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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예찬 II -부제 : 두 번째 산

스펙트럼

얼마 전 지인 분이 쓴 신간 ‘자기 인생의 각본을 써라’라는 책을 읽는데 내용 중 오랫동안 마라톤을 뛰는 분 이야기가 인용되어 있었습니다. 저자가 그렇게 오랫동안 마라톤을 해오고 있는 그에게 “너는 그렇게 20년이 넘게 한결같이 뛰어왔으니 이젠 몸에 배어서 하나도 힘들지 않겠네?”라고 물었더니 그 친구가 대답하기를 “천만에! 지금도 뛰어야 하는 날 새벽에 눈을 뜨면 ‘뛰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하고 수백 번을 고민해. 그러다가 운동화를 딱 신고 발걸음을 내딛으면 그때부터는 가슴이 뛰어. 운동화를 신기까지가 제일 힘든 것 같아.”라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 글을 읽는데 ‘어떻게 이렇게 산에 오르는 것과 똑같지?’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지난 16년간 휴일이면 어김없이 청계산을 찾음에도 불구하고 이불 속에서 항상 빠짐없이 ‘내가 오늘 산에 왜 꼭 가야하지? 몸 컨디션이 썩 좋지 않은데 억지로 가면 건강에 더 나쁜 것 아닐까?’등등의 유혹이 머릿속에서 맴돕니다. 그런데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 5분도 안되어서 숨이 살짝 가빠지면서 ‘정말 오길 잘했다’라고 마음이 바뀝니다.


현실적으로 주위에는 산을 즐기는 분들보다 산에 오르지 않고, 심지어는 과거의 필자처럼 산(보는 것 말고 오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어쩌면 “산이 부르는 사람만 산에 오른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산과 소통하는 사람들이 산을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도 새벽 미명에 기도하실 때에 산에 오르셨습니다. 산은 거룩한 경외와 무한한 갈망을 불러일으키는 듯 합니다. 그리고 산은 자연적인 요새나 견고한 피난처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가파른 경사, 절벽, 바위, 구름, 번개, 천둥 때문에 두려운 험지를 상징하기도 하는 이중적인 모습도 있습니다.


2020년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의 ‘두 번째 산’이란 저서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저자는 인간의 일생에 두 개의 산이 있다고 말합니다. 누구나 먼저 오르려는 산이 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산’이라고 불립니다. 첫 번째 등정에서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부모에게서 독립하며 재능을 연마하고 확고한 자아를 세우며 자신의 족적을 세상에 남기려고 노력하는’ 마음으로 산행을 시작하고 특정한 인생 과업을 수행합니다. 산 정상에서 만나는 자신이 진짜일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습니다. 누구나 성공하고, 남들에게 부러움과 존경을 받으며, 좋은 평판을 얻고, 개인적인 행복과 안락을 누리려 그 산을 오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자신을 자기의 참모습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산에 경쟁자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첫 번째 산’에서 조난당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호된 실패와 시련을 겪으며 나가떨어지는 일이 발생한다고 기록했습니다. 설령 천신만고 끝에 정상에 올랐다고 해도 ‘이게 내가 바라던 전부인가?’하는 씁쓸한 독백만 남습니다. 이들은 모두 당혹스러움과 고통스러움의 계곡에서 헤매고 다니는 것입니다.


하지만 첫 번째 산에서 굴러떨어져 골짜기로의 추락의 고통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참 자아를 찾는 어떤 순간을 맞이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두 번째 산’이 부르는 소리입니다. ‘첫 번째 산’을 오르는 성취를 좆으며 소모적인 삶을 살다가 추락한 오만했던 내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삶을 얻을 수 있는지를 배우고 익히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겸손해진 내가 되어서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계곡은 고통의 장소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낡은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자기를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고통이 자신에게 알려주는 내용을 피하지 말고 직면하여 똑똑히 바라볼 때, 그렇게 자기 인생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서 세상속의 성공이 아니라 성장을, 물질적 행복이 아닌 정신적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제 두 번째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닌 진정한 인생을 누릴 수 있는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필자의 첫 번째 산은 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였던 것 같습니다. 나이 40에 대장암 선고를 받고는 멍하니 죽음을 떠올리면서 지난 살아온 생을 떠올려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수술과 항암치료를 거치면서 어쩌면 육체적으로는 깊은 계곡으로 떨어졌지만, 정신적으로는 이제 ‘두 번째 산’을 오르기 위한 ‘첫 번째 산에서의 추락’ 이었으리라고 해석해봅니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고 애써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또 좌충우돌 합니다... 이번 주도, 다음 주도 산에 오를 것입니다. 정상에 깃발을 꽂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전을 하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산 아래와 다른 풍경을 보기 위해 산에 오를 것입니다. 세상에 나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보기 위해 깨어 산을 오르면서 요즈음의 삶이 나의 첫 번째 산인지, 두 번째 산인지를 항상 생각해볼 것입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