 바닥은커녕 해마다 더 높은 고지를 향해 오르고 있다. 이것이 우리 자신을 낯선 상황과 관계 속으로 지속해서 밀어 넣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